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상위 10%는 못 넘는 이유… ‘평균’에 갇힌 교실의 비극
불과 2, 3년 전만 해도 교무실 풍경은 사뭇 달랐다. 교사들은 챗GPT나 제미나이(Gemini) 같은 범용 AI 앞에서 머리를 싸매고 프롬프트를 다듬느라 분주했다. 어떻게 질문해야 AI가 교육과정에 맞는 답변을 내놓을지 고민하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 그 시절은 마치 흑백영화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2026년의 교실은 더 이상 AI 실험실이 아니다. 학습 목표와 평가 논리가 완벽하게 내장된 ‘교육 전용 AI 플랫폼’이 교실의 인프라로 굳건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표면적으로 매우 성공적이다. 스탠퍼드 대학 SCALE 이니셔티브(Stanford Center for Assessment, Learning and Equity)가 2025년 12월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 전용 AI 플랫폼(SchoolAI)을 도입한 교사의 절반 이상이 초기 3개월 내에 시스템에 안착했다. 연구진은 AI가 주당 5시간에서 10시간에 달하는 행정 업무와 수업 준비 시간을 덜어주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교사들은 이제 AI를 감독하느라 진을 빼는 대신, 시스템이 제공하는 최적화된 경로를 따라 수업을 진행한다. 바야흐로 효율성의 승리다.

그러나 이 매끄러운 효율성의 이면에서, 우리는 교육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인 '상상력'이 조용히 실종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 지난 1월 25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된 몬트리올 대학교 연구진의 논문은 이 시점에 묵직한 경종을 울린다. 카림 제르비(Karim Jerbi) 교수팀이 10만 명의 인간과 최신 AI 모델(GPT-4 등)의 창의성을 비교한 결과, AI는 이제 '평균적인 인간'의 창의성을 능가했다. 누구나 AI의 도움을 받으면 그럴듯한 에세이를 쓰고, 준수한 그림을 그리며, 문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상위 10%의 인간, 즉 가장 창의적인 인간은 여전히 AI를 압도적으로 앞선다. 이것이 교육 현장에 시사하는 바는 섬뜩하다. AI 도구가 아이들에게 손쉽게 ‘평균 이상의 결과물’을 쥐여줄 때, 과연 아이들은 그 이상의 고통스러운 사유를 시도하려 할까? 2025년 말 인테리어 디자인 업계에서 나온 "우리가 지금 AI 사용 방식을 재고하지 않으면, 인간의 창의성은 2027년까지 정체될(flatline) 것"이라는 경고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평균에 도달하는 기술’이라면, 우리는 결국 기계보다 못한 인간을 기르게 될 것이다.
'AI 디지털교과서 2년 차', 한국 교실의 딜레마
이러한 전 세계적 흐름은 한국 교육 현장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2025년 수학·영어·정보 교과에 AI 디지털교과서(AIDT)를 시범 도입한 한국은, 다가오는 3월부터 초등 5~6학년과 중2, 고2까지 그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 정부는 이를 "표준화된 교육에서 개인 맞춤형 교육으로의 대전환"이라 예고했지만, 현장의 공기는 사뭇 복잡하다. 지난 1년, 교사들은 AI 튜터가 분석해 준 학생들의 '오답 패턴' 덕분에 개별 지도의 효율성을 맛보았지만, 동시에 태블릿 화면 속에 갇혀버린 아이들의 시선을 다시 교사와의 눈맞춤으로 돌리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특히 2026년 3월 학기부터 본격화될 AI 교과서 확대 적용을 앞두고, 현장에서는 '맞춤형 학습'이라는 명분 아래 아이들의 사고 과정이 파편화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AI가 최적의 학습 경로를 제시하고 유사 문항을 끊임없이 추천해 줄 때, 아이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유형을 암기하는 패턴'을 학습하게 될지 모른다. 과목 도입 시기가 조정된 국어와 사회 교과 논쟁에서 보듯, 문해력과 비판적 사고가 필수적인 영역까지 AI의 효율성 논리가 잠식할 때 우리가 잃게 될 것은 단순한 '종이 교과서'가 아니라, 행간을 읽고 맥락을 사유하는 '인간적 시간'일 수 있다.
