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화과 이야기 4 - 정진채 지음
살구꽃, 복사꽃들이 구름처럼 작은 가지 끝에서 피었다가, 함박눈처럼 흩날려 검은 땅을 덮었습니다.
봄이 짙어 갈수록 노인의 초가에선 질그릇 부딪는 소리가 줄어 들었습니다.
헬쓱해진 얼굴의 소년이 살구나무 밑에서 콩알 만 한 풋살구 의 낙과를 줍고 있었습니다.
무화선녀 나무는 돌감나무 곁에서 소년의 아픔을 나누어 갖고 싶었습니다.
“여보셔요, 돌감나무님.”
무화선녀 나무가 돌감나무를 불렀습니다.
돌감나무는 뜻밖이 라는 듯 무화선녀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저어, 꽃이 없어도 열매는 맺을 수 있나요?”
돌감나무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먼저 나처럼 꽃부터 만들어요. 그런 다음에 천천히 과일을 키우고 익혀야 하는 거야요. 그렇지만 그 일도 목숨을 거는 아픔 이 있어야 하는 게지요. 아기 열매들을 손끝에 달고 팔이 휘어지는 아픔을 비바람 속에서 견뎌야 한다구요. 하지만, 그 아픔이 가을날 행복을 가져다주는 거야요. 한데, 당신은 꽃을 만들 수 없나요?”
돌감나무가 물었습니다.
“꽃이 싫어서요.”
무화선녀는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옥황상제님에게 되돌아갈 수 있는 날이 더 멀어진 셈입니다.
그렇지만 무화선녀 나무는 그 편이 더 좋았습니다.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인간세상은 변화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른 나무들처럼 꽃을 피울 수 없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땅에 내려오길 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름이 되었습니다.
초록빛 손바닥을 하늘로 펴들고 무화선녀 나무는 이슬을 받아 마시며 살았습니다.
먹구름 속에서 성난 옥황상제님의 목소리를 여러 차례나 들어 야 했던 길고 무더운 여름이 지나갔습니다.
“아무래도 난 인간세상이 좋은 걸.”
모진 바람이 온 몸을 할퀴고, 폭풍우가 일어 팔을 있는 대로 뒤 틀어 하늘나라의 선녀였던 옛 기억이 밤하늘의 별처럼 아스라이 멀어도 무화선녀 나무는 참고 견디는 아픔을 초가집의 노인과 소년에게서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소나무 껍질을 벗기고, 칡뿌리를 캐어 씹으며 모질게 생명을 이어가는 노인과 소년의 소반 위에 향기 높은 열매를 나누어주고 싶어 끈질기게 아픔을 참아 나갔습니다.
어느새 가을이 왔습니다.
아픔이 맺혀 상채기가 생긴 자리마다 볼록볼록 초록빛 열매가 커 갔습니다.
마침내 무화선녀 나무의 힘줄이 거칠게 선 손바닥 위에 향기 높은 과일이 들리게 되었습니다.
무화선녀의 넋이 검은 자줏빛 열매로 익은 것입니다.
소년이 기쁜 얼굴로 노인의 꿈나무에서 열매를 따던 날, 비로 소 무화선녀는 가슴이 짜릿하도록 행복해지는 것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