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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칼럼] 119화 설날이라는 시간의 얼굴

보통의가치 칼럼, '일상에서 배우다'

명절의 본질은 전통이 아니라 사람이며, 형식이 아니라 마음

명절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

▲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Unsplash]

 

아침의 냄새가 먼저 떠오르는 날

설날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장면이 아니라 냄새다. 새벽부터 분주히 움직이던 어머니의 부엌, 갓 지은 밥의 김, 전을 부치던 기름 냄새, 따뜻한 국물 위로 오르던 김. 어린 시절의 설날은 그렇게 소리보다 냄새로 먼저 다가왔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기 전인데도 집 안은 이미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이였던 나는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설렜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날은 평소와 다른 날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알고 있었다.

 

한 해의 시작을 확인하던 의식

차례를 준비하고, 세배를 하고, 어른들의 덕담을 듣던 시간은 짧았지만 분명한 의미를 품고 있었다. “건강해라.” “하는 일 잘 되길 바란다.” 그 말들은 매년 반복되었지만, 그 반복 속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다시 확인되었다. 설날은 새해의 첫날이라기보다, 서로의 안부를 눈으로 확인하는 날에 가까웠다. 말로는 짧았지만, 그 안에는 한 해를 버텨낼 힘이 담겨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달라진 풍경

이제는 설날의 풍경이 예전과 같지 않다. 고향을 찾는 발걸음이 줄어들고, 차례를 지내지 않는 가정도 많아졌다. 가족이 모이지 못하는 사정도 자연스러워졌다. 대신 여행을 떠나거나,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선택하는 이들도 늘었다. 명절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한 가지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방식이 달라졌을 뿐, 그 안에 담긴 바람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로가 무사하길, 한 해가 평안하길 바라는 마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설날이 부담이 되는 순간들

하지만 설날은 언제나 따뜻하기만 한 날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랜만에 마주하는 가족 앞에서의 긴장, 비교와 질문 속에서 느끼는 부담, 혹은 돌아갈 고향이 없는 외로움으로 남기도 한다. “요즘은 뭐 하니?” “결혼은 언제 하니?” 같은 가벼운 말이 때로는 무겁게 내려앉는다. 명절은 축복의 시간인 동시에, 각자의 현실을 드러내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설날이 다가올수록 기쁨과 함께 설명되지 않는 피로를 함께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설날은 누구를 위한 시간이며,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설날은 과연 전통을 지키기 위한 날인가, 가족을 확인하기 위한 날인가, 아니면 각자의 숨을 고르기 위한 휴식의 날인가. 우리는 설날을 당연히 맞이하지만, 정작 그 의미를 다시 묻는 일은 드물다. 가족을 만나는 일이 의무가 되지는 않았는지, 서로의 안부를 묻는 말이 부담이 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명절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

 

설날의 본질은 결국 사람이다

설날의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차례를 지내지 않아도,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리지 않아도, 멀리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그날 서로를 향해 잠시 멈춰 서는 마음이다. 전화를 한 통 건네는 일, 짧은 메시지로 안부를 묻는 일, 혹은 함께 식탁에 앉아 웃는 일. 그 작은 행동이 설날을 설날답게 만든다.

 

설날은 거창한 날이 아니다. 다만 한 해의 시작에서 서로를 떠올리는 날이다. 지나온 시간을 정리하고, 다가올 시간을 조심스럽게 기대해 보는 날이다. 그 마음이 남아 있다면, 설날은 충분히 의미를 가진다.

 

올해의 설날 역시 특별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날 하루만큼은 서로의 이름을 한 번 더 부르고, 무사함을 확인하는 시간으로 남기를 바란다. 명절의 본질은 전통이 아니라 사람이며,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설날은 여전히 따뜻한 시간으로 이어질 것이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성 2026.02.12 23:57 수정 2026.02.12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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