“협업이 아니라 베끼는 것”… 과정이 생략된 ‘원클릭 수업’의 함정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변화 역시 이중적이다. 인도와 아프리카 등 실험 실습 장비가 부족했던 지역에서 AI 기반 시뮬레이션은 혁명적인 도구다. 아이들은 위험한 화학 약품 냄새를 맡거나 비싼 장비를 깨뜨릴 걱정 없이 가상 환경에서 물리 법칙을 실험한다. 접근성의 측면에서는 분명한 진보다. 그러나 현실의 불확실성과 ‘마찰’이 거세된 매끄러운 시뮬레이션 속에서 아이들은 실패를 통해 배우는 법을 잊어가고 있다.
클릭 한 번으로 초기화되는 실험 속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만들어내는 우연한 발견의 기회는 사라진다. 코네티컷 대학교 교육심리학과 제임스 카우프만(James C. Kaufman) 교수가 지난 1월 발표한 연구에서 지적했듯, "과제의 목표는 최종 산출물이 아니라 그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은 AI와 협업한다고 믿지만, 실상은 자신의 사고 과정을 기계에 위탁하는 '인지적 외주화(Cognitive Outsourcing)'를 겪고 있다.
AI가 써준 글을 다듬으며 자신이 썼다고 착각하고, AI가 풀어준 문제의 논리를 이해했다고 과신한다. 자기 효능감은 높아지지만, 실제 홀로 섰을 때의 문제 해결 능력은 검증되지 않은 상태로 남는다. 이는 교육의 민주화가 아니라, ‘상상력의 하향 평준화’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진짜 배움은 매끄러운 성공이 아니라, 거칠고 투박한 실패의 과정 속에 숨어 있다.
정답 자판기가 된 AI, 이제는 ‘경이(Wonder)’를 가르칠 시간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단순히 기술을 거부하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성의 영역을 사수하고, 기술을 그 도구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우리 신문사가 지향하는 ‘인간 중심의 상상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세 가지 대안을 제안한다.
첫째, ‘경이의 교육학(Pedagogy of Wonder)’을 도입해야 한다. 국제경영대학발전협의회(AACSB)가 제안했듯, AI가 답을 주는 기계라면 인간은 질문을 던지는 존재여야 한다. 교육의 목표는 효율적인 답변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AI가 내놓은 답에 “왜?”라고 반문하고 그 이면의 윤리적 맥락을 파고드는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것이다. 호기심은 기계가 가질 수 없는 인간만의 특권이다.
둘째, AI를 ‘정답 자판기’가 아닌 ‘토론 파트너’로 활용해야 한다. 코네티컷대학과 미시시피대학 연구진이 제안한 것처럼, AI에게 반론을 제기하게 하고 그 논리를 깨뜨리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비판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AI가 생성한 텍스트를 진리(Truth)가 아닌 검증 대상(Target)으로 바라보게 가르쳐야 한다.
셋째, 평가의 패러다임을 ‘결과’에서 ‘과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매끄러운 최종 에세이보다는 투박한 초안, 수정의 흔적이 담긴 노트, AI와의 치열한 대화 로그를 평가해야 한다. 그것이 ‘인지적 외주화’를 막고, 아이들의 고유한 사고 과정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2026년 2월, AI는 더 이상 신기한 장난감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공기처럼 교실을 채우고 있다. 교사들의 업무가 줄어들고, 아이들이 더 쉽게 지식에 접근하게 된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 남는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단순히 더 많은 지식을 주입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이들이 밤하늘을 보며 엉뚱한 상상을 할 시간을 주고 있는가.
효율성은 기계의 미덕이지 인간의 미덕이 아니다. 우리가 길러내야 할 아이들은 최적화된 알고리즘을 따르는 기술자가 아니라, 그 알고리즘이 닿지 못하는 낯선 길을 상상하고, 기꺼이 헤맬 줄 아는 인간이다. 2027년 창의성의 종말을 막을 유일한 방법은, 정답을 빨리 찾는 법이 아니라 정답이 없는 세계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들의 책상 위에 놓인 태블릿 PC 화면 너머, 그들의 눈동자가 여전히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는지 들여다봐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