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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법의 그물 안에 갇힌 영혼들에게: 무프티와 파트와, 그리고 복음이 던지는 질문

무프티의 파트와는 왜 당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는가, 이슬람 율법과 기독교 복음의 결정적 차이

평생 법을 지켜도 자유가 없는 이유: 파트와 제도가 만들어낸 신앙의 감옥

신의 뜻을 대리하는 자 '무프티' — 그 권위의 실체와 복음주의가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어느 문명이든 '누가 신의 뜻을 해석하는가?'를 둘러싼 권력 투쟁이 존재해 왔다. 그 투쟁은 때로 외교 분쟁의 형태를 띠고, 때로는 종교 전쟁의 이름을 빌려 폭발한다. 그것은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갈증, 즉, '나는 어떻게 신 앞에 설 수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이슬람의 '무프티': 샤리아의 해석자, 삶의 설계자

 

'무프티'를 단순히 이슬람 사원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이맘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맘이 예배의 인도자라면, 무프티는 이슬람법인 샤리아를 해석하는 법학자이다. 그는 무슬림들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천 가지 질문에 대해 '파트와'라는 종교적 유권해석을 내린다. 실제 법정에서 판결을 선고하는 이가 '카디'라면, 그 판결의 법리적 기초를 다지는 이가 바로 ‘무프티’다.

 

수니파 이슬람 세계에서 ‘대 무프티(Grand Mufti)’의 권위는 단순히 종교적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대 무프티, 이집트의 다르 알-이프타(Dar al-Ifta)가 내놓는 파트와는 수억 명의 무슬림 신앙생활 전반을 규율한다. 할랄 식품의 범위, 금융 거래의 이슬람적 적법성, 전쟁의 종교적 정당성, 심지어 SNS 사용 윤리까지, 파트와의 영역에는 경계가 없다. 그러니 '어느 나라의, 어느 성향을 지닌 무프티가 우리 공동체를 이끄는가?'라는 문제는 무슬림들에게 단순한 인사권(人事權)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기준을 누가 쥐는가, 곧, 존재론적 생존의 문제다.

 

파트와의 세계: 끝나지 않는 해석의 미로

 

이슬람 법학의 방대함은 실로 경이롭다. 꾸란과 하디스를 기초로, 이즈마(학자들의 합의)와 키야스(유추 해석)를 통해 파생된 판례들은 수천 년에 걸쳐 산처럼 쌓여 있다. 무프티는 이 거대한 법리의 숲을 헤쳐나가 현실의 질문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무엇을 먹어도 되는지, 누구와 계약을 맺어도 되는지, 어떤 방식으로 기도해야 유효한지를, 그것도 매 순간, 매 상황에서, 확인해야 한다.

 

꾸란 5장 3절은 "이날 내가 너희를 위한 너희의 종교를 완성하였노라"라고 선언한다. 이슬람은 이 구절을 근거로 삶의 모든 영역이 이미 신의 계시 안에 포괄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완전한 계시를 적용하는 일은 전문 법학자의 몫으로 귀속된다. 결과적으로, 평범한 무슬림은 신 앞에 직접 나아가는 대신, 무프티의 해석을 경유해야 한다는 구조적 딜레마에 빠진다. 신앙이 법학이 되고, 헌신이 법조문의 이행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가 여기서 발생한다.

 

기독교 복음의 렌즈: 율법으로 의로워질 수 있는가

 

이 지점에서 기독교 신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 20절에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라고 선언했다. 이것은 이슬람을 향한 적대적 선언이 절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인류 전체를 향한 뼈아픈 진단이다.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비판했던 바울의 시선은, 어느 시대 어느 종교든 '행위의 완성으로 신에게 이르려는 인간의 오래된 충동'을 겨냥한다.

