퇴직금 체불 막고 노후소득 늘린다…정부, 퇴직연금 전면 개편 추진

2028년 1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사외적립 의무화…2030년 10인 미만까지 확대

지난해 퇴직금 체불 8,229억 원…회사 밖 적립으로 지급 안정성 강화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전문기관이 운용하지만 투자손실은 가입자 부담

일시금보다 연금수령 유도…퇴직급여 장기 적립 위한 제도 개선 추진

 

영세사업장 지원에 122억 원 정부안 반영…법 개정·감독체계 구축 관건

 

 

정부가 퇴직금 체불을 예방하고 근로자의 노후소득을 강화하기 위해 퇴직급여의 사외적립을 모든 사업장에 단계적으로 의무화한다. 

 

전문기관이 적립금을 공동으로 운용하는 기금형 퇴직연금도 확대하고, 퇴직급여를 일시금보다 연금으로 수령하도록 유도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고용노동부는 29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당정협의를 거쳐 관계부처 합동으로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지난 2월 6일 노사정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화와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를 구체화한 것이다.

 

정부는 관련 법률이 올해 안에 개정되면 준비기간을 거쳐 2028년 1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사외적립을 의무화하고, 2029년에는 10~99인 사업장, 2030년에는 1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번 개편은 퇴직급여를 회사 밖에 미리 적립해 체불 위험을 낮추고, 장기간 운용한 적립금을 은퇴 이후 정기적인 소득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다만 사외적립 의무화와 기금형 퇴직연금 확대는 아직 시행이 확정된 제도가 아니다. 법률 개정과 후속 규정 마련이 필요하며, 투자수익률 개선이나 원금 보장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은퇴를 앞둔 중장년 근로자가 퇴직연금 적립금과 예상 수령액을 확인하며 노후생활 자금계획을 검토하는 모습을 표현한 이미지 (AI 생성)

 

퇴직금 체불 8,229억 원…회사 밖에 미리 적립해 지급 위험 줄인다

정부가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화를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퇴직금 체불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5년 전체 임금체불액 가운데 퇴직금 체불액은 8,229억 원으로 41.1%를 차지했다. 임금체불액의 10분의 4 이상이 퇴직금에서 발생한 셈이다.

 

기존 퇴직금제도에서는 사업주가 근로자의 퇴직 시점에 법정 기준에 따라 퇴직금을 지급한다. 일반적으로 계속근로기간 1년 이상이고 4주 평균 1주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이상인 근로자가 법정 퇴직급여 대상이다.

 

퇴직금은 계속근로기간 1년에 대해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그러나 사업주가 퇴직급여 재원을 회사 내부에서 관리하는 경우 경영난이나 폐업 등으로 지급 능력이 부족해지면 체불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사외적립은 근로자에게 지급할 퇴직급여 재원을 회사 밖 금융기관 등의 적립체계에 미리 쌓아두는 방식이다. 회사 운영자금과 퇴직급여 재원을 분리해 관리함으로써 사업주의 재정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근로자의 퇴직급여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사외적립이 모든 체불을 없애는 것은 아니다. 사업주가 부담금을 제때 납입하지 않거나 필요한 적립 수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퇴직급여 지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정부는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의 적립금 부족 사업장에 대한 감독을 확대하고, 확정기여형(DC)의 사업주 부담금 미납 현황을 파악하는 체계도 구축할 계획이다.

 

2028년부터 단계적 시행…기존 근무기간까지 소급 적립하는 것은 아냐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화는 사업장 규모에 따라 세 단계로 추진된다.

 

시행 예정 시기적용 사업장
2028년 1월100인 이상
2029년10~99인
2030년10인 미만

 

정부는 올해 안에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약 1년의 준비기간을 두고 의무화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중요한 점은 사외적립 의무가 각 사업장의 시행 시점 이후 발생하는 계속근로기간부터 적용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30년부터 의무화되는 10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해서 시행 이전 근무기간의 퇴직급여를 그해에 모두 사외적립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다고 기존 근무기간에 대한 퇴직금 지급 의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근로자가 이미 근무한 기간에 대한 법정 퇴직급여 권리는 유지된다.

 

현재 퇴직연금 도입률은 사업장 규모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정부가 제시한 2024년 통계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의 퇴직연금 도입률은 92.1%였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10.6%에 그쳤다. 5~9인 사업장은 32.7%, 10~29인 사업장은 57.3%였다.

 

이러한 격차를 고려하면 사외적립 의무화는 퇴직연금 도입률이 낮은 영세사업장 근로자의 퇴직급여 보호에 특히 중요한 변화가 될 수 있다.

