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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상 국명과 연속성

고리(고구리)라는 국호의 유래

압두남(압록, 두만강 이남)의 유물과 복국호신라

황해를 차지하는 국가가 승자

고구리의 정체성과 존속기간의 모호성은 호태왕비로 어느 정도 해소된다. 그러나 신라의 국호 제정과 변경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시대적으로도 모호함이 그대로 존재한다. 다만 503년의 ‘복국호’라는 기록의 중요성은 우리 역사의 분수령이 되는 기록으로 더 면밀하게 연구할 대상이다. 백제도 모호성은 크게 다를 바 없으나 연구 자료조차 희소하여 안타깝다.

 

 

우리 역사상 국명과 연속성

 

삼국사는 신라 한 나라만 보더라도 992년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장수 국가의 기록이므로 매우 귀중한 사서다

하지만 내용을 깊이 검토하면 곳곳에서 

모순과 오류가 발견되어 해석하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지난 글에서도 서술하였듯이 정탐 목적이 컸다 하더라도 

특별한 명분도 없는 조공 기록이 곳곳에 기록되었다든지

지나의 신생국가가 몇백 년이나 장수하고 있는 국가의 임금에게 

책봉한다는 국서를 보낸다는 기록은 상식을 훨씬 벗어난다.

 

또 하나의 반전도 우리 역사는 준비하고 있다

삼국사가 후대의 기록이라면 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이하 호태왕비라 함)’는 

당대의 당사자들에 의한 기록이므로 어느 일차사료보다 앞서는 귀중한 자료이다

세월이 가하는 글자의 마멸과 함께 

우리 역사를 비하하고 싶은 국가들에 의한 고의적 훼손도 자행되는 등으로

판독이 힘들지만후손들이 최선을 다하여 풀이할 의무도 있다

기타 명문을 품는 순수비와 중원비 등 어떤 유물도 

서책의 부족함을 메울 수 있어 소중함은 말할 것도 없다.

 

 

호태왕비가 뒷받침하는 ‘삼국사’의 신뢰성

 

호태왕비문 때문에 ‘삼국사’의 내용이 완전할 수 없겠다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1775자에 이르는 비문의 내용은, 사서와 함께 전설 등에서는 전혀 알 수 없던

고구리의 시원과 그 창업자로부터 광개토경호태왕이 17세에 이르렀다는 내용을

국가의 영역을 넓히는 업적에 앞서 전하고 있다

인용하는 다음 판독문은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고대사료DB’에서 전재하는 것이다.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出自北夫餘天帝之子母河伯女郞剖卵降世生而有聖▨▨▨▨▨▨命駕

옛적에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개창하였다. [추모왕은] 북부여에서 태어났는데, 천제의 아들이었고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었다. 알을 깨고 세상에 강림하였으니, 탄생하면서부터 성스러움이 있었다. … 수레를 출발시켰다.

遝至十七世孫, 國?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二九登祚, 號爲永樂大王

17세손에 이르러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 18세에 왕위에 올랐으니, 왕호를 영락태왕이라고 하였다.

 

삼국사는 시조를 주몽이라 하였음에 비하여 추모로 되어 있으나 

시대적 발음의 변화와 적는 수단의 다름으로 이해되어 지금까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삼국사에도 혹은 추모라고 주해하였으므로 삼국사의 신뢰성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호태왕비에서 추모의 출자가 북부여라는 국명이 사용되었음에 있다

삼국사에는 이 없는 부여라 하였고

해부루금와로 이어지는 동부여에 어머니 유화가 살고 있었고 

주몽은 그 금와의 아들들의 시샘을 피하여 남하한다는 이야기로 되어 있다.

 

삼국사에 어머니인 유화는 천제의 아들 해모수에게 

웅심산 아래 압록수 가의 집에 가두어졌었고, 해모수는 사라졌는데, 

동부여 해부루 아들 금와에 이끌려 갔다가 가두어진 방에서 

햇빛이 따라다니는 경험을 하고 그 원인으로 알을 낳으며

알에서 추모가 태어난다는 난생설화를 전하였으나

해모수의 존재는 모호하였다

 

삼국사와 호태왕비를 연결하면 열쇠 하나가 떠오른다

북부여와 해모수의 연계 가능성이다.

 

비문에 기록된 17세 손이라는 수치도 예사롭지 않다

삼국사의 계보를 따르면 호태왕은 19대 임금이다

세대를 따져보면 대무신왕(호태왕비에는 주류왕)과 민중왕이 형제

모본왕태조대왕차대왕신대왕이 형제고국천왕과 산상왕이 형제

봉상왕과 미천왕이 사촌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이 형제로

호태왕은 시조인 추모로부터 세대수로 12에 불과하다.

