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3월 24일,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행정명령 110호를 통해 건국 이래 첫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군사작전과 함께 호르무즈 해협이 닫히면서, 석유 수입의 95~98%를 중동에 의존하던 이 7천 개 섬의 나라는 한순간에 무릎을 꿇었다. 한 달 만에 휘발유는 50% 넘게 뛰었고, 디젤은 두 배 가까이 폭등해 리터당 130페소를 찍었다. LPG 비축량은 24일분만 남았다. 필리핀의 한 청년이 종이 한 장에 쓴 글귀였다. "이란을 욕할 시간이 없다. 나는 오늘 저녁 아이의 분유를 살 돈이 필요할 뿐이다." 이 한 줄에 한 나라가 통째로 담겨 있었다.
한 모스크에서 흘러나온 두 설교
그러나 이 위기가 동남아의 무슬림 공동체에 남긴 자국은 통장의 숫자에만 그치지 않는다. 알자지라에 나데라 모하마드 카셈이라는 무슬림 학자가 5월 30일 기고한 한 편의 글은, 6,000km 떨어진 호르무즈의 폭발음이 어떻게 필리핀 남부 방사모로 자치구(BARMM)의 한 모스크 안까지 진동을 전해주는지를 절절히 증언하고 있다.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방사모로의 SNS와 거리에는 두 갈래의 설교가 동시에 흘러나왔다. 한 진영은 이란의 보복을 환영했다. 한 무슬림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가자를 위한 우리의 기도가 이란의 힘과 보복을 통해 응답받고 있다." 또 다른 이는 "테헤란이 무너진 무슬림의 존엄을 회복하는 중요한 도구"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정확히 그 반대편에서 또 다른 학자들은 이란이 시아파 국가이며, 따라서 수니파 공동체와는 본질적으로 적대적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그중 한 학자의 표현은 본인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시아파는 시오니스트와 같다. 시오니스트는 보이는 적이며, 시아파는 보이지 않는 적일 뿐이다."
같은 꾸란을 읽고 같은 메카를 향해 무릎 꿇는 형제들이, 호르무즈의 미사일 한 발을 두고 서로를 '미묘한 적'으로 부르고 있다.
아브라함 협정의 그림자, 팔레스타인의 십자가
이 균열은 갑자기 솟아난 봉우리가 아니다. 그 뿌리는 2020년 시작된 아브라함 협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스라엘이 일부 아랍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한 그날 이후, 방사모로의 이슬람 학자들 사이에는 그 이전에는 결코 상상할 수 없던 종류의 균열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동의 한 지정학적 사건에 대해 이렇게 노골적으로 갈라진 적이 없었던 공동체였다.
필리핀은 사실 오랫동안 팔레스타인과 깊은 연대를 나눠온 나라다. 무슬림과 비(非)무슬림 활동가들이 손을 잡고 마닐라부터 다바오까지 거리로 나선 역사가 있다. 그러나 정상화의 물결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뒤, 일부 방사모로 학자들 사이에서는 충격적인 발언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을 위한 결집은 사실 이란의 음모다."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은 이란의 정치적 도구일 뿐이며, 따라서 그들은 이탈자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일어나자, 이 내러티브의 충돌은 한층 더 격렬해졌다. 일부 학자들은 서방 주류 미디어와 친(親) 시오니스트 담론을 그대로 복사한 듯한 입장을 취했다. 그들은 그날의 사건을 마치 진공 속에서 발생한 단발성 폭력으로만 그렸고, 이스라엘의 식민 체제가 수십 년에 걸쳐 자행해 온 팔레스타인 압제를 짐짓 잊은 듯 침묵했다. 반대편 진영은 팔레스타인 저항을 정당한 자결권의 표현으로 옹호했다. 같은 모스크에 절을 하던 두 형제가, 단 하나의 사건 앞에서 영원히 다른 길로 갈라서는 순간이었다.
학자들의 권위와 'ahl al-dhikr(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의 본래 뜻
본인이 가장 깊이 공감한 카셈의 통찰은 다음 지점이었다. 이 균열은 단순한 신학 논쟁이 아니라, 정치와 종교가 뒤엉킨 채로 한 공동체의 미래를 흔드는 거대한 소용돌이라는 것. 그리고 그 소용돌이의 한복판에는 수십만 팔로워를 거느린 SNS 학자들이 서 있다.
문제는 그 학자들 일부가 종교적 권위를 들고서 사실은 지정학적 발언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셈은 이를 꾸란 16장 43절의 'ahl al-dhikr(메시지를 받은 사람들)' 원칙의 정면 위반으로 진단한다. 본래 이 구절은 모든 인간 가운데 단 한 명도 전능한 지식의 독점적 권위를 갖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지식은 분배되어 있다는 겸손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오늘 일부 학자들은 마이크와 알고리즘을 등에 업고,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신의 음성처럼 선포하고 있다.
더욱 깊은 뿌리는 교육의 지도에 있다. 카셈에 따르면, 반(反)이란 입장에 선 일부 학자 중 상당수가 걸프 권위주의 체제의 종교 교육 기관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온 이들이다. 그 체제의 정치신학을 통째로 짊어진 채 귀향한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방사모로 공동체 안에 외세의 정치적 좌표를 이식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훈련받은 유학생들이 모국으로 돌아와 그 체제의 이념을 재생산하는 전형적인 패턴이라고 카셈은 분석한다.
1970년대의 깃발, 그리고 흔들리는 정체성
방사모로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1970년대부터 필리핀 남부의 무슬림들은 자결권을 위해 피와 눈물을 흘려왔고, 2019년 정식 출범한 방사모로 자치구는 그 오랜 투쟁의 잠정적 결실이었다. 지금, 이 공동체는 평화 협정 이후의 취약한 전환기를 통과하는 중이며, 무엇보다 단단한 통합 정체성이 절실한 시기다. 바로 그 순간에 호르무즈에서 날아온 분열의 씨앗이 이 갓 봉합된 상처 위에 떨어진 것이다.
한쪽이 다른 쪽을 "이탈자"로 낙인찍는 순간, 그 낙인은 곧 폭력의 잠재적 씨앗이 된다. 카셈은 이 점을 가장 두려워한다. 정치적 견해의 차이를 신앙적 일탈로 규정하는 사고방식은 결국 급진화의 비탈길로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탈길의 끝에는, 평범한 한 청년의 분유 한 통이 아니라, 모스크 안에 떨어진 폭탄 한 발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