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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슬렘은 정녕 위험한 존재인가: 두려움의 벽을 넘어선 이웃 사랑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슬림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길 포기한 우리 자신의 강퍅한 마음이다.

-모슬렘 '게토'는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이웃이 되기를 거부하고 피하여 지나간 기독교의 실패한 사랑이 낳은 결과이다.

-두려움의 벽을 넘어 '긍휼을 베푸는 이웃'이 되어, 이 땅에 온 모슬렘들에게 다가가는 건 교회의 역할이다.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이천 년 전, 한 율법 교사가 예수께 나아와 묻는다.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눅 10:29). 그는 자신을 옳게 보이고자, 사랑의 의무에 경계선을 긋고자 이 질문을 던졌다. 오늘, 그 질문은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의 심장 한가운데를 다시 파고든다. 수년 전, 수백 명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모슬렘'이라는 단 하나의 이름표를 달고 이 땅에 도착했을 때, 우리 안에서도 그 율법 교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는가. "저들이 과연 우리의 이웃인가?"

 

어쩌면, 우리 사회는 모슬렘들을 두려워한다. 1,400년의 이슬람 역사가 빚어낸 거대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분명히 존재하는 폭력적 이데올로기의 파편들을 보며 경계한다. 물론, 기독교의 진리 입장에서 볼 때, 이슬람은 수많은 영혼을 다른 길로 인도하는 분명한 신학적 도전이다. 이에 대한 신앙적 분별과 경계는 마땅히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거대한 이름표 뒤에 가려진 한 사람, 한 영혼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 '모슬렘'의 대다수는, 사실 자신이 왜 모슬렘인지, 자신이 목숨처럼 여기는 꾸란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왜 라마단 금식을 하고 왜 희생절에 피를 흘려야 하는지조차 깊이 알지 못한다. 혹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살아간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운명처럼 주어진 '이슬람'이라는 거대한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안에 갇혀있다. 그 안에서는 '왜?'라는 질문이 허용되지 않는다. 오직, 알라를 향한 무조건적인 복종과 충성만이 미덕으로 간주된다. 그들은 그 편견의 틀 안에서만 세상을 보고, 그 고정된 잣대로만 삶을 재단하며 살아가는, 어쩌면 가장 깊은 영적 곤고함 속에 빠진 이들이다.

 

게토(Ghetto), 실패한 사랑의 기념비

 

오늘 우리 사회는 국내로 유입되는 모슬렘들을 보며 유럽의 실패를 거론한다. 모슬렘들에 의해 형성된 유럽의 '게토(Ghetto)'가 우리 사회에도 재현될까 봐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걷잡을 수 없는 갈등을 예견하며 불안의 눈길을 거둔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유럽의 그 게토는 과연 누가 만들었는가? 모슬렘들 스스로가 원해서 그 고립된 섬을 만들었는가? 아니다. 그 책임의 화살은 먼저 유럽 사회, 기독교의 뿌리 위에 서 있던 바로 그 유럽 사람들에게 향해야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 속으로 들어가 보자. 강도 만난 자가 길에 쓰러져 있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간다. 만약, 이 두 사람이 그를 외면하지 않고 다가갔다면, 그 강도 만난 자가 스스로 일어나 "나는 당신들의 도움을 거부하겠소"라며 자신만의 '게토'를 만들었을까?

 

유럽의 게토는 바로 이 '피하여 지나감'의 산물이다. 기독교 문화 속의 유럽인들은 자기들과 달라 보이는 모슬렘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다가가지 않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거두었다. 그 차가운 외면 속에서 모슬렘들은 생존 본능으로 스스로를 소외시켰고,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문을 닫고 만 것이다. 그것은 실패한 이웃 사랑이 남긴 흉측한 기념비다.

 

그러므로, 만약 이 땅에 유럽과 같은 모슬렘 게토가 생긴다면, 그것은 모슬렘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이 땅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 될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이주민으로, 근로자로, 혹은, 난민으로 이 땅을 밟은 이들을 우리가 냉대와 멸시로 멀리하고, 그들을 향한 불쌍한 마음을 포기했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일 것이다. 이 거룩한 부담 앞에서 우리 중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

 

이제 유럽 사회는 우리의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어야 한다. 30여만 명의 모슬렘을 포함한 260만 명의 외국인을 이미 이웃으로 맞이한 우리는, 지금 중대한 영적 기로에 서 있다. 우리는 저들을 향해 잘 알지도 못하는 편견과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제사장처럼, 레위인처럼 피하여 지나갈 것인가? 그리하여 이 땅에도 또 하나의 게토를 재현시키고 말 것인가?

 

아니면, 강도 만난 자를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던 사마리아인처럼, 저들 곁으로 다가갈 것인가? 저들이 스스로를 고립시킬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도록, 주님이 보여주신 그 사랑으로 그들을 품고 함께 살아가며, 우리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낼 것인가?

 

우리는 고백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모슬렘들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저들 안에 있는 폭력성이 아니라, 저들을 향해 긍휼의 마음을 닫아버린 우리 안의 강퍅함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슬람의 교리가 아니라, 그 교리에 묶여 신음하는 영혼들을 보고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가가기를 포기하는 우리의 냉담함이다.

 

우리는 그동안 이슬람 전도의 벽이 너무 두껍고 그 문이 굳게 닫혔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정작 두껍고 굳게 닫힌 것은, 그들을 향해 주님의 사랑으로 불쌍히 여기며 다가가기를 거부한 우리 자신의 마음과 생각의 문이 아니었는가.

 

주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닌,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셨다(딤후 1:7). 그 사랑으로 저들을 대하는 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의 본분이요, 사명이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주님은 이들을 어떻게 대하라고 말씀하시는가? 명백하게 “불쌍히 여기라”라고 하신다. 테러를 일삼는 극단주의 세력은 당연히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일부의 모습으로 전체를 재단하여, 무섭다고, 위험하다고 복음 전하기를 보류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딤후 4:2)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 28:19)는 지상 대명령을 스스로 왜곡하는 일이 된다.

 

우리 주님은 우리만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저 굳은 신념 속에 갇힌 모슬렘들을 위해서도 동일하게 그 피를 흘리셨다. 그러므로 그들도 복음을 들어야 할 권리가 있고, 주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만약, 우리가 그들을 위험하다고 경계하고 피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이 땅에 그들을 보내신 주님의 섭리, 그 절묘한 선교의 기회를 우리 스스로 걷어차는 것이 된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이 맞느냐 저것이 맞느냐'는 소모적 논쟁이 아니다. 언제 다시 그들의 땅으로 돌아갈지 모르는 이 모슬렘 이웃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다가가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물론 이 일을 위해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주님의 지혜를 구하며 가장 선한 접근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고민이 우리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주님은 율법 교사에게 물으셨고, 오늘 우리에게 물으신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눅 10:36-37)

 

작성 2025.11.09 11:50 수정 2025.11.0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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