 

법을 아무리 촘촘하게 해석하고, 그 그물망을 통과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해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깨어진 관계는 회복되지 않는다. 이를 기독교 신학의 언어로 이것을 말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죄의 문제는 도덕적 실수의 누적이 아니라, 존재론적 단절의 문제다. 그리고 존재론적 단절은 더 정교한 법 해석이 아니라, 그 단절을 몸소 감당하신 분,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

 

권위의 원천: 학식인가, 생명인가

 

이슬람에서 ‘무프티’가 가진 권위는 수십 년의 경전 연구와 법학적 성취에서 비롯된다. 이슬람 세계 최고의 무프티가 되기 위해서는 아랍어 고전, 꾸란 암송, 하디스학, 이슬람 법학의 4개 주요 학파(하나피, 말리키, 샤피이, 한발리)에 대한 정통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 학문적 깊이는 분명 경이로울 정도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는 전혀 다른 원천에서 나왔다. 마태복음 7장 29절은 군중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서기관들은 당시 유대 율법의 최고 전문가들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들의 학식에는 경탄하면서도, 예수의 말씀 앞에서만 영혼이 흔들리는 전혀 다른 차원의 권위를 감지했다. 제도가 부여한 권위는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지만, 생명을 살리는 권위는 오직 진리의 말씀 그 자체에서만 흘러나온다. 비록 ‘무프티’가 아무리 방대한 법학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그의 입에서 나오는 ‘파트와’가 한 영혼의 죄책감을 씻어내거나 죽음의 공포를 이길 힘을 줄 수는 없다.

 

법의 감옥과 복음의 자유: 두 세계의 경계에서

 

이슬람의 ‘파트와’가 지배하는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경험일까? 먹을 것 하나, 거래 하나, 결혼 하나, 삶의 모든 결정이 종교 법학자의 유권해석을 통해 '합법' 또는 '불법'으로 구분되는 세계. 그 세계 안에 살아가는 무슬림들은 표면적으로는 신에게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 깊은 곳에는 끝없는 자기 검열과 정죄의 피로가 쌓인다. '내가 오늘 제대로 이행했는가?', '내 행위가 심의 기준에 부합했는가?', 이런 질문은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불안 속으로 인간을 몰아넣는다.

 

예수는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선언했다. 여기서 '자유'는 단순히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의 회복에서 비롯되는 자유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안에서 발견하는 존재론적 해방, 더는 내 행위의 완성도로 신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되는 상태. 히브리서 10장 1절은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슬람의 ‘파트와’의 세계가 그림자라면, 그 실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도래했다는 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 주장이다.

 

무슬림 친구들에게 건네는 솔직한 고백

 

오래전에 무슬림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기억난다. 그는 내게 물었다. "기독교는 왜 그렇게 법이 없어요? 이슬람은 모든 것이 명확한데. 그런 그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대신 우리에게는 명확한 법 대신, 명확한 사랑이 있습니다."

 

평생, 법의 언어로 신앙을 배운 이들에게 '은혜'를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아무 조건 없이, 아무 '파트와'의 이행 없이, 그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이슬람적 사고의 틀 안에서는 처음에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복음의 스캔들’이다. 에베소서 2장 8절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선언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법의 그늘에서 평생 주인을 바라보던, 그 눈빛으로 신을 바라보는 무슬림 친구들에게, 나는 오늘 이런 한 마디를 건네고 싶다. 당신이 찾던 안식은 더 정밀한 ‘파트와’ 안에 있지 않다. 율법의 모든 요구를 단번에 감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라고 선언하신 분 안에 있다. 그분은 당신의 ‘무프티’가 되시기를 원하지 않는다. 당신의 아버지가 되시기를 원하신다.

 

법의 언어가 닿지 못하는 그 깊은 곳, 당신의 두려움과 피로와 갈망이 뒤엉킨 그곳에서.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을 부르고 계신다. 끝없는 ‘파트와’의 미로 너머에서 그 부드럽고 단호한 음성이 들려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이것이 ‘무프티’의 ‘파트와’가 절대 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복음이다.

작성 2026.04.12 11:09 수정 2026.05.08 00:49

RSS피드 기사제공처 : 중동 디스커버리 / 등록기자: 김요셉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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