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한지가 거대한 우주가 되고, 수많은 장미는 별과 생명으로 피어난다. 한지조형작가이자 화가, 시인, 퍼포먼스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로즈 박(ROSE PARK)은 한국의 전통 소재인 한지를 기반으로 꽃과 여성성, 생명의 순환, 우주의 기억을 탐구해온 작가다.
그의 작품에서 꽃은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의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꽃은 태어나고 피어나며 시들고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상징이자, 인간의 삶과 우주를 연결하는 하나의 언어다. 특히 장미는 작가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이미지다.
로즈 박은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꽃은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으며, 끝없는 사랑의 여정으로 우리 삶을 물들인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 속 꽃은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시대와 세대를 잇고 미래로 전달되는 사랑과 생명의 메시지가 된다.

붉은 우주, 미래에서 온 꽃
최근 작업인 대형 작품 ‘붉은 우주: 미래에서 온 꽃(Red Universe: A Flower from the Future)’은 가로 4m, 세로 1.4m에 이르는 한지 혼합매체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생명 에너지를 하나의 거대한 꽃으로 형상화했다.
작품이 놓이는 상징적 공간은 ‘하모니움(Harmonium)’이다. 작가에게 이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전통과 미래가 함께 공존하는 우주적 무대다. 가장 한국적인 재료인 한지는 작가의 손을 거치며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매개체가 된다.
작가는 작품 설명에서 붉은 꽃들이 서로 흐르는 에너지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전하는 우주의 축복”이라고 말한다. 거대한 화면 안에서 반복되고 중첩되는 꽃은 생명의 탄생과 소멸, 재생이라는 순환 구조를 보여준다.
작품은 한지와 혼합매체로 제작됐으며, ‘생명의 순환, 여성성, 우주의 메시지’를 주요 개념으로 삼고 있다.

한지와 탄자나이트, 동서양의 미학을 잇다
로즈 박의 작품세계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전통 소재에 머물지 않는 적극적인 재료의 결합에 있다.
2025년 서울월드아트페어(SWAF) 특별전에서 선보인 ‘한지, 아프리카를 품다(Hanji Embracing Africa)’는 한국의 전통 한지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산출되는 보석 탄자나이트를 결합한 작품이다.
작가는 한지가 지닌 생성과 소멸의 시간성 위에 장미와 탄자나이트를 더했다. 탄자나이트는 오랜 지질학적 시간을 품은 물질로, 작품 속에서는 ‘우주의 기억’을 간직한 존재로 해석된다.
특히 작품 중심부에서 빛을 발하는 탄자나이트는 관람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내부로 끌어당기며 사유와 성찰의 공간을 형성한다. 한국적 재료인 한지와 서구적 아름다움의 상징인 장미, 아프리카의 보석 탄자나이트가 한 화면 안에서 만나면서 동양과 서양, 자연과 인간, 전통과 현대가 서로 교차한다.
작품에는 전통 장인의 손길도 더해졌다. 수천 번의 망치질을 통해 봉황의 깃털을 형상화한 금속 작업은 한지의 부드러운 질감과 대비를 이루면서 작품의 신화적 상징성을 확장한다.
작품 전반을 가로지르는 태극적 구조 역시 단순한 장식적 형상을 넘어선다. 작가는 이를 생명 에너지와 우주적 리듬의 흐름으로 해석하며, 서로 다른 문화적 기호와 재료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한다.
그 결과 작품은 전통과 현대, 신화와 기술, 물질과 의미가 만나는 하나의 예술적 플랫폼으로 확장된다.

