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종양학 권위자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낸 혁신적인 췌장암 신약이 마침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높은 문턱을 넘었다. 마땅한 치료 대안이 없어 이른바 '난공불락'으로 불리던 췌장암 치료 분야에 새로운 게임체인저가 등장하면서, 19조 원 규모로 팽창할 글로벌 시장을 향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도전도 한층 거세지고 있다.
미국 바이오기업 레볼루션 메디신스(Revolution Medicines)가 개발한 '다락손라십(Daraksonlasib)'이 미 FDA로부터 췌장암 2차 치료제로 공식 승인을 획득했다. 이번 승인의 배경에는 학계를 놀라게 한 압도적인 임상 결과가 자리 잡고 있다. 전이성 췌장암 환자 5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대규모 임상 3상 시험 결과, 다락손라십 투여군의 전체 생존 기간은 13.2개월로 나타났다. 이는 기존 화학 항암요법을 투여받은 대조군의 6.7개월 대비 무려 2배가량 연장된 수치다. 암세포의 증식이 멈추고 현 상태가 유지되는 무진행 생존 기간(PFS) 역시 기존 대비 2배 이상 늘어나는 고무적인 성과를 기록했다.
약물의 안전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지표가 확인됐다. 중증 부작용 발생 비율은 43.6%로, 기존 화학요법 투여군의 57.5%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을 보였다. 해당 임상 데이터는 앞서 올해 6월에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처음 공개되었으며, 당시 학회 현장에서는 최초의 항체약물접합체(ADC)인 엔허투 발표 이후 5년 만에 연구진을 향한 기립박수가 쏟아지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췌장암은 신체 깊은 곳에 장기가 위치해 있어 일반적인 초음파나 X선 검사로는 조기 발견이 극히 까다로운 질환이다. 뚜렷한 초기 증상이 없어 대부분의 환자가 이미 다른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된 말기 상태에서 진단을 받게 된다. 또한 췌장 주변에는 복잡하고 중요한 혈관들이 밀집해 있어 외과적 절제 수술도 쉽지 않다. 의료계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췌장암 최초 진단 시 수술적 치료가 가능한 환자의 비율은 전체의 10~15%에 불과하다. 더욱이 암세포 공격의 표적이 되는 유전자 변이 발견율이 낮아 췌장암만을 겨냥한 전용 표적항암제는 사실상 전무했으며, 최근 각광받는 면역항암제조차 췌장암 앞에서는 유의미한 효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락손라십의 등장은 췌장암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인구 고령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고연령층에서 주로 발병하는 췌장암 환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제약 산업 분석 기관들에 따르면, 글로벌 췌장암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6년 약 6조 원 수준에서 2034년에는 19조 5천억 원 규모로 3배 이상 급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주도하는 거대 시장에 K바이오 기업들도 잇따라 출사표를 던지며 본격적인 신약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가장 앞서가는 기업 중 하나는 제일약품의 신약 개발 전문 자회사인 온코닉테라퓨틱스다. 이 회사는 2021년부터 차세대 표적항암제 후보물질 '네수파립'을 연구개발 중이며, 국내 후보물질 가운데 췌장암 임상 분야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내고 있다. 네수파립은 췌장암을 필두로 위암, 난소암, 자궁내막암 등으로 적응증을 넓혀가고 있으며, 현재 국내에서 임상 2상을 진행함과 동시에 미국 FDA에 임상 2상 시험계획(IND) 제출을 서두르고 있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역시 췌장암 전용 표적치료제 '울레니스타맙'의 글로벌 임상 1/2a상을 진행하며 난치암 정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밖에도 고형암을 타깃으로 하는 유망 바이오텍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위암과 췌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자사의 이중항체 플랫폼 기반 후보물질인 '지바스토믹'의 임상 1b상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리가켐바이오의 경우 차세대 항암 기술로 꼽히는 항체약물접합체(ADC) 후보물질 'LCB02A'를 내세워 위암 대상 임상 1상을 거친 뒤, 향후 임상 2상 단계에서 췌장암으로 적응증을 대폭 확대한다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췌장암은 오랫동안 현대 의학이 정복하지 못한 최후의 보루로 여겨져 왔다. 이번 혁신 신약의 FDA 승인은 단순한 신약 출시를 넘어, 난치성 고형암 치료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쾌거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글로벌 항암제 시장에서 대한민국 바이오 기업들이 독자적인 표적항암제 및 ADC 기술력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점유율을 확보한다면, K바이오는 제2의 도약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한 임상 검증과 글로벌 규제 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국산 신약이 세계 무대에서 또 다른 기립박수를 받는 날이 앞당겨지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