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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칼럼] 53화 ‘내가 통과한 매운 계절들’ 독서 리뷰

보통의가치 칼럼, '일상에서 배우다'

한 사람의 삶은 조용한 하루들이 쌓여 이루어진다

그 하루를 기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작가다

▲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김기천 칼럼니스트]

 

한 사람의 계절을 건네받는 일

최근까지 나는 ‘타인의 자서전 읽기’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이번에 읽은 책은 『내가 통과한 매운 계절들』. 글쓰기 공동체 ‘정글행숲’에서 완성된 첫 번째 작품으로, 김지원, 권정심, 김미진, 김시남, 박주헌, 이복선, 이진아, 총 일곱 명의 삶을 담고 있는 자전적 수필집이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시간 순으로 따라가는 전형적 자서전 형식과는 거리가 멀다. 각자의 삶에서 특정한 시점, 특정한 감정, 특정한 계절을 꺼내어 그 순간을 한 편의 이야기로 응축해 담고 있다. 

 

그래서 한 편 한 편을 읽는 경험은 사람 한 명의 인생을 전부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 머물렀던 문장 하나를 천천히 만져보는 경험과 닮아 있다.

 

말보다 마음이 먼저 도달하는 글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자주 멈춰 섰다. 문장을 다시 읽고, 의미를 곱씹고, 손끝으로 필사 노트에 옮겨 적으며 오래 머물렀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아주 조용하고, 아주 느리고, 아주 솔직하다.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에 묵직함이 있었다. 누군가의 소박한 하루 속에서, 누군가의 상실과 회복 속에서, 우리 모두가 이미 지나온 계절의 냄새가 은은히 번져왔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하나 있었다. 작가별 서술이 연속되어 이어지는 구성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김지원 → 권정심 → 김미진 → 김시남 … 이런 순차적 구성이 아니라, 김지원 → 김미진 → 박주헌 → 다시 김지원 … 이런 흐름으로 전개되기에 읽는 도중 “지금 이 글이 누구의 이야기였지?” 하고 작가 소개 페이지를 다시 확인하는 순간들이 생겼다. 분명 편집 상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가 한 이름의 삶에 충분히 잠수할 시간을 확보했다면 몰입의 깊이는 더 깊어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러나, 이 점을 제외하면 책은 너무도 아름답고 진실했다.

 

오래 마음에 남은 문장들

읽는 동안 나는 여러 번 필사를 멈출 수 없었다. 특히 다음 문장들이 오래 머물렀다.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서툴고 힘든 일’이지만 이겨내고 해내면 그 다음은 ‘할 수 있는 일’로 바뀐다. 그러다 좀 더 경력이 쌓이면 ‘잘 하는 일’로 바뀌게 된다. 나는 그런 소중한 경험을 한 것이다. 

 

*기다리지 말자. 해동하자. 용기내서 손해 볼 것은 없다. 

 

*주어진 환경을 탓하기 보다 나를 변화시키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성장하는 과정을 겪으며 두가지를 깨달았다. 먼저,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 ‘나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간다는 것’, ‘내게 어울리는 역할을 발견해 나가는 것’, 이런 일들은 생각보다 시간이 꽤 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 하지만 너무나도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어쩌면 우리 모두는 원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역할이 무엇인지. 그것을 주변의 한계 때문에 가둬 놓지 말아야 한다.

 

*‘내 잘못인가’,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 이라며 남겨진 이가 자기검열과 죄책감을 감당하지 못해 비탄에 빠져들게 하는 죽음도 싫다. 환히 웃으며 덕분에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며 죽고 싶다. 죽는 순간 말 하지 못할 것 같으면 미리, 자주해 놓을 것이다. 덕분에 인생이 재미있다고, 즐겁다고, 행복하다고, 감사하다고, 소중하다고, 외롭지 않다고, 무섭지 않다고…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이 시간을 더욱 가치 있는 일로 채우며 살아가야겠고,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퇴직 후, 준비 없이 사회에 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몹시 당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순간 위기감이 몰려왔다. 사회라는 공동체 사회에서 살아남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변화하고 성장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문장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나온 매운 계절의 기록이자, 지금 나 또한 통과하는 계절과 맞닿아 있었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계절을 통과한다. 그 계절이 매웠든, 쓰렸든, 눈부셨든, 결국 그 계절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 나는 지금 내 마음 속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가?

 

이 책은 말한다.
“평범한 삶도 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지나온 나를 기록하고, 지금의 나를 바라보고, 내일의 나를 기다리기 위해. 한 사람의 삶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조용한 하루들이 쌓여 이루어진다. 그 하루를 기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자기 삶의 작가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성 2025.11.17 17:15 수정 2025.11.1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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