 

다만 법률 개정이 지연되면 예정된 시행 일정도 달라질 수 있다.

 

기존 퇴직금과 퇴직연금, 받는 금액과 운용 책임이 다르다

퇴직금제도와 퇴직연금제도는 모두 근로자의 퇴직급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지만, 적립 방식과 운용 책임에서 차이가 있다.

 

기존 퇴직금제도는 근로자가 퇴직할 때 사업주가 법정 기준에 따라 퇴직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반면 퇴직연금은 재직 중 퇴직급여 재원을 외부에 적립하고, 제도 유형에 따라 사업주나 근로자가 운용한다.

 

확정급여형(DB)은 근로자가 받을 퇴직급여가 사전에 정해지는 방식이다. 적립금의 운용 책임은 사업주에게 있으며, 운용 성과가 나쁘더라도 근로자가 받을 법정 급여가 수익률에 따라 직접 줄어들지는 않는다.

 

확정기여형(DC)은 사업주가 근로자 계좌에 연간 임금총액의 12분의 1 이상을 부담금으로 납입하고, 근로자가 적립금을 운용하는 방식이다. 운용 성과에 따라 실제 수령액이 달라진다.

 

개인형퇴직연금(IRP)은 퇴직급여 등을 개인 계좌에 적립해 운용하는 제도다. 근로자가 추가로 자금을 납입할 수도 있으며, 운용 결과에 따라 계좌의 적립금이 변동한다.

 

정부가 확대하려는 기금형 퇴직연금은 여러 사업장의 적립금을 모아 전문 수탁법인이 운용하는 방식이다. 이번 방안에서는 확정기여형과 개인형퇴직연금에 적용하도록 설계했다.

 

기존 계약형 퇴직연금을 모두 없애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계약형과 기금형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하고,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거쳐 특정 기금형을 기본 운용방식으로 설정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영세사업장 부담 완화…정부 지원 122억 원 편성

퇴직급여를 회사 밖에 적립하면 근로자의 지급 안정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사업주에게는 자금 부담이 발생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6년 4~7월 퇴직연금 미도입 사업장 1,5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는 응답 사업장의 52.5%가 사외적립 의무화를 부담스럽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준비에 필요한 기간을 3년 이내로 응답한 사업장은 80.1%였다.

 

정부는 이러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27년도 정부 예산안에 조기 도입 사업장 적립금 지원 60억 원과 경영자금 융자비용 보전 사업 62억 원 등 총 122억 원을 신규 편성했다.

 

30인 미만 중소기업이 의무화 시점 이전에 퇴직연금을 도입하면 최저임금의 130% 미만을 받는 근로자에 대한 사업주 부담금의 10%를 지원하는 방안이다.

 

50인 미만 중소기업이 퇴직연금을 신규 도입한 뒤 1개월이 지나면 경영자금 융자 시 대출금리 2%포인트를 보전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30인 미만 사업장에는 수수료 특례를 적용하고, 퇴직연금 규약 신고 절차도 간소화할 계획이다. 다만 근로자대표의 동의나 의견청취 절차는 유지된다.

 

122억 원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금액으로, 국회 예산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돼야 한다. 지원 대상과 요건도 실제 사업 시행 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퇴직연금 적립금 501조 원 돌파…연금으로 받는 계좌는 16.5%

퇴직연금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노후소득 보장 기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2025년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 4,000억 원으로 전년 말보다 69조 7,000억 원 증가했다. 연간 수익률은 6.47%로 통계 집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퇴직급여를 정기적인 연금으로 받는 비중은 여전히 낮다.

 

2025년 퇴직급여 수령 계좌 중 연금수령 계좌는 16.5%였고, 나머지 83.5%는 일시금으로 수령했다.

 

정부는 일시금 수령 의사를 별도로 밝히지 않으면 연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시금을 원하는 근로자의 선택권은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연금과 일시금의 예상 수령액, 기대수익 등을 비교한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또한 주거비나 의료비 등으로 목돈이 필요한 근로자가 적립금을 중도인출하는 대신 담보대출을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할 예정이다.

 

다만 담보대출은 적립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자와 상환 부담이 발생한다. 연금수령도 개인의 생활비 수요와 다른 노후소득, 세금 등을 고려해 선택해야 한다.

 

기금형 퇴직연금 확대…전문기관이 운용하지만 손실은 가입자 부담

정부는 퇴직연금의 운용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기금형 퇴직연금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기금형은 여러 사업장의 적립금을 모아 전문 수탁법인이 운용하는 방식이다. 금융기관 개방형, 연합형, 공공기관 개방형 등 세 가지 유형으로 추진된다.

