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말해봐. 화 안 낼게."
이 말을 들은 아이는 부모 말을 믿고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죠.
'아니, 이걸 숨긴다고? 그냥 말하고 혼나면 되지?'
결국 '거짓말한 괘씸죄'에 '원래 잘못한 행동의 죗값'까지 더해 화를 냅니다. 아이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지만, 얼굴엔 묘하게 억울함이 묻어 있습니다.
그 억울함에 우리는 또 화가 나죠. 그런데 이 억울함은 우리가 만든 겁니다.

1956년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동료들과 함께 '이중 구속'이라는 개념을 발표합니다.
이중 구속은 세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 성립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메시지가 있고, 그 메시지와 충돌하는 다른 층위의 메시지가 함께 오며, 그 모순을 지적하거나 관계를 끊거나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관계일 때입니다. 앞의 장면이 바로 이중 구속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와의 관계를 끊을 수 없습니다.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이들은 이중 구속에 쉽게 노출됩니다.
"엄마 화 안 났어"라고 말하지만 설거지 소리가 쿵쾅거리는 것도,
"너 좋은 대로 골라"라고 하지만 고른 것마다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하지만 정말 학원을 빠지고 놀다 들어오면 한숨을 마주하게 되는 것도 모두 그렇습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이중 구속에 아이는 서서히 지쳐 갑니다. 그리고 결국 깨닫습니다. 부모의 말은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는 것을요. 그렇게 아이들은 선택합니다.
“솔직하게 말해봐”라는 말에 아이는 더 혼나지 않을 방법을 찾습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솔직하게 말했다가 처음에 숨긴 죄까지 받느니, 잘 속여서 모든 게 무사히 넘어갈지도 모르는 1%의 가능성에 기댑니다. 이제까지 거짓말을 솔직하게 고백했을 때, 우리는 99%의 확률로 더 화를 냈으니까요.

그렇게 아이들은 비상 탈출을 합니다.
거짓말로, 변명으로, 회피로, 우기기로. 그리고 우리는 더 답답해서 화를 냅니다. 악순환의 시작입니다.
이 악순환은 우리 부모가 먼저 시작한 겁니다. 피할 수 없는 압박을 전방위로 가하고 있는 것이 나 자신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야 말이 바뀔 수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해봐. 화 안 낼게"라는 지키기 어려운 말보다
"솔직하게 말해주면 엄마가 진지하게 고민해 볼게. 널 최대한 혼내지 않으려고 노력할 거야."
라는 말이 차라리 낫습니다.
화를 안 낼 자신은 없다는 우리의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상황을 제대로 알아야 판단할 수 있으니 솔직하게 말해주길 바란다는 우리의 욕구를 명료하게 밝히는 말이니까요.
그리고 그 말을 지키려고 애써야 합니다. 저는 화가 치밀어 오르면 물을 마시러 부엌에 다녀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싶은 말이 들려도 일단 심호흡부터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제시한 선을 우리가 지키려고 애쓰면, 아이는 그 선이 더 이상 좁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아이는 이중 구속 안쪽에 숨은 다른 층위의 말을 찾으려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아이 앞에서 신뢰의 시간을 쌓아 가면, 아이는 탈출을 선택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그곳은 규칙이 명료한, 안전한 공간이니까요.
저자 소개 : 최지연 (다함다행 사춘기 부모성장 연구소 소장)
현재 다함다행 부모성장 연구소를 운영하며, 사춘기 아이들의 언어를 부모에게 번역하는 일을 한다.
아이를 바꾸기 전에 부모가 자신의 불안과 해석, 통제와 자동적인 반응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 코칭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불안과 통제, 훈육과 자율, 사춘기 뇌와 감정, 부모-자녀 관계를 중심으로 강의하고 글을 쓴다.
“부모가 변하면 아이도 변한다”는 믿음으로 부모와 아이 사이의 관계를 다시 연결하는 방법을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