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 박동명 한국정책연구원장은 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을 역임하고, 서울특별시 공익감사위원, 서울 강남구 결산검사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국회의정연수원과 행정안전부 지방자치인재개발원 등에서 지방재정과 지방의회 운영을 주제로 강의하며, 지방재정의 책임성과 효율성 제고를 위한 연구와 교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방재정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예산이 부족하다”는 표현부터 꺼낸다. 물론 지방정부의 재정 사정이 넉넉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오늘의 지방재정 문제를 더 정확히 진단하자면, 단순히 돈이 적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돈이 어떤 구조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위해 쓰이고 있는가의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예산개요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총예산 규모는 2015년 173조 2,590억 원에서 2024년 310조 1천억 원으로 커졌고, 2025년에는 326조 원으로 증가하였다. 사회복지 분야 예산 비중도 2015년 27.8%에서 2024년 33.3%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수치만 보면 지방재정의 외형은 분명히 성장하였다. 그럼에도 주민 다수가 생활의 변화를 충분히 체감하지 못한다면, 이제는 예산의 총액보다 예산의 구조와 사용방식을 물어야 한다.
지방재정의 본질적 한계는 바로 재원의 성격에 있다. 2025년 지방예산 기준으로 자체수입은 145조 6천억 원인 반면, 지방교부세와 국고보조금 등을 포함한 이전수입은 150조 9천억 원이다. 이는 지방정부 예산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중앙정부 재원에 의존하고 있음을 뜻한다. 더구나 국고보조사업은 용도와 집행방식이 세세한 지침으로 묶이는 경우가 많고, 복지지출의 상당 부분은 법정·의무지출 성격을 가진다. 결국 지방자치단체가 편성하는 예산 전체가 모두 ‘자율재정’은 아니다. 겉으로는 수백조 원의 지방재정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지역의 사정에 맞게 전략적으로 재설계할 수 있는 재량영역은 예상보다 훨씬 좁다. 이것이 바로 지방재정 논의가 단순한 총액 증대론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이유이다.
이 구조 아래에서는 지자체의 예산운영도 일정한 방식으로 쏠리기 쉽다. 자율재원이 넉넉하지 않고 중앙지침과 매칭 부담이 큰 상황에서는,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모두 상대적으로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나는 사업에 관심을 기울일 가능성이 높다. 도로, 건물, 공원, 각종 시설물은 눈에 잘 보이고 성과를 설명하기도 쉽다. 반면 돌봄, 교육, 복지, 정신건강, 공동체 회복, 생활서비스 혁신은 꾸준한 운영비와 인력, 장기평가 체계가 필요하며, 그 효과가 천천히 나타난다. 그래서 정치적으로는 덜 화려하고 행정적으로는 더 어렵다. 결국 지방재정이 “보이는 예산”에는 강하지만 “삶을 바꾸는 예산”에는 약해지는 현상이 반복된다. 주민이 체감하는 정책성과가 낮은 이유는 종종 예산 부족이 아니라 예산의 철학과 우선순위의 문제에 있다.
이제 지방재정은 “얼마를 더 확보할 것인가”라는 질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누구를 위해, 어디에, 어떤 기준으로 쓸 것인가”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재정분권은 구호가 아니라 세입 구조의 개혁이어야 한다. 최근 정부는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대 3 수준으로 개선하겠다는 방향을 계속 제시하고 있다. 2025년 지방재정전략회의와 지방자치 미래비전 발표에서도 국세-지방세 비율 7:3, 지방교부세율 상향, 지역자율계정 확대 등이 재정분권의 핵심 과제로 언급되었다. 이 말은 단지 숫자를 조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방정부가 지역 문제를 스스로 판단하고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으려면, 중앙이 내려주는 돈보다 지역이 스스로 확보하고 설계할 수 있는 돈이 늘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지방세 비중이 충분히 확대되지 않는 한, 지방의 자율성은 결국 중앙의 교부세와 보조금, 공모사업 구조 안에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자치의 외형이 아니라 자치의 실질을 만들려면 세입 구조의 자율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둘째, 국고보조금 제도는 용도 통제형에서 성과·목표 중심형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의 구조는 중앙이 사업을 설계하고 지방이 대응자금을 마련하며 집행하는 방식에 가깝다. 이러한 체계에서는 지방이 지역 특성에 맞는 대안을 설계하기보다 중앙 기준을 맞추는 데 힘을 쓰게 된다. 최근 정부 역시 국고보조사업 공모방식 개선과 지역자율계정 확대를 함께 언급하고 있다. 