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琉球) 왕국의 물봉행소(物奉行所)는 단순한 재무 부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왕국의 세금, 물자, 창고, 왕실 재산, 공물, 상납미까지 통제한 중앙 재무 권력이었다.
1609년 사쓰마 번(薩摩藩)의 침공 이후 류큐 왕국은 막대한 상납 부담과 재정 혼란에 시달렸고, 이를 정비하기 위해 17세기 후반 하네지 쵸슈(羽地朝秀)의 행정 개혁이 추진되었다.

하네지 쵸슈는 평정소(評定所)를 중심으로 왕부 행정을 재편했다. 상어좌(上御座)에서는 섭정(摂政)과 삼사관(三司官)이 최고 결정을 내렸고, 하어좌(下御座)에서는 실무 관료들이 국정 현안을 협의했다. 이 하어좌의 핵심이 바로 표15인(表十五人)이었다.
표15인은 류큐 왕부의 실무형 국무회의였다. 그중 물봉행소 소속은 물봉행 3명과 음미역(吟味役) 3명, 총 6명에 달했다. 이는 류큐 왕국에서 재정과 경제가 국정 운영의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봉행은 우에카타(親方), 음미역은 페친(親雲上)이 맡아 슈리성 북전(北殿)에서 정책을 논의하고 집행했다.
물봉행소는 요이방(用意方), 급지방(給地方), 소대방(所帯方)이라는 3대 부서로 나뉘었다. 요이방은 국가 재산과 산림, 하천, 왕실 물품을 관리했다. 산봉행소(山奉行所), 사탕구라(砂糖蔵), 대대소(大台所), 요리좌(料理座), 최촉방(催促方) 등이 산하에 있었으며, 왕실 자산과 주요 생산물을 통제했다.
급지방은 관리들의 봉록과 여비, 국가 지출을 담당했다. 감정좌(勘定座), 선수구라(船手蔵), 급지좌(給地座), 구조구라(救助蔵) 등을 통해 회계, 선박, 녹봉, 구휼 물자를 관리했다. 왕국 예산을 배분하고 지출을 조정하는 기관이었다.
가장 강력한 부서는 소대방이었다. 소대방은 조세 징수와 국고 출납을 담당했다. 전지방(田地方), 취납좌(取納座), 미구라(米蔵), 전구라(銭蔵)가 있었고, 특히 사쓰마 번에 바치는 연공미를 관리한 시아게세좌(仕上世座)가 이곳에 속했다. 미야코구라(宮古蔵), 소철방(蘇鉄方)까지 존재했다는 점은, 소대방이 사키시마 인두세와 빈농의 구황 체계까지 통제했음을 보여준다.
결국 물봉행소는 왕국을 유지한 경제적 심장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민중의 생산물과 생존 자원을 치밀하게 흡수한 수탈의 장치이기도 했다.
물봉행소(物奉行所)는 류큐 왕국의 재정, 조세, 물자, 국고를 통제한 중앙 재무 행정의 핵심 기관이었다. 요이방은 국가 재산과 왕실 물자를, 급지방은 봉록과 지출을, 소대방은 조세와 상납미를 장악했다. 이들은 표15인(表十五人)의 일원으로 국정 운영에 깊이 관여했으며, 왕국을 지탱한 동시에 민중 수탈을 제도화한 차가운 권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