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춘천 MBC 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수학여행 관련 ‘구더기 무서워 장독을 없애면 안 된다.’는 말로 꼭 가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한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사태가 되기까지 제대로 조처하지 않은 학교 관리자 기관인 교육부에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다. 하지만 오늘 기사는 이런 사태까지 흘러 온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아는 분 중에 수학여행 사고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고 다니는 분이 있었다. 그분을 알게 된 것은 그분이 정년을 일 년 정도 남겨둔 시점이었다. 보기에도 티가 날 정도로 다리를 저셨고, 조금 날씨가 안 좋거나 몸이 안 좋으면 다리 통증이 더 심해졌다.
그 선생님이 말한 대로 상황을 설명하면, 90년대 가던 중 자신이 인솔하는 반 아이들이 탄 버스가 사고가 났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부상자가 나왔고 본인도 다쳤다. 그 다음 이야기가 참 슬펐는데, 그렇게 교통사고가 났지만 치료를 제대로 못 받으셨다고 한다. 사고 관련 조사 받으러 다닌다고 치료는커녕 쉬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다리는 저는 상태가 되었고 승진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거듭된 조사로 사고가 본인 잘못은 아니었지만, 승진은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사고가 날 때 나이가 있던지라 새로운 곳에 취업도 생각하지 못하고, 가족은 부양해야 했기에 정년까지 버티셨다고 한다. 학교나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고, 본인 과실이 없다고 인정받을 때까지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셨다고 한다. 가까운 분은 아니기에 그 고통의 정도는 자세히 듣지 못했지만, 그분의 얼굴에서 말하는 중간에 고통이 얼굴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것으로 당시 심적 고통을 어림짐작할 뿐이다.
이처럼 학교에서 어떤 사고가 나면 관리자라 할 수 있는 교장이나 교감은 책임지려 하지 않는 체제이다. 체제가 그런데 그들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법적으로 누가 어디까지 얼마만큼 책임져야 하는지 정해지지 않는 한 이런 악순환은 계속되리라 생각한다.
수학여행이든 현장학습이든 교사가 학생을 데리고 학교 밖을 벗어나면 안전에 대해 누구보다도 예민해진다. 교사는 이동할 때마다 학생 수를 세고, 놓친 학생이 없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학생에 비해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은 학생은 몇 배의 주의를 기울이고는 한다. 교실과 달리 새로운 상황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는 예상 밖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열린 교육 이후 학생 인권을 강요하면서 교권과 수업권이 약해졌다. 학생 인권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상황은 이해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해방된 한국은 독재를 겪었다. 일제강점기나 해방 후 교사 양성은 제대로 되지 않고 급하게 이루어졌다. 교육과정과 교육 내용 등 교육 관련 정책도 체계 있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더 문제는 일제강점기 소학교 교실에도 칼을 차고 들어오던 교사들처럼, 사회 분위기처럼 교실 분위기가 독재적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군부 독재 시절에는 ‘교련’이라는 과목을 만들어서 학생들을 예비 군인으로 양성했다. 이때 가르친 교사 중 군인 출신이 많았고 이들의 방식은 상당히 폭력적이었다. 교련이 사라져도 이 교사들이 양성과정을 통해 다른 과목 교사로 남았다.
그리고 민주 정부가 되면서 이런 독재적인 방식을 벗어나기 위해 학생 인권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학생 인권은 중요하지만, 학생 인권만 강요하다 보니 여러 가지 폐단을 낳았다. 교권, 수업권 등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들은 무시되고, 법적으로 교사가 문제 상황에 제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교사 개인 재량에 맡겨지는 상황이다. 미국처럼 문제 있는 학생을 교감실에 보내서 그 시간에 해야 할 수업 분량을 마치고 교실에 돌아가거나, 유급 제도 등 지방교육청에서 마련해주는 방안이 전혀 없다.
2010년 교육청은 교육지원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학생 학부모 관리자 지원청일지는 몰라도 교사의 지원청은 아니다. 교사가 관리자와 문제가 있어도, 관리하는 원어민이 문제가 있어도 교사 개인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답변을 하는 게 교육지원청이다.
학생들의 인권이 중요한 만큼 같이 수업을 듣는 다른 학생의 수업권이 중요한 줄 모른다. 정책은 늘 극단적으로 오간다. 백년지대계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새로운 정책이 만들어질 때 변경 사항과 관련하여 영향받는 모든 사람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책을 입안하는 자들이 가져야 할 기본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런 통찰력도 없이 정책을 만들면 해마다 새롭게 정책을 만들고 다음 해에 폐기하게 되어 버린다. 그렇게 바뀌는 정책 가운데 현장에서 실제로 일하는 사람만 고통받는다. 정책을 만들고 보고 받는 상위기관은 현장의 상황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장독대도 장독대 나름이다. 조상들의 지혜대로 만들면 구더기가 잘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중간중간 구더기를 걷어내면 깨끗한 장을 만들 수 있다. 장독대를 잘 만드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이고, 구더기를 처리하는 것은 관리자의 일이다. 그러면 교사는 좋은 장을 만들면 된다.
상위기관은 각자가 할 일을 분명히 정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수학여행이나 현장학습을 밀어붙이는 것은 독재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수학여행 시작 자체가 일제강점기 극기(克己)와 단체 훈련에 주력하여 군국주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수학여행과 식민교육
-https://contents.history.go.kr/front/km/view.do?levelId=km_022_0050_0040
일제강점기 허리에 칼을 찬 교사
https://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10692
교련교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482027.html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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