 

금융기관 개방형은 금융회사가 별도의 수탁법인을 설립하는 방식이며, 연합형은 복수 사업주나 전국 단위 노사단체 등이 참여하는 구조다. 공공기관 개방형에는 근로복지공단이 운영하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등이 포함된다.

 

정부는 기금형을 확정기여형과 개인형퇴직연금에 적용하고, 기존 계약형과 병행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기금형의 장점은 가입자가 직접 투자상품을 선택하고 관리하는 부담을 줄이면서 전문기관의 운용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문기관이 운용한다고 해서 원금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 방안에서도 기금형의 수익과 손실은 가입자에게 귀속된다고 명시했다.

 

투자자산의 가격 하락이나 운용 전략의 실패 등으로 적립금이 감소할 수 있으며, 은퇴 시점에 손실이 발생하면 실제 노후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이 줄어들 수 있다.

 

정부는 수탁법인에 가입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의무를 부여하고, 운용과 이해상충 관리, 설명의무 위반 등 핵심 영역에서 손해배상책임을 강화할 계획이다.

 

적립금의 0.25% 수준에 해당하는 운영위험준비금을 별도로 적립하도록 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이 준비금은 운영상 사고와 손실보전 등에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일반적인 시장가격 하락에 따른 투자 손실을 모두 보상하는 장치는 아니다.

 

또한 자산보관과 기준가격 산출, 운용성과 평가 등을 외부에 의무적으로 위탁해 상호 검증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의 성과는 단순 수익률뿐 아니라 손실 위험과 수수료, 운용의 투명성, 가입자 보호 수준 등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개인형퇴직연금 위험자산 한도 완화…수익률과 안전성 함께 살펴야

정부는 기존 계약형 퇴직연금의 운용 규제도 개선한다.

 

현재 70%인 개인형퇴직연금(IRP)의 위험자산 투자한도를 단계적으로 완화하고, 종합투자계좌(IMA)와 발행어음 등을 확정기여형과 개인형퇴직연금의 투자 대상에 추가할 계획이다.

 

다만 위험자산 투자한도를 얼마나 높일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사전지정운용제도인 디폴트옵션도 개선한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운용 방법을 직접 선택하지 않았을 때 미리 정한 방식으로 적립금을 운용하는 제도다.

 

정부는 수익률과 위험조정 성과 등을 기준으로 상품을 평가하고, 성과가 낮은 상품은 가입 중지나 퇴출 등의 조치를 검토한다.

 

상품 만기 이후 적립금이 낮은 금리로 대기하는 기간을 줄이기 위해 디폴트옵션 적용 예정 통보 시점도 앞당길 계획이다.

 

다만 투자 가능한 상품이 늘고 위험자산 투자한도가 높아진다고 해서 모든 가입자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다.

 

특히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은 투자 손실이 발생했을 때 회복할 수 있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다. 

따라서 높은 수익률만을 기준으로 상품을 선택하기보다 투자 기간과 원금손실 가능성, 수수료, 은퇴 이후 자금 사용 시점 등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1년 미만 근로자 등 사각지대는 추가 논의…법 개정이 관건

이번 방안이 모든 근로자의 퇴직급여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은 아니다.

 

현행 법정 퇴직급여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1년 미만 근속 근로자와 초단시간 근로자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실태조사와 사회적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따라서 모든 사업장에 사외적립을 의무화한다는 방침을 모든 근로자에게 퇴직급여 지급 자격을 새로 부여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의 가입 대상을 2027년 100인 이하, 2028년 300인 이하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사외적립 의무화 이후 퇴직연금을 도입하지 않은 사업장에 대한 자동가입 방안도 추진하되, 일정 기간 내 탈퇴할 수 있는 선택권을 보장할 계획이다.

 

고용노동부는 11월 중 관련 법률 개정안을 마련하고 12월 국회 본회의 통과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번 방안이 노사정 합의를 토대로 노후소득의 안정성과 수익성 사이의 균형을 확보하려는 제도 개선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화는 회사의 경영 상황에 따라 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위험을 줄이는 데 의미가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 확대는 가입자의 운용 선택권을 넓히고 전문적인 자산관리를 활용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영세사업장의 납입 부담, 부담금 미납에 대한 감독, 기금형의 투자손실 위험 등은 제도 시행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결국 이번 개편의 성과는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나 수익률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실제 퇴직금 체불이 줄어드는지, 소규모 사업장 근로자의 퇴직급여 보호가 강화되는지, 은퇴 이후 안정적인 연금소득으로 이어지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퇴직급여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것과 확보한 자금을 노후까지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서로 다른 과제다. 정부의 이번 개편이 두 가지 목표를 함께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작성 2026.10.29 15:01 수정 2026.10.2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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