 

5세의 공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북부여 5세대의 계승자(단군)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학계에서 배척하는 

북부여기에 5세 단군들의 휘(이름)가 적혀 있다

해모수모수리고해사고우루고무서이다.

 

삼국사의 淹㴲水(엄사수)에 비하여 호태왕비와 북부여기가 일치하여 

()利大水(엄리대수)로 기록한 점은 북부여기의 사료적 가치를 재평가할 근거가 된다.

 

이 두 가지 기록을 종합해 보면

고구리에게 북부여는 절대로 타자일 수 없으며

북부여가 소위 단군조선을 이은 나라였으므로 

천제의 나라를 이은 나라라는 틀에 무리가 없다

 

그렇다면 북부여의 창업 년도가 BCE239이므로 

고구리의 존속기간을 삼국사를 따라 705으로 할 것인지

호태왕비를 따라 907으로 할 것인지 숙고해볼 문제가 생긴다

더욱이 북부여기에 등장하는 지명이 고구리와 다를 바 없음도 주목을 끈다.

 

 

고리(고구리)라는 국호의 유래

 

고리(고구리)라는 국호의 유래도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인지라

이 글은 국호의 변경이 주제임에도 가볍게 다루고자 한다.

 

우선 고구리라는 기록은 매우 드물었고 고리라고 부른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그리고 고리의 기원은우리 사서에는 좀체 등장하지 않지만

세계 최초의 나라이면서 천자국으로 생각될 수 있는 

九黎(구리)’승계한 국가명이다.

 

지나는 삼황오제를 조상으로 생각하여 사마천의 사기가 오제본기로 시작된다

그나마 삼황은 전설로 치부되고 

5명의 帝()를 역사의 시작점으로 간주하는데 黃帝(황제)를 정점에 놓았다

그 황제가 소전의 아들이며 蚩尤(치우)를 정벌할 수 없었다고 하는 본문 구절이 있고

거기에 응소라는 식자는 치우는 옛 천자라고 주해하였고

관자는 치우가 쇠붙이로 다섯 병기를 만들었다’ 전하였으며

공안국은 구리 임금의 호가 치우라 풀이하였다.

 

그런가 하면 사학계에서 극구 위서라며 무시하는 원동중의 三聖記(삼성기)에 

구리의 다른 이름인 神市(신시)의 역대 환웅 18분을 소개하는데 

치우천왕의 다른 표현인 자오지환웅을 14번째 환웅이라고 하였다

환웅시대는 1565년간 지속되었고 

치우천왕의 재위는 BCE2707~2598 109년임을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그 환웅시대를 마감하는 분인 거불단이 웅국의 왕녀를 맞이하여 

임금탄생시키니 조선이 BCE2333建邦(건방; 건국)된다.

 

즉 고구리(고리)는 전전 국가의 이름을 승계하며건국의 표어로 다물을 사용한다

이는 조선의 영역과 정신을 잇겠다는 어휘라고 우리에게 상식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전전국가인 구리의 개천과 홍익사상’ 및 인간세상의 유일했던 국가를 승계하겠음을 선언한 것이다.

 

참고로 단군은 建邦(건방)한 분이고, ‘開天(개천)’ 환웅의 업적이다

우리가 흔히 분에 넘치는 욕심을 드러내는 者()

 건방진 놈이라고 비난할 때 사용하는 어휘인 그 건방의 어원이 여기에 있다

또 초대 단군의 휘를 王儉(왕검)이라 하는데이 또한 壬儉(임검임금)을 誤讀(오독잘못 읽음)한 것이다.

 

 

복잡한 신라 국명 

 

앞의 내용에서 검토하였듯이 삼국사의 신뢰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목차의 순서이다

신라본기고구리본기백제본기의 순으로 되어 있지만

과연 신라가 삼국을 대표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삼국사에 실려있는 기록으로 보면 북부여를 제외한 개국 순서와 함께

신라는 두 나라 멸망 뒤에도 270년이나 더 존속하였다거나

고리가 신라로부터 전쟁없이 선양받은 고리의 국민인 김부식이어서

신라 중심 사관으로 편찬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특히 신라의 경우는 이름도 여러 번 바뀌었고

심지어 언제 그 여러 국명이 확정되었는지조차 모호하기 때문에 

삼국의 대표성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그 기록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신라본기에 개국(BCE 58설화와 함께 국호 徐那伐(서나벌)이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탈해이사금 8(서력 65김알지탄생하는데

