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일보 = 윤서율기자] 과거 간첩조작사건으로 복역한 제주 피해자와 유족이 증언·토론회에서 수사 과정의 가혹행위와 출소 이후에도 이어진 고통을 밝혔다. 참석자들은 재심을 통한 무죄판결에 더해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 있는 당사자들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한라일보에 따르면 제주4·3진상규명과명예회복을위한도민연대는 10월 27일 아스타호텔 3층 회의실에서 ‘제주조작간첩사건 증언 및 토론회’를 열었다. 제주도가 2022년부터 4년간 진행한 간첩조작사건 피해 실태조사에서는 제주에서 공식 피해자 90명이 확인됐다. 이 가운데 49명은 재심을 거쳐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날 증언에는 재일실업인 간첩단 조작사건 피해자 김추백 씨의 딸 김호정 씨와 제주도민 일본방문 간첩조작사건 피해 당사자 강희철 씨가 참여했다. 당사자의 수감 경험뿐 아니라 가족에게 남은 기억과 피해도 함께 다뤄졌다.
재일실업인 간첩단 조작사건은 1977년 재일교포 사업가 강우규 씨가 간첩으로 내몰리고 동생과 직장 동료 등 10명도 공범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사건이다. 중앙정보부는 강 씨가 북한의 지령을 받아 사업가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했다는 혐의를 씌워 11명을 강제 연행하고 가혹행위로 허위자백을 받아냈다. 사건의 진상은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로 드러났으며, 이후 재심을 통해 11명 모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김호정 씨는 1977년 2월 아버지가 끌려가던 기억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성인이 된 뒤에야 어머니에게서 아버지가 간첩조작사건으로 억울하게 숨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재심을 준비하거나 무죄판결 이후에도 아픈 기억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강희철 씨는 1975년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불법체류 혐의로 1982년 제주에 강제송환됐다. 귀국 직후 중앙정보부의 수사를 받고 풀려났지만, 1986년 4월 제주도경찰국 대공분실에 다시 연행돼 132일간 불법구금됐다. 조사 과정에서 가혹행위와 음식물 섭취 제한 속에 허위자백을 강요받았으며, 1998년 가석방될 때까지 12년간 복역했다.
또 다른 피해자인 강광보 씨도 일본 체류 뒤 강제송환돼 수사를 받았다. 그는 1985년 다시 연행돼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한 끝에 허위자백했고, 국가보안법 위반과 간첩죄 등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아 1991년 출소했다.
강희철 씨는 출소 뒤 경제활동에 나섰으나 신원조회로 일자리를 잃었고, 고문 후유증이 있어도 병원에 갈 돈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지금도 구타당한 부위에 통증이 남아 있다는 그는 진상규명이 피해자의 아픔을 덜어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상금보다 당사자들의 사과와 진실을 원한다며 당시 제주에서 대공수사를 맡았던 이들의 증언을 요청했다.
변상철 공익법률센터 파이팅챈스 소장은 재심이 법적 낙인을 지우더라도 잃어버린 삶의 시간과 관계까지 자동으로 복원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의 무죄를 밝히는 데서 나아가 피해자를 간첩으로 만든 국가의 구조와 책임까지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