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록의 도구가 바뀌면, 태도도 바뀐다
얼마 전,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받았다. 아내의 사촌 오빠께서 보내주신 만년필이었다. 등단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건네진 선물이었다. 상자를 여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필기구가 아니라 마음이 담긴 응원으로 다가왔다. 그 작은 물건 하나가, 생각보다 오래 손에 머물렀다.
낯설지만 깊은 첫 느낌
나는 그동안 볼펜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일기를 쓰고, 메모를 하고, 가족에게 편지를 쓸 때에도 늘 빠르고 편한 도구를 선택해왔다. 그래서인지 만년필은 낯선 존재였다. 조심스럽게 잉크를 채우고, 종이 위에 이름을 적어보았다. ‘슥, 슥.’ 종이를 스치는 소리가 생각보다 깊게 남았다. 단순히 글씨를 쓰는 느낌이 아니라, 무언가를 ‘남긴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속도는 느렸지만, 그만큼 마음은 더 오래 머물렀다.
더 잘 써야 할 것 같은 부담
하지만 동시에 낯선 부담도 따라왔다. 이 만년필로는 더 좋은 글을 써야 할 것 같았다. 더 의미 있는 문장만 남겨야 할 것 같았다. 괜히 한 줄을 쓰는 데도 망설여졌다.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쉽게 꺼내지 못하는 이유였다.
기록의 방식이 바뀌는 시대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의 기록을 빠르게 남긴다. 키보드로 입력하고, 화면으로 확인하며, 수정과 삭제가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그 속도는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생각을 깊게 머물게 하지 않는다. 반면, 손으로 쓰는 글은 다르다. 지우기 어렵고, 고치기 번거롭기 때문에 한 문장을 쓰기 전 더 오래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느린 기록은 자연스럽게 깊이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왜 ‘특별한 글’만 남기려 하는가
처음에는 이 만년필을 특별한 글에만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편지, 오래 남길 문장, 혹은 책에 담길 글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다. 기록이 특별해지는 이유는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 순간을 대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평범한 하루의 한 줄도, 그 마음이 담기면 충분히 의미가 된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나는 지금 기록을 남길 때 어떤 태도로 쓰고 있는가.
빠르게 남기는 것에 익숙해져, 생각을 충분히 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남기는 기록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고 있는가.
평범한 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도구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 만년필로 특별한 글을 쓰기보다, 평범한 하루를 더 천천히 기록해보자고. 기쁜 날도, 지치는 날도, 아무 일 없던 날까지도 있는 그대로 남겨보자고. 언젠가 시간이 흐른 뒤, 이 만년필로 쓴 글들을 다시 펼쳐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아마도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살아가고 있었던 한 사람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오늘도 나는 만년필을 꺼내 든다. 그리고 천천히, 한 줄을 적어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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