탄생지가 원래 始林(시림)이었던 곳을 鷄林(계림)으로 고치고 국호로 삼았다고 하였다

훨씬 후대로 가면서 김알지의 후손이 계속 임금의 위치를 차지함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박씨와 석씨가 임금이던 나라의 국호를 장래 임금 집안의 조상이 태어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고

그 탄생지를 국호로 삼는다는 사실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최치원전에 辰韓이 곧 신라라는 기록을 전하고 있으나

삼국지 위서에서는 弁辰(변진조에 斯盧國(사로국)이라는 기록과 

변진은 진한사람들과 뒤섞여 산다고 하여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梁書(양서)에 이르러서야 신라로 기록되며

辰韓을 秦韓”, “진한의 왕은 항상 馬韓 사람을 세워 대대로 이어가고

진한 스스로 왕을 세울 수 없었다” 

()나라 때는 新盧(신로)라 불렀고宋나라 때는 신라 또는 사로라 하였다는데 교차검증할 자료는 없다

南史(남사)는 양서를 복사한 수준이며그 이후는 신라 외의 국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15기림이사금 10(307)에 또 아무런 설명도 없이 

十年復國号新羅(국호를 다시 신라로 하였다)”고 하여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오히려 후대에 復國号新羅가 중복되는 기사와 삼국유사 연표에서 국호를 풀이하고 있으나

삼국유사는 혹은 지증ㆍ법흥의 대라고도 한다.’라는 사족이 덧붙여 있어 믿음직하지 않다

이 기록이 크게 의심되는 원인은 

이 시간 앞서 신라라는 국호를 정한 기록이 없었음에도 

(다시)라는 글을 사용하였다는 사실이다더욱이 다음 기사와 충돌한다.

지증마립간 4년(503)의 일이다.

 

四年, 冬十月, 羣臣上言, “始祖創業已來, 國名未定, 或稱斯羅, 或稱斯盧, 或言新羅. 臣等以爲新者德業日新, 羅者網羅四方之義, 則其爲國號宜矣. 又觀自古有國家者, 皆稱帝稱王. 自我始祖立國, 至今二十二丗, 但稱方言, 未正尊號, 今羣臣一意, 謹上號新羅國王.” 王從之.

4년(503) 겨울 10월에 여러 신하들이 아뢰기를, “시조(始祖)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국호를 정하지 않아사라, 혹은 사로, 혹은 신라라고도 말하였습니다. 신들이 생각하건대, ‘신’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라’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이니,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합니다. 또한 살펴보건대, 예로부터 국가를 가진 이는 모두 ‘帝(제)’ 또는 ‘왕’이라고 칭하였습니다. 우리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시고부터 지금 22세에 이르기까지 단지 방언으로만 부르고 존귀한 호칭으로 바로 잡지 못하였으므로, 이제 여러 신하들이 한 뜻으로 삼가 ‘신라국왕’이라는 호칭을 올립니다.”라고 하니, 왕이 이를 따랐다.

 

 

국가를 세우고도 국호를 정하지 않았다.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국호를 나열해 보면진한서나벌계림사라사로신로신라로 변경되었다

삼국유사의 기록까지 추가하면徐羅伐(서라벌), 徐伐(서벌)도 추가되는데

년표 이외에는 거의 신라유사라고 할 정도로 신라 이야기로 구성된 이 책에 

신라라는 국호가 결정되는 기록이 없다는 사실도 신기하다.

 

 

압두남의 유물과 복국호신라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압두남이라고 할 것임)에서 유물이 발굴되면

그 유물에 대하여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풀이가 이 나라 고고학계와 사학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경상도에서 발굴되면 신라의 유물

충청도와 전라도의 유물은 백제

김해지역에서 발굴되면 가야의 유물로 단정된다

 

금석문이 있어도 이 판정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 극단적인 예가 경주에서 발굴된 소위 호우총’의 호우 밑면 

너무도 선명하게 乙卯年國罡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

(을묘년 국강상 광개토지 호태왕 호우 10)’라고 양각되어 있으니 

그 무덤은 고구리에서도 최고위직 관리의 무덤이라 추정함이 상식이겠으나

잡다한 이유를 들어 신라의 무덤이라 단정하고 있음은 난감하다

그러한 경직된 사고로 올바른 역사 연구가 가능할까 매우 염려된다.

