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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돌들이 소리칠 때: 튀르키예, 잊혀진 기독교의 요람

-튀르키예는 단순한 이슬람 국가가 아닌, 성경의 많은 곳을 품은 잊혀진 기독교 요람이다.

-화려한 교회 건물은 무너졌지만, 고난을 견뎌낸 초대 교회 신앙 DNA는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우리는 이 영적 고향에 빚을 졌으며, 지금의 위기는 복음이 다시 움트는 거룩한 기회가 될 것.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아잔 소리 뒤에 가려진 초대 교회의 숨결

 

30년 넘게 이슬람권에서 살면서 가장 기이하고도 가슴 아픈 순간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에베소(Ephesus)'의 원형 극장에 서 있던 어느 금요일 오후를 떠올린다. 사도 바울이 "위대한 아르테미스여!"라고 외치던 군중과 맞서 복음을 변증했던 그 역사적 현장. 그 장엄한 대리석 기둥 사이로, 지금은 모스크의 스피커에서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라는 아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많은 성도가 '성지 순례' 하면 예루살렘이 있는 이스라엘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신약 성경의 절반 이상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땅, 사도 바울이 1, 2, 3차 전도 여행을 다니며 피와 땀을 흘린 땅,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별처럼 박혀 있던 땅은 바로 이곳, 오늘날의 튀르키예(소아시아)다.

 

지금 튀르키예가 겪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혼란을 보며 나는 문득 그 땅에 묻힌 영적 유산들을 떠올린다. 그 화려했던 신앙의 유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 글은 단순한 유적지 탐방기가 아니다. 지금은 이슬람의 땅이 되어버린 그곳에서, 여전히 땅속 깊은 곳에서 숨 쉬고 있는 '오래된 미래'를 캐내는 영적 고고학의 여정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의 고향, 안디옥의 눈물

 

우리가 오늘날 교회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는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이름. 그 영광스러운 호칭이 처음 탄생한 곳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튀르키예 남부의 '안디옥(Antioch, 현지명 안타키아)'이었다. 이방 선교의 전초기지이자,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했던 그 위대한 교회의 터전.

 

그러나 2023년 2월, 튀르키예를 강타한 대지진은 이 유서 깊은 도시 안타키아를 처참하게 무너뜨렸다. 나는 무너진 건물 더미 앞에서 망연자실해 있는 현지 성도들을 보며, 마치 초대 교회의 역사가 물리적으로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폐허 위에서 나는 보았다. 구호 물품을 들고 달려온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손길을 통해, 2천 년 전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을 모았던 그 사랑의 빚이 갚아지고 있음을. 돌은 무너져도, 그 땅에 심어진 사랑의 DNA는 절대 무너지지 않았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폐허인가, 씨앗인가?

 

이스탄불에서 차를 몰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의 도시들을 차례로 만난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오늘날 그곳을 방문하면 웅장한 교회 건물을 기대했던 이들은 실망하기 십상이다. 대부분은 무너진 돌무더기만 뒹구는 유적지이거나, 아예 흔적조차 찾기 힘든 번잡한 현대 이슬람 도시의 한복판이기 때문이다.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했던 주님의 경고가 실현된 것만 같아 마음이 서늘해진다.

 

하지만 나는 그 폐허 속에서 절망이 아닌 '질긴 생명력'을 본다. 서머나(현지명 이즈미르)에는 여전히 '폴리캅 기념 교회'가 자리를 지키며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는 소수의 터키 기독교인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거대한 대리석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건물이 아닌 '사람'이라는 진짜 성전들이 박해 속에서도 잡초처럼, 아니 들꽃처럼 피어 있다. 겉보기에 화려했던 라오디게아는 무너졌지만, 죽도록 충성하라던 서머나의 영성은 지금도 이 땅의 지하 교회 성도들 가슴속에 살아 숨 쉰다.

 

카파도키아: 땅속으로 들어간 믿음

 

관광객들은 기암괴석의 절경을 보러 카파도키아에 가지만, 그곳은 사실 인류 역사상 가장 처절했던 신앙의 도피처였다. 로마의 박해와 이후 이슬람 세력의 침략을 피해 초기 기독교인들은 땅속 85미터 깊이까지 파고 들어가 지하 도시(데린쿠유)를 건설했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그 캄캄한 지하 동굴에서, 그들은 수백 년을 버텼다. 학교를 짓고, 교회를 짓고, 포도주를 빚으며 신앙을 전수했다. 나는 그 좁고 습한 동굴 통로를 기어갈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혀옴을 느낀다. 그리고 자문한다. "나라면, 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이 어둠 속으로 자녀들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었을까?"

 

오늘날 튀르키예의 경제적 고통과 사회적 불안은 어쩌면 현대판 '지하 동굴'일지 모른다. 하지만 2천 년 전 신앙의 선배들이 그 어둠을 믿음으로 밝혀냈듯, 지금 고통받는 튀르키예 영혼들 마음속에도 복음의 빛이 다시 켜질 수 있음을 나는 믿는다.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튀르키예는 '선교지'가 아니라 '고향'이다

 

튀르키예는 우리에게 단순한 '이슬람 국가'나 '형제의 나라' 그 이상이다. 그곳은 우리의 영적 탯줄이 묻힌 고향이다. 사도 요한이 말년을 보내며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쳤던 곳,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삼위일체 교리가 확립된 곳이 바로 이 땅이다.

 

지금 그 땅이 겉으로는 모스크의 첨탑으로 뒤덮여 있고, 정치와 경제의 위기 속에 신음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눈동자를 그곳에서 떼지 않으셨다. 땅속 깊이 흐르는 지하수처럼, 초대 교회의 피와 기도는 여전히 아나톨리아 반도 밑을 흐르고 있다.

 

우리가 튀르키예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불쌍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그 땅에 '사랑의 빚'을 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위기가 오히려 그 땅의 굳은 껍데기를 깨고, 깊이 잠들어 있던 복음의 씨앗을 다시 움트게 할 '거룩한 균열'이 되기를 소망한다. 돌들은 침묵하고 있지만, 귀를 기울이면 그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작성 2025.11.22 20:51 수정 2025.11.22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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