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혼 이혼의 대안으로 떠오른 '졸혼(卒婚)'이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혼인 관계는 유지하되 서로의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는 이 방식은 중장년층 사이에서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많은 부부가 졸혼을 시작하며 서로 지켜야 할 규칙을 담은 '졸혼계약서'를 작성한다. 생활비 분담, 주거지 분리, 심지어 이성 교제 허용 여부까지 상세히 기록하며 공증까지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종이 한 장이 법정에서 만능 해결사가 될 것이라는 믿음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사적 합의가 대한민국 민법의 대원칙을 앞설 수 없기 때문이다.
졸혼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약속들이 실제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졸혼계약서의 법적 지위와 공증의 한계
졸혼계약서는 법적으로 '비전형 계약'에 해당한다. 당사자 간의 의사 합치로 작성된 만큼 사적 자치의 원칙에 따라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 내용이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반할 경우 민법 제103조에 의해 무효가 될 수 있다.
특히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공증'이다. 공증은 해당 계약서가 당사자들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 계약서에 담긴 내용이 무조건 법적 효력을 갖게 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이후 어떠한 경우에도 이혼을 청구하지 않는다'거나 '재산분할을 일체 포기한다'는 조항은 우리 법원에서 개인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보아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법적 분쟁이 발생하면 계약서보다는 민법상 규정된 부부의 의무가 우선시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졸혼 중 부정행위와 정조 의무의 법적 해석
가장 갈등이 빈번한 지점은 '외도'다. 일부 졸혼 부부는 계약서에 '서로의 이성 교제를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법원은 졸혼 상태라 할지라도 부부간의 '정조 의무'가 완전히 소멸한다고 보지 않는다. 서류상 혼인 관계가 유지되는 한 배우자 이외의 자와 성적 성실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판례의 주된 흐름이다.
만약 한쪽 배우자가 졸혼 중 다른 이성과 깊은 관계를 맺었을 때, 상대방이 이를 문제 삼아 위자료를 청구하면 계약서상의 '자유 허용' 조항은 힘을 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법원은 졸혼을 '잠시 떨어져 지내는 상태'로 해석할 뿐, 혼인의 본질적 의무를 저버려도 된다는 면죄부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상간 소송 역시 마찬가지로 진행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재산분할 및 부양의무에 관한 법원 판결 경향
경제적 문제 역시 졸혼의 발목을 잡는 요소다. 졸혼 당시 '각자의 수입은 각자가 관리하며 추후 이혼 시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더라도, 실제 이혼 소송에 들어가면 법원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재산분할 포기 약정은 '이혼이 임박한 시점'에 구체적인 재산 내역을 파악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효력이 있다. 졸혼 시점에 막연히 작성된 포기 각서는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될 확률이 높다.
또한 민법 제826조에 규정된 '부부간 부양의무'도 졸혼 계약보다 우선한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배우자가 졸혼 중 생활고에 시달릴 경우, 상대 배우자는 계약 내용과 상관없이 부양료를 지급해야 할 법적 책임이 있다.
졸혼은 법적인 이혼이 아니라 감정적·물리적 거리두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의 법 체계 내에서 졸혼계약서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 문서라기보다 '상호 간의 도덕적 약속'에 가깝다. 따라서 졸혼을 선택할 때는 계약서의 문구에 집착하기보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심리적 합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법적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독소 조항을 배제하고 실현 가능한 범위를 설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한 정부와 입법 기관 역시 졸혼과 같은 새로운 가족 형태가 갈등 없이 안착할 수 있도록 생활동반자법 등 관련 제도의 보완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황혼의 자유가 법적 파열음으로 번지지 않도록 당사자들의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