 

앞의 호우도 광개토태왕과 관련된 을묘년이라면 

태왕이 붕어하고 3년이 지난 415년으로 판단되었다

덕흥리 유주자사 진의 무덤중원고구리비 등등의 

고구리 유적과 유물이라면 그 연대 비정은 

대부분 5세기를 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에 천마총의 유물이던 금령총의 유물이던 

신라유물이 확실한 대부분이 5~6세기 이후의 것으로 판단되고 있으며

북한산의 진흥왕순수비 등의 유적 또한 명백하게 모두 500년대 이후의 것들이다

 500년이 고구리와 신라의 전환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유물의 연대와 앞의 지증마립간의 復國号新羅(복국호신라)’를 연계한다면 

이 기록은 대륙 신라의 기록이 아니라 압두남의 신라 기록으로 추정하여도 거의 무리하지 않을 것이다.

지증마립간은 신라계 왕으로 압두남을 포함한 만주의 영역을 503년 확실하게 확보하므로

그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국호를 변경하였다고 해석된다

이 땅이 신라의 영토였다는 확인은

신라의 기록보다 오히려 고구리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고구리 영류왕 14(631) 기록이다.

 

春二月, 王動衆, 築長城, 東北自扶餘城, 東南至海, 千有餘里. 凡一十六年畢㓛.

봄 2월에 왕이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장성을 쌓았는데, 동북쪽으로 부여성부터 동남쪽으로 바다에 이르기까지 천 리 남짓이었다. 모두 16년 만에 공사를 마쳤다.

 

이 장성의 위치가 만주 하얼빈 남쪽의 부여(현존 지명)에서

 海州(해주현재 요녕성 부신시 해주구)까지로 추정된다

공사를 마치기에 16년이 걸렸다 하였으니

영양왕 말년에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바

영양왕 22(611) 수 양제가 서쪽으로부터 거대한 군사로 침략하므로 

503년 독립(?)한 동쪽의 신라라는 후방의 방어를 확보하기 위한 대비책으로 추정할 수 있다

503년 復國号新羅(복국호신라)라는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 기록인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기림이사금 10(307)의 복국호신라와 함께 신라라는 국호를 

그 이전에 사용한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여전히 수수께끼.

 

오늘날과 달리 국경이 명확하지 않기도 하였지만, 지명이 소실되거나 고의로 변경하여 경계를 단정할 수 없다. 다만 503년 ‘복국호신라’, 낙랑공주 설화를 따라 추정하면 압두남과 만주의 영역은 32년 고구리의 영역이 되었다가, 500년을 분수령으로 하여 신라의 영역으로 전환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 추정은 고구리 영류왕의 ‘천리장성’ 공사의 목적, 압두남의 유물 변화로 뒷받침되지만 매우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백제 국호 변경의 수수께끼

 

백제는 창업자가 주몽의 아들인지 우태의 아들인지조차 불분명하다는 사실과 함께 

고구리와 백제라는 두 나라를 창업하는 어머니 역할로 창업하여

화제성도 풍부하고 엄청난 강역을 차지하였음에도

두 나라에 비하여 주목을 덜 받는 편이다

 

개로왕이 河水(하수강이라고 번역함은 번역 오류河는 황하를 뜻함)를 따라 

제방을 쌓는 등으로 건설에 집중하느라 국력을 소모하다 

고구리 장수왕에게 침략을 받고 멸망할 지경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문주왕 4삼근왕 3년이 지난

불과 7년 뒤 즉위하는 동성왕 때는 지나 대륙을 거의 다 삼키는 

괴력을 발휘하였음을 생각한다면 백제에 대한 평가는 불공평하다.

 

주몽이 부여를 탈출하기 전에 낳았던 아들인 瑠璃(유리호태왕비孺留<유류>)가 

아들임을 증명하는 증표를 들고 나타나므로 

주몽의 후계자로서 지위만이 아닌 권력의 비정함에 생명의 위협까지 예상되므로 남행하여 나라를 세운다.

 

그런데 신하 열 명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세웠다고 十濟(십제)’를 국호로 삼았다

(以十臣爲輔翼 國號十濟)는 사실조차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大義(대의)도 부족하다

더욱이 미추홀을 선택하여 도읍을 삼았던 형 비류가 실패하고 

그 백성이 위례성으로 옮겨서 뒷날 百濟(백제)로 고쳤다 하는데

언제인지 삼국사는 밝히지 않았다. ‘隋書(수서)’ 동이전과 北史(북사)’ 列傳 동이전에 

 

初以百家濟海 因號百濟

당초에 百家가 바다를 건너왔다(濟)고 해서 [나라 이름을] 百濟라 불렀다.

