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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기도는 '결재 서류'입니까, '연애 편지'입니까: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기도

-이슬람의 기도가 하늘을 향한 장엄한 등반이라면, 기독교의 기도는 아버지와 함께 걷는 따뜻한 산책이다.

-기독교의 기도는 왕에게 올리는 차가운 '의전'이 아니라, 아빠에게 속삭이는 사랑의 '대화'이다.

-종의 의무보다 더 뜨거운 자녀의 사랑으로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가는 기도를 회복해야 한다.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무릎 꿇는 종의 ‘의전(儀典)’, 품에 안기는 아들의 ‘연가(戀歌)’

 

중동의 태양은 자비가 없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작열하던 한여름의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갈 즈음, 흙먼지 날리는 시장통 한구석에서 나는 또다시 그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을 마주한다.

 

조금 전까지 고작 1리라를 더 받겠다고 목청을 높이던 카펫 가게 주인 아흐메드는 모스크의 첨탑에서 '아잔(Adhan)' 소리가 울려 퍼지자, 거짓말처럼 모든 동작을 멈췄다.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가게 구석의 작은 공간을 치우고 낡은 양탄자를 깔았다. 흐르는 물에 손과 발, 콧속까지 씻어내는 ‘우두(Wudu, 정결 의식)’를 마친 그는, 메카가 있는 방향을 향해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섰다.

 

이내 그의 이마가 땅에 닿았다. 주변의 소음, 행인들의 시선, 당장 팔아야 할 물건 따위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오직 절대자 알라와 그 앞에 납작 엎드린 한 인간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 고요하고도 압도적인 ‘복종’의 의식 앞에서, 나는 이방인이자 선교사로서 묘한 전율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곤 했다. 저토록 치열하게 삶을 멈추어 세우는 힘이, 과연 오늘 나의 기도에는 존재하는가?

 

기독교와 이슬람. 역사 속에서 수없이 충돌해 온 이 두 거대 종교는 흥미롭게도 ‘기도’를 신앙의 가장 중요한 기둥으로 삼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창조주를 기억하고, 그분께 말을 걸며,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신의 영역에 접속하려는 열망은 두 종교의 심장에 흐르는 공통된 혈액이다. 무슬림에게 하루 다섯 번의 기도가 ‘살라트(Salat, 의무 기도)’라면, 그리스도인에게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7)는 바울의 권면이 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기도’라는 행위의 외피를 한 꺼풀만 벗겨내면, 우리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우주를 만나게 된다. 그 차이는 단순히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신을 누구로 정의하느냐, 그리고 그 신 앞에 선 인간을 누구로 규정하느냐 하는 ‘관계의 본질’에서 오는 거대한 균열이다.

 

이슬람의 기도는 한마디로 ‘완벽하게 연출된, 장엄한 궁중 의전(儀典)’이다. 그것은 철저한 규율과 형식을 통해 완성된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방향, 정해진 아랍어 기도문, 그리고 정해진 동작. 이 빈틈없는 매뉴얼은 ‘알라’라는 위대한 왕에 대한 피조물의 절대적 복종을 상징한다.

 

이슬람(Islam)이라는 단어 자체가 ‘복종’을 의미하듯, 무슬림(Muslim)은 ‘복종하는 자’다. 그들에게 기도는 왕의 알현실에 입장하여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하고, 왕의 위엄을 찬양하며, 자신의 위치가 ‘종’임을 재확인하는 엄숙한 조회 시간이다. 주인과 종 사이에는 결코 좁혀질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한다. 알라는 너무나 크고 위대하며 초월적인 존재이기에, 감히 인간이 그와 친밀함을 논한다는 것은 불경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도는 그 ‘거리감’을 인정하고, 그 거리에도 불구하고 베풀어질 주인의 자비를 구하는,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몸부림이다.

