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혈연관계가 반드시 도덕적 면죄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019년 세상을 떠난 가수 고(故) 구하라 씨의 사건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법적, 윤리적 질문을 던졌다.
어린 시절 자녀를 버리고 떠난 생모가 20년 만에 나타나 상속 재산의 절반을 요구한 사건은 대중의 분노를 자아냈고, 이는 곧 민법 개정의 신호탄이 되었다. 이른바 ‘구하라법’으로 불리는 이번 민법 개정안은 양육 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하거나 자녀를 학대한 부모에 대해 상속권을 박탈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단순한 재산 분배의 문제를 넘어, 부모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지 않은 자에게는 법적 권리도 부여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양육 의무 위반의 엄격한 심판, 상속권 상실 제도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상속권 상실 제도'의 신설이다. 기존 민법은 피상속인을 살해하거나 유언을 조작하는 등의 극단적인 경우에만 상속 결격 사유를 인정했다. 하지만 개정된 법안은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으로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거나, 중대한 범죄 행위 또는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에도 상속권을 상실시킬 수 있도록 범위를 확대했다.
피상속인이 유언을 통해 상속권 상실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유언이 없더라도 공동 상속인이 법원에 상속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게 된 점은 획기적인 변화로 평가받는다.
이는 법이 더 이상 형식적인 혈연관계에만 매몰되지 않고, 실제적인 관계의 질과 부양의 책임을 중시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소급효 논란과 정의의 저울질
가장 논란이 되었던 지점은 소급적용 여부였다.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법체계에서 법 시행 이전의 사건에 새로운 법을 적용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구하라법은 이미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었거나 상속이 개시된 과거의 사건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 역시 법적 안정성을 이유로 소급효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정의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특례 조항 마련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비록 구하라 씨 본인은 이 법의 혜택을 직접 받지 못하게 되었으나, 향후 발생할 유사한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법적 장치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상속 제도의 대전환, 유류분 제도와의 충돌 해소
구하라법은 기존의 유류분 제도와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형제자매의 유류분 권리를 위헌으로 판단하며, 상속 제도가 개인의 재산 처분권과 기여도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명시했다.
구하라법 역시 이러한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양육에 기여한 바가 전혀 없는 부모가 기계적으로 상속분을 가져가는 불합리함을 바로잡음으로써, 상속 제도의 공정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다만, '중대한 양육 의무 위반'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입증 책임의 문제와 법적 분쟁의 장기화 가능성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법원은 구체적인 판례를 통해 양육의 기준과 상실의 범위를 정교하게 다듬어 나가야 할 것이다.
혈연을 넘어 '사랑과 책임'의 가치로
구하라법의 시행은 우리 법체계가 혈연 중심주의에서 탈피하여 '책임과 도리'라는 가치를 법적 권리의 근간으로 삼기 시작했음을 선언하는 사건이다. 부모라는 이름표가 무조건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시대는 끝났다.
법은 이제 자녀를 지키지 않은 부모에게 그 권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번 법안이 비극적인 가족사를 겪은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우리 사회에 올바른 부모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한다.
죽어서도 지키고 싶었던 권리가 살아있는 이들의 정의로 부활하는 것, 그것이 구하라법이 완성해야 할 마지막 퍼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