 

고 하였는데별로 동의할 수 없는 해설이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다른 지나 사서의 동이전이 전하는 내용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韓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辰 ~ 凡七十八國 伯濟是其一國焉

한은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마한, 둘째는 진한, 셋째는 변진이다. 모두 78개 나라로 伯濟(백제)는 그 중의 한 나라이다. (‘후한서’ 동이열전)

 

百濟者 其先東夷有三韓國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 弁韓·辰韓各十二國 馬韓有五十四國 大國萬餘家 小國數千家 總十餘萬戶 百濟卽其一也. 後漸强大 兼諸小國.

백제는 그 시초가 동이의 삼한국인데 [삼한국의] 하나는 마한이요, 다른 하나는 진한이요, 또 하나는 변한이었다. 변한과 진한은 각각 12국이 있었고 마한은 54국이 있었다. 대국은 1만여 가, 소국은 수천 가로서 모두 10여만 호가 되었는데, 백제는 곧 그 중의 한 나라였다. 뒤에 점점 강대하여져서 여러 작은 나라들을 합쳤다. (‘梁書<양서>’ 동이열전, ‘南史<남사>’ 이맥열전)

 

이러한 백제가 

 

삼국사 권26 聖王(성왕) 

16年 春 移都於泗沘 一名所夫里 國號南扶餘

16년(538) 봄에 도읍을 사비(所夫里<소부리>라고도 한다)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라고 하였다.

 

하였는데천도와 국호 변경의 명분이 일체 전하지 않고 있어 아쉽다

다만 삼국유사에서 注()로 전하기를

泗沘今之古省津也所夫里者扶餘之别號也

(사비는 지금의 고성진이며소부리는 부여의 다른 이름이다.)라 하였고

토지대장(원문은 量田帳籍<양전장적>)에 

今言扶餘郡者復上古之名也百濟王姓扶氏故稱之

(지금 부여군이고 말하는 것은 옛 이름을 되찾은 것이다

백제 왕의 성이 扶氏<부씨>였으므로 그렇게 불렀다.)라 하여 

사비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기록은 있으나 

국호 변경에 대한 해설은 없다. (앞 예문의 지금은 일연스님이 살던 고리를 말함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추정이지만 왕가의 出自(출자)에 대한 

정체성이 새삼스럽게 작용하는 계기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게다가 남부여라는 국호는 사용된 흔적조차 없다

이렇듯 백제의 국호 풀이는 기록에서 찾기 어려워()이 갖는 뜻을 그대로 옮겨 

백성들이 온갖(풍랑을 함께 건너(편하게 사는 나라를 건설하자고 풀이할 수 있다

즉 국민의 편안함도 국가의 태평도 국민의 할 탓이라는 뜻일 법하다.

 

 

황해를 차지하는 국가가 승자

 

삼국의 국호 변경을 종합하면

 

북부여 → 고리(고구리)

(진한) → 서나벌 → (사라, 사로) → 계림 → 신라

십제 → 백제 → 남부여 → 백제

 

사실 글을 시작할 때는 국호의 변경만을 다루고자 하였으나 

다음과 같은 통찰을 얻게 되었다.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라는 말로 판단하자면 삼국 가운데 강자는 당연히 신라다

그러나 개국 설화가 분명하더라도여러 사서의 기록을 종합하면 

국체 자체도 모호하고 또 초기의 국력은 미약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좀 더 보완 연구가 필요하지만 

복국호신라가 이루어지는 지증마립간 시대에 이 땅을 차지하고 

황해를 확실하게 내해로 삼으면서 국력이 크게 신장하여 최후의 승자가 된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503년 이전 고구리가 광활한 대륙과 압두남을 장악했던 힘

그리고 503년 이후 신라가 황해를 내해로 확보하며 최후 승자가 된 궤적은

국호 변경이 단순한 명칭 교체가 아니라 영역 재편의 정치적 선언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신라가 이 땅을 차지하여 바다를 확보하므로 강력한 국가로 거듭났다는 가설과 함께 

이 땅의 올바른 역사가 더 연구되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작성 2026.04.16 17:28 수정 2026.04.1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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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때문에 인생의 끝을 고민하고 계신가요
자전거 타기와 인생은 똑 같다. 자전거와 인생 이야기 #쇼츠 #sh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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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소중한 사람 #유활의학 #마음챙김 #휴식

나 홀로 뇌졸중, 생존 확률 99% 높이는 실전 매뉴얼

숨결처럼 다가온 희망. 치유.명상.수면.힐링

통증이 마법처럼 사라지다./유활도/유활의학/유활파워/류카츠대학/기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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