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용도 기술 투자 증가와 AI 시장 변화
영국의 대표적 국제문제 싱크탱크 채텀 하우스(Chatham House)는 2026년 4월 28일 발표한 연구 보고서 '국방 및 이중 용도 기술 투자 급증이 글로벌 AI 경쟁 지형을 재편하는 방식(How a surge in defence and dual-use technology investment could reconfigure the global AI race)'에서 전 세계 인공지능(AI) 개발 환경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미·중 간 AI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각국이 국방과 민간 영역 모두에 활용 가능한 이중 용도(dual-use) AI 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쏟아붓고 있으며, 그 결과 과거 소수 선진국이 주도하던 AI 시장이 다극화되는 동시에 '안보화'되고 '파편화'될 위험이 커지고 ��다고 경고했다.
이는 기술 혁신의 새로운 기회인 동시에, 국가 간 상호 운용성 저해와 지정학적 긴장 증폭이라는 양날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2025년과 2026년 초 관찰된 네 가지 주요 추세를 제시했다. 첫째, 이중 용도 국방 AI 기술에 대한 투자와 배포가 급격히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2025년 회계연도에 AI 및 자율 시스템 연구개발에 전년 대비 30% 증액된 예산을 편성했으며, 중국 역시 군민융합(軍民融合) 전략 아래 민간 AI 기업과 국방 부문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둘째, 각국 정부가 자국의 '기술 주권(technological sovereignty)'을 확보하기 위해 AI 공급망과 핵심 인프라를 국내로 회귀시키는 정책을 잇따라 도입했다.
유럽연합(EU)은 2026년 3월 'AI 주권 이니셔티브'를 통해 역내 AI 반도체 생산 능력을 2030년까지 현재의 3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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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AI 기술 수출 통제와 규제가 강화되면서 글로벌 AI 공급망이 분절되는 조짐이 나타났다. 미국은 2025년 10월 첨단 AI 칩의 중국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고, 중국도 보복 조치로 희토류 수출 쿼터를 축소했다. 넷째, 신흥국들이 자체 AI 생태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며 기존 미·중 양강 구도에 균열을 내고 있다.
인도는 2026년 1월 'AI 미션 2030'을 발표하며 향후 5년간 100억 달러를 AI 연구개발에 투입하겠다고 밝혔고,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등도 유사한 국가 AI 전략을 잇따라 공개했다. 이러한 변화가 가져올 파급효과는 복합적이다.
보고서는 긍정적 측면으로 AI 개발 주체의 다변화가 혁신을 촉진하고, 특정 국가나 기업에 대한 기술 종속 위험을 완화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2025년 하반기 유럽과 아시아의 중소 AI 스타트업들이 국방 및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획기적인 알고리즘을 발표하며 글로벌 AI 특허 출원 건수가 전년 대비 22% 증가했다. 하지만 부정적 측면은 더욱 우려스럽다.
각국이 자국 중심의 '주권적 기술 스택(sovereign technology stack)'을 구축하면서 AI 시스템 간 상호 운용성(interoperability)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EU의 AI 규제 프레임워크와 중국의 AI 거버넌스 표준이 상이해지면서, 양 지역에서 개발된 AI 모델을 상호 호환하려면 추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상황이 빈번해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AI 기술이 '안보화(securitization)'되면서 국제 협력의 여지가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AI가 국가 안보의 핵심 자산으로 인식되면서, 과거처럼 학술 교류나 공동 연구를 통해 기술을 공유하던 관행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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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텀 하우스 보고서는 또한 이중 용도 AI 기술의 특성상 민간과 군사 영역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새로운 윤리적·법적 딜레마가 발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율주행차에 사용되는 컴퓨터 비전 기술이 무인 정찰 드론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고, 자연어 처리 모델이 사이버전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술 개발자와 정책 입안자 모두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2025년 1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 AI 윤리 포럼에서는 이중 용도 기술의 군사적 전용을 제한하는 국제 규범 마련이 시급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나, 구체적 합의안 도출에는 실패했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자국의 안보 이익을 우선시하며 규범 협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러한 글로벌 AI 경쟁 재편 속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와 반도체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 반도체 시장에서 주요 공급자로 자리 잡고 있다. 2025년 한국의 AI 관련 연구개발 투자액은 전년 대비 18% 증가한 약 5조 원에 달했고, 정부는 2026년 3월 'AI 국가전략 2.0'을 발표하며 향후 10년간 50조 원을 AI 생태계 육성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한가운데 있다는 지정학적 제약에 직면해 있다. 미국은 한국에 첨단 AI 기술의 對중국 유출을 차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중국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 접근을 유지하려면 미국 주도의 기술 동맹에서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기술 동맹 강화와 자체 AI 역량 구축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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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AI 전문가들은 한국이 글로벌 AI 파편화 국면에서 살아남으려면 명확한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카이스트 AI대학원의 한 교수는 "한국은 미국, 일본, EU 등 민주주의 진영 국가들과 AI 표준화 및 공동 연구 협력을 강화하되, 동시에 자체 AI 모델 개발 역량을 확보해 특정 국가나 기업에 종속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2026년 4월 미국, 일본과 함께 'AI 기술 안보 파트너십'을 출범시키고, AI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와 이중 용도 기술 수출 통제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국내 AI 스타트업과 대학 연구소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여, 2025년 대비 30% 증가한 예산을 AI 기초연구와 인재 양성에 투입하고 있다.
