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1일, 메이데이. 전 세계 수억 명의 노동자가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날이다. 그런데 올해 그 행렬 사이로 낯선 그림자 하나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깃발도 없고, 구호도 없고, 피로도 없는 존재 - 인공지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의 권리를 기념하는 이날에 가장 뜨겁게 떠오른 화두는 노동자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래 메이데이의 뿌리는 미국에 있다. 1886년 5월 1일,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들불처럼 번진 파업의 물결, 그리고 그것을 짓밟은 경찰의 폭력과 수많은 사상자. 그 피의 기억 위에서 오늘의 노동절이 세워졌다. 역설적으로, 그 불씨를 피운 미국은 지금 9월에 별도의 노동절을 기념하며 메이데이와 거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미국이, 오늘날 인공지능 개발의 최전선에서 노동의 개념 자체를 해체하고 있다.
사건 하나가 이 모든 것을 상징한다. 지난 1월, 미국 최대 고용주 중 하나인 아마존이 인공지능 도입을 명분으로 무려 1만 6천 명의 직원을 일시에 해고했다. 이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2025년 10월, 이미 언론은 아마존이 5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로봇으로 대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숫자가 너무 커서 실감이 안 된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중견 도시 하나를 가득 채울 인구만큼의 사람들이, 알고리즘 한 줄에 밀려 일터를 잃는 것이다.
이제는 거의 모든 나라 대도시의 도심을 달리다 보면 그 미래가 이미 현재임을 실감하게 된다. 도로변 광고판들이 마치 새 시대의 복음서처럼 선언하고 있다. 현지의 한 AI 기업 문구들이 특히 강렬하게 다가온다. "인간 채용을 중단하세요.", "AI 직원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우리 직원은 일과 삶의 균형을 불평하지 않습니다." ... 이런 문구들을 처음 마주한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 등골이 오싹하다는 것이다. 이 캠페인을 기획한 기업은 이 광고를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AI가 대신해 진정으로 즐기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주장했다. 듣기엔 그럴듯하다. 그러나 그 논리가 현실에 닿는 순간, 공허함은 곧바로 드러난다.
아마존에서 해고된 노동자가 갑자기 자신이 '즐기는' 일을 찾아 유유자적하게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그들 대부분에게 직업은 철학적 자아실현의 수단이 아니다. 집세를 내고, 아이를 먹이고, 병원비를 충당하는 생존의 통로다. 특히 자국민에게 저렴한 주거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보다 군비와 해외 분쟁에 더 많은 예산을 쏟아붓는 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여성을 헐값에 팔다》의 저자 리자 페더스톤은 이 상황을 날카롭게 꿰뚫는다. "억만장자 계층은 노동자가 없는 세상, 혹은 노동자들이 최대한 불안정하게 느껴지는 세상을 원한다. 인공지능이 좋은 이유는 단 하나, 인간이 인간답게 대우받기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아마존, 스타벅스 같은 기업들이 노조 결성을 막기 위해 지지자를 해고하고 반대자에게 의료보험 박탈을 위협하는 수법을 구사해 온 역사는 이미 길다.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를 외치기 어렵다. AI의 확산은 그 공포를 더욱 촘촘하게 직조한다.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은 언제든 알고리즘으로 교체할 수 있다는 무언의 협박이 작업장 곳곳에 스며드는 것이다.
숫자로 보면 그 규모가 더 서늘하다. 올해 첫 분기, 구글·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 네 기업이 자본 지출에 쏟아부은 금액은 1,306억 5천만 달러에 달한다. 이 중 대다수는 AI 구동 데이터센터에 집중적으로 투자됐다. 반면, 그 돈의 일부조차 해고된 노동자의 재교육이나 사회 안전망에 쓰이지 않는다. 구글에 "AI의 문제점"을 검색하면 AI 스스로 답한다 - 허위 정보 생성, 편견 강화, 환경 파괴, 보안 위협. 그 고백이 흥미롭다. 문제를 만드는 존재가 문제를 나열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세상은 그래도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는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얼굴 하나가 있었다. 경기도 안산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한 동남아시아 청년의 얼굴이다. 그는 코리아 드림을 꿈꾸며 목숨을 걸고 대륙을 건넜다. 그런데 도착한 곳에는 수많은 AI 광고판이 걸려 있다. 건설 현장마저 AI의 손길이 뻗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 이주 청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노동절은 원래 그런 사람들을 위한 날이다. 거대 자본의 논리 앞에서도 인간이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피 흘린 이들의 날이다.
물론, 기술은 진보해야 한다. 그러나 진보의 열매가 소수의 손에만 쌓이고, 그 비용이 오롯이 가장 약한 자들의 삶에서 차감된다면,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약탈이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해고 통보를 받고 빈 책상 앞에 서 있을 누군가를 생각한다. 그 앞에서 나는 감히 '효율'을 이야기할 수 없다. 다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 인간의 존엄은 알고리즘이 계산해 낼 수 있는 값이 아니라는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