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65문
Q. What is forbidden in the fifth commandment? A. The fifth commandment forbiddeth the neglecting of, or doing anything against, the honor and duty which belongeth to every one in their several places and relations.
문. 제5계명이 금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제5계명이 금지하는 것은 각 사람의 지위와 관계에 따라 마땅히 돌려야 할 존경과 의무를 소홀히 하거나 거스르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ㆍ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 15:4-6)
ㆍ 화 있을진저 이스라엘 목자들아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겔 34:2-4)
ㆍ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

현대 사회의 위기는 흔히 경제적 불황이나 정치적 갈등에서 온다고 믿기 쉽지만, 인문학적 시선으로 깊게 들여다보면 그 뿌리에는 '관계의 태만'이 자리 잡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65문은 제5계명이 금지하는 부정적 행위로 '소홀히 함(Neglecting)'과 '거스름(Doing anything against)'을 명시한다. 이는 단순히 외적인 폭력이나 반항만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행해야 할 존중의 의무를 방치하는 '부작위(Omission, 법적·사회적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의 죄까지도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그냥 두면 사람들이 '여기는 관리되지 않는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더 많은 파손이나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깨진 유리창 법칙(Broken Windows Theory)'은 사소한 무관심이 어떻게 거대한 무질서로 번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소요리문답의 원리는 이를 관계에 적용한다.
부모와 자녀, 상사와 부하, 동료와 동료 사이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예우를 '소홀히' 하기 시작할 때, 공동체의 근간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특히 에스겔서의 경고처럼, 리더가 자신의 배를 채우느라 연약한 자를 돌보지 않는 태만(Neglect)은 조직을 영적으로, 심리적으로 고사시킨다. 이는 권위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가장 비겁한 폭력이다.
관계에서의 무관심은 직접적인 공격보다 더 깊은 내면의 상처를 남긴다. 소요리문답은 우리가 각자의 '지위'와 '관계'에 따라 져야 할 고유한 무게가 있다고 말한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는 것, 경영자가 직원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 모두가 제5계명을 거스르는 일이다.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는 명분을 내세워 실제적인 부모 봉양의 의무를 회피했던 당대 종교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질타는, 오늘날 명분과 효율성 뒤에 숨어 관계의 책임을 회피하는 현대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직장이나 비즈니스 현장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수평적 문화를 지향한다는 명목하에 선배의 경험을 무시하거나, 반대로 직위를 이용해 후배의 공로를 가로채는 행위는 모두 제65문이 금지하는 '존경과 의무의 훼손'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언급한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는 권면은, 우리가 타인에 대해 가져야 할 도덕적 채무 의식을 강조한다. 타인의 명예를 지켜주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이름의 지위를 가진 모든 이가 서로에게 갚아야 할 거룩한 부채인 셈이다.
소요리문답 제65문은 우리에게 '관계의 적극적 수호자'가 될 것을 요청한다. 단순히 사고를 치지 않는 소극적 윤리를 넘어, 내 주변 사람들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도록 능동적으로 존경을 표현하고 의무를 이행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타인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거나 소홀히 대할 때, 우리는 사실 그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관계 속에 우리를 두신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셈이다.
무너진 관계의 질서를 바로잡는 시작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지위'를 인정하고 그에게 마땅한 '무게'를 실어주는 작은 성실함에서 시작된다.
허동보 목사 | 수현교회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