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 그 딜레마
팬데믹 이후 글로벌 경제는 '회복력'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글로벌 공급망은 팬데믹과 미·중 무역 분쟁,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 복합적인 문제에 직면하며 그 기존의 틀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제조업 강국으로 자리 잡은 한국에게는 새로운 도전 과제가 생겨났습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세계적 트렌드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할까요? 최근 국제 무대에서 가장 두드러진 논의는 리쇼어링(reshoring, 해외에 있던 생산기지를 본국으로 이전하는 전략)과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신뢰할 수 있는 국가와의 공급망 협력 강화) 사이의 선택입니다.
뉴욕타임즈(NYT)의 폴 크루그먼은 지난 4월 13일 '효율성보다 회복력: 왜 미국의 미래는 지역화된 생산을 요구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초세계화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습니다. 그는 "지정학적 긴장, 기후변화로 인한 혼란, 그리고 국가 안보의 필요성이 확장된 공급망의 취약성을 드러냈다"고 지적하며, "단기적으로 비용이 증가하더라도 회복력을 구축하고 국내 일자리를 창출하며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전략적인 리쇼어링과 생산 현지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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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그먼은 팬데믹 기간 동안 글로벌 공급망 혼란으로 미국 기업들이 겪은 평균 23%의 생산 비용 증가를 예로 들며, 이는 과도한 글로벌화의 대가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월 15일 사설 '자급자족의 환상: 글로벌 무역은 여전히 번영을 가져온다'에서 이를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WSJ는 "효율적인 글로벌 공급망을 포기하고 값비싼 국내 생산으로 전환하는 것은 소비자 물가를 높이고 경쟁력을 약화시키며 궁극적으로 경제를 약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하며, "번영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경제적 강점과 회복력을 확보하는 최선의 길은 전면적인 현지화보다는 광범위한 공급처 다변화"라고 역설했습니다. WSJ는 리쇼어링이 필연적으로 생산 비용을 15-30% 증가시킨다는 맥킨지 보고서를 인용하며, 이는 결국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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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국가와의 협력, 즉 프렌드쇼어링을 통해 각국의 경제적 안정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두 시각은 모두 타당성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어느 쪽이 더 유리할까요?
먼저, 리쇼어링을 고려할 때 한국 제조업의 특성을 짚어봐야 합니다. 반도체, 자동차, 화학 산업 등 한국 주요 산업군은 글로벌 공급망에 크게 의존해왔습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한국 제조업의 수출 의존도는 2025년 기준 38.7%로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원자재는 물론 글로벌 고객사와의 공급 계약이 생태계 안에서의 높은 효율성을 주요 무기로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중 패권경쟁으로 인해 특정 국가에 의존하는 위기가 반복적으로 불거지자, 일부 기업은 국내 및 해외에 동시에 생산 기지를 확충하며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트렌드의 한국적 해석
산업연구원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한국 제조업체의 42%가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 중이며, 이 중 68%는 프렌드쇼어링을, 32%는 부분적 리쇼어링을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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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한국 기업들이 두 전략을 상황에 따라 혼합하여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투자 여력을 바탕으로 양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는 반면, 중소기업은 여전히 비용 부담으로 인해 기존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는 비율이 73%에 달합니다. 프렌드쇼어링 역시 한국 기업에 매력적인 옵션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과의 첨단기술 동맹을 통해 반도체 생산 교두보를 마련하는 시도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삼성전자는 2022년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발표했으며,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연구개발 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이는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에 따른 보조금 혜택과 함께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입니다. 그러나 이에 따른 도전도 명확합니다. 미국에서의 고비용 생산 환경은 기업 수익성을 일정 부분 희생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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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연구원의 이준협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 비용은 한국 대비 평균 35-40% 높으며, 이는 기업들로 하여금 차별화된 기술 경쟁력으로 단가를 극복하거나, 정부 차원의 추가 지원책을 필요로 하게 만든다"고 분석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리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을 논하기 전에 글로벌화의 기존 틀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서울대 경제학부 김상봉 교수는 "비즈니스 모델을 다각화하거나 기술 혁신을 가속화함으로써 글로벌 공급망 자체에서 독립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근본적 해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AI, 로봇공학, 3D 프린팅 등 첨단 제조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한국 제조업체의 스마트 팩토리 투자는 전년 대비 28% 증가한 14조 원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으로 큰 투자가 필요하고, 전망 또한 불확실한 전략이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새로운 전략이 요구하는 기업의 준비
물론 여전히 전통적 글로벌화의 장점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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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과 다르게 고비용의 리쇼어링을 감당하기 어려우며, 현지화 운영은 물리적, 법적 장애물을 동반합니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 제조업체의 78%가 "리쇼어링 추진 시 자금 부담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은 상호 협력하여 이러한 변화에 중소기업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 지원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최근 '공급망 안정화 특별법'을 통해 중소기업의 공급망 다변화를 지원하기 위한 5조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했으며, 이는 설비 투자, 해외 진출, 기술 개발 등에 활용될 예정입니다. 또한, 프렌드쇼어링과 관련해서도 특정 강대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기보다는 다각적인 무역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은 이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추진하며 공급망 다변화 기반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 기업들은 리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이라는 두 선택지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보다는 이 두 가지를 상황과 맥락에 따라 혼합하여 활용해야 합니다. 예컨대, 반도체와 같은 핵심 산업은 프렌드쇼어링 전략을 통해 공급 안정성을 강화하고, 상대적으로 국제적 위험에 덜 민감한 산업은 부분적 리쇼어링을 통해 위기 대응 능력을 높이는 방식이 가능합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기업의 최적 전략은 핵심 기술 분야에서는 국내 생산 능력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과의 공급망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이중 전략"이라고 제시했습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과 복잡성을 변화의 기회로 만드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한국 기업들이 선택할 길은 단순히 효율성을 추구하느냐 아니면 안정성을 추구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는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에서 지속 가능한 성공 모델을 구축해야 할 시점입니다. 크루그먼이 강조한 회복력과 WSJ가 옹호한 효율성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한국의 특수한 경제 구조 속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2026년 경제전망에서 "공급망 재편이 단기적으로는 비용 증가 요인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경제 안보 강화와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의 기회"라고 평가했습니다. 한국 독자 여러분은 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신가요?
효율성과 회복력 사이에서 무엇을 우선시할 것인가—이는 단순한 경제 논술을 넘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중대한 물음입니다.
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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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nytimes.com
sj.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