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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인 믿음의 세계를 감각의 영역으로 초대하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3)

보이지 않는 은혜가 눈에 보이는 실체가 되는 순간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 발견하는 존재의 인장

일상의 언어로 번역된 거룩한 연대의 예식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93문

 

Q. Which are the sacraments of the New Testament? A. The sacraments of the New Testament are, Baptism, and the Lord’s Supper.
문. 신약의 성례는 무엇입니까? 답. 신약의 성례는 세례와 성찬입니다.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9)
-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6-28) 

 

[이미지 제공=수현교회]

 

인간은 본질적으로 ‘호모 심볼리쿠스(Homo Symbolicus)’, 즉 상징하는 인간이다. 우리는 단순히 물리적인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물리적 실체 위에 겹쳐진 의미의 층위를 호흡하며 산다. 연인에게 건네는 반지는 단순한 금속 고리가 아니며, 국가 행사에서 게양되는 국가는 단순한 멜로디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들은 보이지 않는 가치와 약속, 그리고 소속감을 시각화하고 촉각화하는 강력한 기호다.

 

기독교 신앙 역시 이 지점에서 매우 감각적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유한함과 연약함을 아시고, 보이지 않는 영적인 은혜를 인간이 만지고, 맛보고, 느낄 수 있는 물리적 형식에 담아내셨다. 그것이 바로 '성례'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93문은 신약 시대의 성례가 오직 세례와 성찬 두 가지임을 명시하며, 신앙의 본질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적 감각과 결합하는지를 보여준다.

 

성례를 뜻하는 라틴어 ‘사크라멘툼(sacramentum)’은 본래 로마 군인이 황제에게 바치던 충성 맹세를 의미했다. 이는 단순한 형식을 넘어, 한 개인의 신분이 완전히 변화되었음을 공포하는 실존적 사건이었다. 헬라어로 성례는 ‘미스테리온(μυστήριο)’인데, 이는 신비로이 감춰져 있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드러남을 뜻한다.

 

기독교는 관념의 종교가 아니다. 오히려 로고스(λόγος)가 육신이 된 성육신(Incarnation)의 종교다. 하나님의 은혜는 공중에 떠도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물에 잠기고 떡을 씹는 구체적인 행위 속에서 성도들의 영혼에 인장처럼 찍힌다. 세례와 성찬은 바로 그 성육신적 원리가 현대인의 삶 속에서 재현되는 가장 거룩한 지점이다.

 

세례(Baptism)는 존재의 전환과 소속의 확정을 의미한다. 현대 심리학에서 '사회적 정체성'은 개인이 어떤 그룹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세례는 죄의 지배 아래 있던 옛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는 새로운 공동체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입단식'이자 '시민권 수여식'이다. 물은 죽음과 생명이라는 이중적 메타포를 지닌다. 노아의 홍수와 홍해 사건에서 물이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상징했듯, 세례의 물은 우리의 부패한 본성을 씻어내고 새로운 생명으로 일으켜 세우는 하나님의 능력을 시각화한다.

 

성찬(Eucharist)은 그 정체성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영적 에너지의 공급원이다. 성찬은 단순히 '과거 사건을 떠올리는 기억'이 아니다. '아남네시스(ἀνάμνησις)', 즉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효력으로 끌어오는 '살아있는 기억'이자 '결핍의 경제'를 '풍요의 공유'로 바꾸어 주는 전환의 자리이다.

 

세상은 남보다 더 많이 소유해야 살아남는 생존의 장이지만, 성찬의 자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무한한 자원을 모두가 평등하게 나누는 은혜의 장이다. 여기서 떡을 떼고 잔을 마시는 행위는 심리적으로 깊은 유대감과 위로를 제공한다. 공동체가 한 떡을 나눈다는 것은 서로가 연결된 하나의 유기체임을 확인하는 행위이며, 이는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고립감을 느끼는 개인들에게 가장 강력한 치유의 메시지가 된다.

 

설교가 '들리는 말씀'이라면, 성례는 '보이는 말씀'이자 '만져지는 복음'이다. 신자는 세례를 통해 자신의 신분을 확인하고, 성찬을 통해 그 신분을 유지할 힘을 얻는다. 이는 마치 스마트 기기가 충전기에 연결되어 에너지를 공급받고 최신 소프트웨어로 업데이트되는 과정과도 같다. 성례는 신자의 영혼이 하늘의 서버와 동기화되는 거룩한 접속의 시간이다.

 

세례와 성찬은 기독교 신앙의 공적이며 가시적인 고백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했다는 단번의 사건을 기억하며, 성찬을 통해 그 연합이 매일의 삶 속에서 지속되어야 함을 배운다. 일상의 번잡함 속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잊어버릴 때, 성례는 우리를 다시금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엄중한 현실로 불러들인다. 그러므로 성례는 구태의연한 종교적 예식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현대적이고 실존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세워주는 은혜의 방편이다. 우리는 이 거룩한 상징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고, 그분이 우리 인생의 진정한 주권자임을 고백하게 된다.

 

성례의 신비는 오늘도 떡과 잔, 그리고 물이라는 소박한 물질 속에 담겨 우리를 영원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작성 2026.06.01 14:49 수정 2026.06.0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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