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종이 한 장의 시작
얼마 전 문득 명함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명함이 이미 있었지만, 그것과는 결이 다른 필요가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일상생활소통연구소’ 소장으로서의 나를 담아낼, 오롯이 개인의 방향을 담은 한 장의 명함이 필요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생각이 떠오른 뒤로는 다른 일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명함의 모양과 색, 그리고 그 안에 담길 문장들로 가득 찼다. 단순한 종이 한 장일 뿐인데도 무엇을 담아야 할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그 안에 담아야 할 ‘나’의 정의가 아직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태를 만드는 시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두고 꽤 오랜 시간 고민이 이어졌다. ‘일상생활소통연구소’를 한눈에 보여 줄 이미지가 필요했고, 그 아래에는 지금까지 이어온 기록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했다. 블로그, 칼럼, 그리고 앞으로 이어갈 활동까지 작은 종이 안에 담아내고 싶었다. 명함을 직접 만들어 본 경험이 없었기에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소개 문구의 길이를 줄였다 늘였다 반복했고, 로고의 크기와 위치를 미세하게 조정했다. 화면 속에서 몇 밀리미터의 차이가 전체 인상을 완전히 바꾸는 장면을 여러 번 확인했다. 그 과정을 거치며 명함은 단순한 인쇄물이 아니라, 스스로를 압축해 보여 주는 하나의 매체라는 사실을 새삼 체감하게 되었다. 여러 차례 수정 끝에 기본 구성을 완성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AI의 도움을 받아 이미지를 정리하고 SNS와 연락처를 배치했다. 모든 작업을 마친 뒤, 화면 속 시안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머릿속에만 머물던 생각이 비로소 형태를 갖춘 순간이었다.
손끝에서 느껴진 무게
시안을 인쇄소로 송부한 뒤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하루가 지나 확인 연락을 받았고, 화면으로 받아 본 명함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실물을 손에 쥐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올라왔다. 며칠 뒤 작업 완료 연락을 받자마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인쇄소에서 건네받은 명함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종이의 질감이 손끝에 닿는 순간, 화면으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무게가 전해졌다. 그 작은 종이 한 장 안에 ‘일상생활소통연구소’라는 이름과 ‘김기천’이라는 세 글자가 또렷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명함을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제 그것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앞으로 누군가에게 건네질 또 하나의 얼굴이었고, 동시에 스스로에게 보내는 조용한 약속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이름의 무게를 얼마나 자각하고 있는가
명함을 만들기 전까지는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손에 쥐고 보니 이름을 내건다는 행위의 무게가 예상보다 크게 다가왔다. 종이 한 장이 사람을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 명함의 무게는 앞으로 어떤 시간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에서 명함은 흔한 물건이 되었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그리고 이 이름을 건네는 순간 상대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고 싶은가. 명함은 소개의 도구이기 이전에, 스스로의 방향을 끊임없이 점검하게 만드는 장치에 가깝다. 그렇기에 명함을 만든다는 일은 단순한 제작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한 번 정리해 보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지금 우리가 건네고 있는 이름은 과연 어떤 시간을 담고 있는가.
지금 자신의 이름이 적힌 명함을 조용히 바라본 적이 있는가. 그 명함을 건네는 순간, 스스로 떳떳하다고 느끼는가. 지금의 일상은 그 이름의 방향과 맞닿아 있는가. 명함은 화려한 경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이름에 어울리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고 있을 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명함의 디자인이 아니라, 그 명함을 들고 살아가는 사람의 태도일 것이다.
명함이 가리키는 방향
아직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이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 본질적인 의미를 가진다. 명함 한 장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크기는 작지만 분명한 시작의 형태로 자리하고 있었다. 앞으로 이 명함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순간마다 스스로를 다시 점검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명함은 나를 대신해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묻고 있다. 이 이름에 어울리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그 질문을 잊지 않는 한, 이 작은 종이 한 장은 앞으로의 여정을 조용히 이끌어 줄 이정표가 될 것이다. 오늘도 다시 한 줄을 써 내려간다.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 해당 글은 네이버 블로그 ‘일상생활소통연구소’에 게시한 문학수필을 보통의가치 뉴스 칼럼식으로 바꿔 작성한 글임을 밝힌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