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하의 새벽, 눈 덮인 강원 산자락을 헤매던 한 사내의 발걸음은 단순한 충절의 기록이 아니라 권력과 민심의 간극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어린 임금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 그리고 끝내 안식처를 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교차하던 그 밤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강원도 영월에 자리한 장릉은 조선 6대 왕 단종의 능이다. 단종은 숙부였던 세조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났고,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훗날 복위되었지만, 그의 삶은 조선 왕조 권력 투쟁의 가장 비극적인 단면으로 남아있다. 기록에 따르면, 시신을 수습한 이는 엄흥도였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단종의 장례를 치렀고, 훗날 충신으로 기려졌다.
장릉과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노루 설화’는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민심의 방향을 보여준다. 눈 위에 앉았던 노루가 사라진 자리에 눈이 녹아 있었다는 이야기는, 억울하게 생을 마친 어린 왕을 향한 연민이 집단 기억으로 승화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민중은 자연의 징조를 통해서라도 정의의 복원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권력을 거머쥔 이는 세조였지만,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를 ‘수양대군’이라 부르고, 폐위 당시 ‘노산군’으로 강등되었던 이는 ‘단종’이라는 묘호로 기억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제도적 권위와 도덕적 평가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권력은 제도 속에서 정당성을 획득하지만, 평가는 기억 속에서 재구성된다.
현대 정치학은 권력의 정당성을 법적 합리성, 전통, 카리스마 등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조선의 사례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야 함을 보여준다. 바로 ‘사후적 도덕성’이다. 통치의 성공 여부와 별개로, 권력 획득 과정의 정당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엄격한 잣대로 평가받는다.
오늘의 사회 역시 다르지 않다. 선출된 권력이라 할지라도 과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민심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단종과 세조의 역사 속 비화를 넘어, 권력의 무게와 책임을 되묻는 현재진행형의 질문이다.
엄흥도의 선택은 거창한 정치적 계산이 아니었다. 그는 다만 인간으로서, 신하로서 해야 할 도리를 택했다. 그 개인의 윤리적 결단이 수백 년 뒤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결국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권력의 칼날이 아니라 기억의 축적임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한 시대를 지배할 수 있지만, 민심은 세대를 건너 판단을 내린다. 장릉에 서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우리가 행사하는 권력, 혹은 지지하는 권력은 훗날 어떤 이름으로 불릴 것인가. 역사는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선택을 비추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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