이는 지방이 보다 폭넓은 재정운용 재량을 가져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연결된다. 앞으로는 중앙이 최소 기준과 정책 목표를 제시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과 설계는 지방이 책임지는 방식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인구감소 대응, 청년 유출 방지, 생활돌봄 강화, 지역문화 진흥, 노인복지 통합 같은 분야에서 지역 맞춤형 모델이 가능해진다. 지방은 단순 집행기관이 아니라 생활문제 해결의 설계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셋째, 예산의 중심을 시설에서 서비스로 옮겨야 한다. 지방재정은 오랫동안 “무엇을 지을 것인가”에 익숙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지역정책은 “어떤 삶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주민센터를 하나 더 짓는 것보다 기존 시설을 더 잘 활용하여 돌봄, 문화, 평생학습, 정신건강, 청년상담, 고립가구 지원, 아동·노인 통합서비스를 촘촘하게 연결하는 편이 주민 삶에는 더 실질적일 수 있다. 특히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심각한 지역일수록 토목 중심 확장보다 생활서비스의 질과 접근성을 높이는 전략이 중요하다. 지방재정의 진짜 성과는 건물이 완공되었느냐가 아니라 주민의 불편이 줄어들었느냐, 취약한 삶이 회복되었느냐, 지역공동체가 유지되었느냐로 평가되어야 한다. 예산은 구조물의 전시가 아니라 생활의 변화로 증명되어야 한다.
넷째, 지방의회의 역할도 숫자 심사를 넘어 방향 심사로 전환되어야 한다. 지방의회는 예산안과 결산을 다룰 때 “얼마나 편성되었는가”만 볼 것이 아니라 “왜 이 사업이 우선순위가 되었는가”, “전년도 결산과 성과평가 결과가 반영되었는가”, “불용과 이월이 반복되는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가”, “성과지표가 주민 삶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는가”를 보아야 한다. 예산심사는 단순한 삭감의 기술이 아니라 정책 우선순위의 재배치이다. 결산심사 역시 적법성 점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반복되는 저집행, 낮은 집행률, 형식적 성과지표, 관행적 편성, 보여주기식 사업을 드러내고 다음 예산으로 환류시키는 것이 지방의회의 핵심 역할이다. 결국 지방의회가 예산의 방향을 묻지 않으면, 집행부 역시 예산을 전략적으로 바꾸기 어렵다.
다섯째, 재정 민주주의를 위해 주민에 대한 설명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지방재정은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언어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주민은 자기 지역의 예산이 어디에 얼마나 쓰이는지, 그 결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도 지방재정 정보공개 확대와 접근성 개선을 강조하고 있지만, 형식적 공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주민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지표, 생활 사례로 재정을 설명해야 한다. “예산이 얼마 늘었다”는 말보다 “아이돌봄 대기기간이 얼마나 줄었는가”, “청년주거 지원의 실제 수혜율이 얼마나 높아졌는가”, “고립가구 발굴과 연계 서비스가 얼마나 개선되었는가”와 같은 질문으로 재정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재정은 전문가들만의 장부가 아니라 주민과 행정, 의회가 함께 책임지는 공적 약속이기 때문이다.
지방재정의 미래는 결국 선택의 문제이다. 더 많은 돈을 가져오는 데만 몰두할 것인지, 아니면 이미 확보된 돈의 용도와 방향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물론 재정분권은 필요하다. 그러나 분권은 돈을 더 많이 나누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지역이 스스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주민의 삶에 실제 도움이 되는 곳에 쓰며, 그 결과를 의회와 주민 앞에 투명하게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나는 지방재정을 오래 지켜보며 한 가지를 반복해서 확인하였다. 예산의 문제는 액수보다 방향이었고, 재정의 성패는 규모보다 철학이었다. 지방재정이 앞으로도 눈에 보이는 시설과 단기성과 중심으로만 흘러간다면, 아무리 총액이 늘어나도 주민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예산의 우선순위를 생활서비스, 공동체 회복, 돌봄, 교육, 지역복지, 미래세대 투자로 옮기고, 지방의회가 그 방향을 엄정하게 점검하며, 주민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결과를 설명한다면 지방재정은 지역의 미래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제 지방재정 논의는 “얼마나 더 가져올 것인가”에서 “어디에, 어떻게, 왜 쓸 것인가”로 넘어가야 한다. 지방재정의 크기는 이미 상당히 커졌다. 남은 질문은 단 하나이다. 그 돈이 과연 주민의 삶을 더 낫게 만들고 있는가. 지방재정의 진짜 문제는 크기가 아니라, 용도와 방향이다.
▷법학박사,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상임이사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