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의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미국 시민들에게 특별한 공개서한을 보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 편지로 이란이 역사적으로 침략이나 식민주의를 추구한 적이 없으며, 타국을 지배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명확히 밝혔다. 특히 그는 이란 국민이 미국과 유럽, 그리고 주변 이웃 국가들에 대해 어떠한 적대감도 품고 있지 않다는 평화적인 메시지를 강조했다. 이란이 지리적, 역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항상 비공격적인 노선을 선택해 왔다는 점을 설명하며 국제 사회와 화해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서신은 갈등 완화를 위해 미국 대중의 이해를 구하려는 이란 지도부의 외교적 노력으로 보인다.
미국 국민에 띄운 대통령의 서신, ‘체제 전복’의 파고를 넘는 고도의 심리전과 공존의 서사
2026년 4월, 지정학적 화약고라 불리는 중동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파격적인 외교적 기동이 시작되었다.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백악관의 공식 외교 서신이 아닌, 미국 시민들의 안방을 향해 직접 ‘공개 서신’을 띄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과 ‘레지임 체인지’ 담론이 거세지고, 마크롱과 다카이치 등 글로벌 리더십이 자국 우선주의로 재편되는 미묘한 시점이다. 이 편지는 단순한 안부 인사가 아니다. 냉전의 두꺼운 얼음을 깨기 위해 설계된 정밀한 타격이자, 적으로 규정된 이들의 마음속에 ‘이성적인 주권 국가’라는 새로운 씨앗을 심으려는 공공외교의 정점이다. 이란 대통령이 국가 간의 장벽을 넘어 타국 시민들에 직접 말을 건넨 배경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
왜 지금, 공식 외교 관례를 깨뜨렸는가
국제 관계의 관습법상 국가수반의 메시지는 상대국 외무부나 대사관을 거치는 것이 상례다. 하지만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 과정을 과감히 생략했다. 이는 미국 정부의 대(對)이란 적대 정책이 요지부동인 상황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힘인 ‘여론’을 직접 공략하겠다는 계산이다.
그는 이란을 향해 쏟아지는 ‘테러 지원국’ 혹은 ‘불량 국가’라는 프레임을 벗기 위해 ‘역사적 자부심’을 전면에 내세웠다. 서신에서 그는 “이란은 현대 역사 속에서 결코 침략이나 식민주의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라고 선언한다. 이는 미국 내부에서 점증하는 고립주의 여론과 “우리가 왜 중동의 전쟁에 개입해야 하는가?”라는 시민들의 피로감을 정확히 파고든 전략이다. 정부는 믿지 못해도, ‘역사적 진실’을 말하는 한 인간의 호소에는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믿음이, 이 파격 행보의 동력이다.
무엇을 말하고, 누구의 마음을 흔드는가
이번 서신의 핵심은 ‘분리’와 ‘재설정’이다. 페제시키안은 미국 정부와 미국 국민을 철저히 분리한다. 정부의 압박은 비판하되, 시민들의 선의와 호의에는 경의를 표하는, 이른바, ‘트랙 2(Track II)’ 외교의 전형이다. 그는 이란의 국가 정체성이 서방이 규정한 악의 축이 아니라, 오랜 문명을 지탱해 온 평화 지향적 주권 국가임을 피력한다.
동시에 이 메시지는 대미 의존도가 높은 유럽 국가들을 향한 ‘쐐기 전략(Wedge Strategy)’이기도 하다. 미국 시민들에게 유화책을 펴는 모습은 유럽 리더들에게 “이란은 대화가 가능한 상대”라는 명분을 제공한다. 이는 경제 제재의 촘촘한 그물망에 균열을 내고, 이란을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재정의하려는 고도의 포석이다.
역사의 현장에서 충돌하는 시각들
현실 외교 무대에서 반응은 엇갈린다. 페제시키안이 강조한 ‘현대 역사에서의 무 침략’ 선언은 서방 정보 당국의 시각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이라크 내 친이란 무장세력 등 이른바 ‘저항의 축’을 통한 대리전(Proxy Wars)은 국제 사회가 이란을 향해 품고 있는 가장 큰 불신의 이유다.
그럼에도 페제시키안이 ‘현대 역사’라는 특정 프레임을 사용한 것은, 과거 페르시아의 영광과 현재의 방어적 국방 전략을 교묘히 결합해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테헤란의 거리에서 만난 한 전문가는 “이 편지는 서방의 비난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방어막인 동시에, 중동 내에서 책임 있는 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2026년 봄, 이란의 외교 지평은 그렇게 한 장의 편지로 인해 격동하고 있다.
차가운 수사 너머, 인간의 체온이 닿을 수 있을까
결국 이 서신이 던진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영원히 적으로 남아야 하는가?”이다. 페제시키안의 외교적 기동이 고립을 피하기 위한 일시적인 전술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글로벌 이란’으로 나아가려는 시대적 피벗(Pivot)인지는 시간이 증명할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 장치가 멈춰 선 곳에서 그는 ‘글’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도구를 집어 들었다는 점이다.
서방의 냉철한 검증은 계속되겠지만, 그와 별개로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국제 정치의 본질을 다시 묵상하게 된다. 미사일과 제재가 오가는 틈바구니에서도 누군가는 여전히 대화를 꿈꾸고, 한 장의 편지가 수만 발의 탄환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이 편지가 위기 극복을 위한 세련된 기만일지,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서막일지 지켜보는 우리의 시선은 냉철하되, 그 속에 담긴 평화를 향한 갈망만큼은 따뜻하게 남겨두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