한국의 기술 안보 전략과 국제 협력 과제
하지만 한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다. 첫째, 국내 AI 인재 풀이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2025년 기준 한국의 AI 전문 인력은 약 2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미국(약 30만 명)이나 중국(약 50만 명)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2030년까지 AI 인재를 10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현재 대학과 연구기관의 교육 역량만으로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둘째, 한국 기업들의 AI 투자가 응용 개발에 편중되어 있고, 기초 모델이나 알고리즘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2025년 한국 AI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액 중 약 70%가 챗봇, 추천 시스템 등 응용 서비스에 집중되었고, 대규모 언어 모델(LLM)이나 강화학습 알고리즘 같은 기초 연구에는 10% 미만이 배정되었다.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이 글로벌 AI 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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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이중 용도 AI 기술의 군사적 활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법적 체계가 미비하다. 한국 국방부는 2025년 'AI 기반 지능형 감시정찰 시스템' 도입 계획을 발표했지만, 민간 AI 기술의 군사 전용에 대한 윤리 가이드라인이나 의회 감독 장치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채텀 하우스 보고서가 제시한 글로벌 AI 경쟁 재편 시나리오는 한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AI 시장이 다극화되고 파편화될수록, 중견국인 한국이 전략적 자율성을 발휘할 여지는 커질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미·중 양 진영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거나, 기술 고립에 빠질 위험도 증가한다. 따라서 한국은 단기적으로는 신뢰할 수 있는 기술 동맹국들과 협력 체계를 공고히 하되, 중장기적으로는 독자적 AI 핵심 역량을 확보하여 어느 한쪽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전략적 헤징(strategic hedging)'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이는 R&D 투자 확대, 인재 양성, 국제 표준화 참여, 윤리·법적 거버넌스 구축 등 다층적 노력을 필요로 한다. 2026년 현재, 글로벌 AI 경쟁은 더 이상 기술 혁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와 경제 번영이 직결된 총체적 과제로 진화했다. 한국이 이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지금 당장 명확한 비전과 실행 가능한 로드맵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FAQ Q. 이중 용도 AI 기술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A. 이중 용도(dual-use) AI 기술은 민간 상업 목적과 군사·국방 목적 모두에 활용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자동차에 사용되는 컴퓨터 비전과 센서 융합 기술은 무인 군사 드론이나 정찰 로봇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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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어 처리 모델은 고객 서비스 챗봇뿐 아니라 사이버 공격 도구로도 전용 가능하다. 이러한 기술의 이중성 때문에 각국 정부는 수출 통제, 기술 이전 제한, 윤리 가이드라인 마련 등 복합적 규제 체계를 고민하고 있다.
미래 AI 시장의 도전과 기회
Q. 한국은 글로벌 AI 경쟁에서 어떤 위치에 있으며, 주요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A.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제조 기술과 IT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어 AI 하드웨어 공급 측면에서 강점을 지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시장의 주요 공급자이며, 2025년 한국의 AI 연구개발 투자는 약 5조 원에 달했다.
하지만 AI 전문 인력은 약 2만 명으로 미국이나 중국의 10분의 1 수준이고, 기초 AI 모델 연구보다는 응용 서비스 개발에 투자가 편중되어 있다. 또한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사이에서 지정학적 압박을 받고 있어, 독자적 기술 주권 확보와 동맹 협력 강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Q. 채텀 하우스 보고서가 경고한 'AI 시장 파편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을 의미하는가? A.
AI 시장 파편화란 각국이 자국 중심의 AI 표준, 규제, 공급망을 독자적으로 구축하면서 글로벌 AI 생태계가 상호 호환되지 않는 여러 블록으로 분열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EU의 AI 규제 체계와 중국의 AI 거버넌스 표준이 달라지면, 한 지역에서 개발된 AI 모델을 다른 지역에서 사용하려면 추가 개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이는 혁신 속도를 늦추고, 중소기업이나 신흥국의 글로벌 시장 진입 장벽을 높이며, 결과적으로 AI 기술 발전의 효율성을 저해한다. 또한 안보 논리로 기술 협력이 차단되면서 국가 간 신뢰가 무너지고 지정학적 긴장이 증폭될 위험도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