 

내 친구 아흐메드에게 기도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주저 없이 답했다. “그것은 나의 의무요. 알라의 명령에 복종함으로써 나는 심판의 날에 안전함을 얻으려 하오.” 그의 대답에는 비장한 결기가 서려 있었다. 구원을 향한 인간의 절박한 노력, 율법의 무게를 견뎌내려는 종의 땀방울이 그 기도 속에 배어 있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십자가는 모든 것을 전복시킨다. 기독교의 기도는 이슬람이 그토록 철저히 지켜온 ‘주인과 종의 경계’를 허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성전의 휘장을 위에서 아래로 찢어발겼다. 이것은 단지 종교적 상징이 아니다. 지성소, 즉 신의 침실로 들어가는 문이 활짝 열렸다는 우주적 선포다.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움에 떨며 왕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죄수나 종이 아니다. 기독교의 기도는 ‘의전’이 아니라 ‘대화’이며, ‘보고’가 아니라 ‘교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근거는 나의 정결함이나, 하루 다섯 번 시간을 지킨 성실함에 있지 않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 그 보혈이 우리의 유일한 입장권이 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놀라운 사실을 이렇게 선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브리서 4:16) 

 

여기서 ‘담대히’라는 말은 뻔뻔스러울 정도의 당당함을 의미한다. 어떻게 피조물이 창조주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자녀’이기 때문이다. 아빠의 퇴근길을 기다리다 품에 안기는 아이는 격식을 차리지 않는다. 아빠의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오늘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다. 기독교의 기도는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는 아랍어와 같은 신성한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 유창한 미사여구도 필요 없다. 심지어 말이 나오지 않아 “주여”라고 탄식할 때조차,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말로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로마서 8:26)하신다. 이슬람의 기도가 인간의 노력으로 하늘 꼭대기에 닿으려는 ‘바벨탑의 등반’이라면, 기독교의 기도는 낮고 천한 우리 곁으로 내려오신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걷는 ‘저녁 산책’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진다. 왕궁의 열쇠를 손에 쥐고도 문밖에서 서성이는 왕자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엄청난 특권을 부여받은 우리는, 정작 율법의 의무 아래 있는 저 무슬림들보다 더 기도를 소홀히 여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다시 ‘종의 영’을 입은 것처럼 행동한다. 기도를 식사 전의 가벼운 통과의례 정도로 취급하거나, 내가 필요한 목록을 하나님께 결재받기 위해 올리는 ‘기안서’ 쯤으로 여긴다. 알라를 향해 하루 다섯 번, 그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도 무릎을 꿇는 그들의 간절함과 비교할 때,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시원한 예배당에서조차 졸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초라한가.

 

우리는 기도를 ‘노동’이나 ‘의무’로 생각하기에 힘겨워한다. “하루에 몇 시간을 기도해야 합니까?”라는 질문 자체가 이미 우리가 기도를 율법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증거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있는 시간을 노동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기도가 의무가 되는 순간, 그것은 종교적 행위로 전락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종교적 퍼포먼스’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원하신다.

 

무슬림들은 그들의 신 알라를 ‘위대하다(Akbar)’라고 외치지만, 결코 그를 ‘아빠’라고 부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천지를 지으신 그분을 ‘아빠 아버지(Abba Father)’라 부른다. 이 호칭 하나에 담긴 은혜의 무게를 안다면, 우리는 결코 기도를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물어야 할 때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기도하고 있는가? 나의 기도는 나의 의로움을 증명하기 위한 알리바이인가, 아니면 나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내어 맡기는 사랑의 투정인가?

 

우리는 무슬림보다 더 나은 윤리를 가졌다고 자부하기 이전에, 그들보다 더 뜨거운 사랑을 가졌는지 점검해야 한다. 율법의 채찍 아래 있는 종들도 저토록 주인을 경외하는데, 은혜의 햇살 아래 있는 자녀들이 아버지와의 대화를 귀찮아한다는 것은 비극이다.

 

해가 지고 시장에 어둠이 깔린다. 아흐메드는 다시 가게 문을 닫고 저녁 기도를 준비할 것이다. 나는 그 정성스러운 뒷모습을 보며, 옷깃을 여민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고 내 안의 아버지를 부른다. 형식이 아닌 본질로, 의무가 아닌 사랑으로, 두려움이 아닌 설렘으로. 이제는 진짜 기도를 시작해야 할 때다. 왕의 보좌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당신의 무릎 아래, 당신의 떨리는 입술 끝에 와 있다.

 

작성 2025.11.20 03:00 수정 2025.11.2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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