꽃으로 말하는 여성성과 생명의 근원
로즈 박의 기존 작품에서도 꽃과 여성, 우주라는 주제는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2023년 작품 ‘세상의 모든 사랑’에서는 붉고 보랏빛을 띤 수많은 장미 사이에 황금빛 꽃 한 송이가 화면의 중심을 차지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한 화면에 담았다.
또 다른 작품 ‘꿈속의 꿈’에서는 보라색과 붉은색 계열의 꽃들이 원형 화면 안에서 겹쳐지고 확산되며 시간과 만남의 중첩을 표현한다.
2022년 작품 ‘모성과 여성’은 검정과 흰색, 붉은 장미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여성성과 모성의 힘을 드러낸다. 작가는 “모성은 위대하다”는 메시지를 작품 안에 직접적으로 담았다.
원형 화면에 푸른색의 층위가 소용돌이치듯 펼쳐지는 ‘우주의 모성’에서는 우주 자체가 하나의 여성적 생명체처럼 표현된다. 작가는 “우주는 여성이며, 우주의 생명의 순환으로 여성성과 생명의 존귀함을 나타낸다”고 설명한다.
또한 ‘생명의 음’에서는 어둠과 금빛이 공존하는 화면을 통해 탄생 이전의 근원적 생명과 존재의 숭고함을 탐색한다.
이처럼 로즈 박의 작품에서 원은 우주이자 자궁이며, 꽃은 생명이고, 한지는 인간과 자연의 기억을 담는 피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한지의 오래된 물성에서 미래를 발견하다.
작가는 최근 순수미술의 영역을 넘어 예술과 건축의 융합으로 작업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그에게 한지는 과거의 전통을 보존하기 위한 소재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랜 시간 축적된 물성을 지닌 동시에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변형될 수 있는 열린 매체다.
특히 한지가 찢어지고, 겹쳐지고, 구겨지고, 색을 머금는 과정은 작가에게 인간의 삶과 닮아 있다. 그 위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미는 개별 인간의 삶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우주적 생명의 일부다.
작가는 모든 것을 완전하게 보여주는 대신 일부를 감추고 중첩한다. 관람자가 익숙한 이미지의 반복에서 벗어나 스스로 화면 안으로 들어가 감각하고 상상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꽃은 아름답다. 꽃은 유순하다. 꽃은 보는 이들에게 미소를 짓게 한다. 그러나 꽃은 강한 생명력을 지녔다.”
이 문장은 로즈 박의 예술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화려한 장미의 외양 이면에는 생존과 재생, 모성, 사랑, 그리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놓여 있다.

국내외 무대로 이어진 한지조형 작업
로즈 박은 오랫동안 한지를 중심으로 설치·회화·무대미술·퍼포먼스를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왔다.
자료에 따르면 그는 2009년 상하이 국제아트페스티벌을 비롯해 2010년 원주한지문화제와 세계종이조형작가회 초대전, 2011년 뉴욕 및 대한민국 국가브랜드 관련 전시, 2012년 경주예술의전당 국제펜대회 특별전 등에 참여했다.
2013년 울산현대예술관 ‘환상의 로즈랜드’, 2014~2017년 한국문화재단 및 문화재청 관련 기획전, 2016~2017년 국립극장과 진도국립국악원 무대미술 및 한지조형 설치 등도 이어졌다.
미국과 홍콩에서의 협업 설치, 뉴욕 포커스, 뉴욕 해피라이프, 제주 국제자연미술 행사, 코스모플라워 무대미술, 섬진강 국제실험예술제 등 국내외 다양한 무대로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39회의 초대 개인전과 200회 이상의 단체전, 300여 회의 퍼포먼스 공연 경력 역시 회화와 조형, 공간, 행위예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가의 작업 성격을 보여준다.

“예술은 생명을 축복하는 우주의 응답”
로즈 박의 예술은 전통을 단순히 재현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한지는 찢기고 겹쳐져 우주가 되고, 장미는 여성과 인간, 생명의 상징이 된다. 아프리카의 탄자나이트와 금속, 안료와 혼합매체가 더해지면서 작품은 한 국가나 문화의 경계를 넘어선다.
그가 오랫동안 이야기해온 것은 결국 ‘생명의 존귀함’이다.
화려한 꽃들의 세계 속에는 탄생과 죽음, 상처와 치유, 과거와 미래가 함께 존재한다. 전통 한지를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로즈 박의 시선은 언제나 미래와 우주를 향해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한지는 더 이상 종이에 머물지 않는다. 한지는 생명의 기억을 담는 공간이며, 때로는 별이 되고 행성이 되며 거대한 우주가 된다.
그리고 그 우주의 한가운데에서 한 송이 꽃이 다시 피어난다.
한지에 우주를 담는 작가, 로즈 박.
그의 작품은 오늘의 우리에게 생명의 가치를 다시 묻고, 예술이라는 언어로 미래를 향한 ‘생명의 예찬’을 건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