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어 있는 자리의 감각
며칠 전, 아들의 앞니 두 개가 빠졌다. 이번까지 다섯 번째였다. 모두 치과에서 발치를 했다. 아랫니 세 개가 빠졌을 때만 해도 그저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앞니 두 개가 비어버린 웃음을 마주한 순간, 그 빈자리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었다. 오래된 기억을 건드리는 신호였다.
거울 앞의 아이
아들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가, 웃었다가 표정을 지웠다. 그 모습은 낯설었지만 동시에 익숙했다. 그제야 떠올랐다. 같은 자리에 서 있던 어린 시절의 나였다.
어린 시절의 두려움
일곱 살의 나는 흔들리는 앞니 하나를 붙잡고 하루 종일 마음이 복잡했다. 금방이라도 빠질 것 같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오면 겁이 났다. 피가 나면 어쩌나, 아프면 어쩌나. 어린 나에게 그 이는 단순한 치아가 아니었다. 하나의 사건이었다.
짧았던 순간
그날 저녁, 아버지는 실을 가져와 이를 묶었다. 나는 이미 반쯤 겁에 질려 있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과 견뎌야 한다는 마음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 짧은 소리와 함께 이는 빠졌다. 생각보다 빨랐고, 예상보다 덜 아팠다. 남은 것은 어리둥절함과 낯선 허전함이었다.
하나의 이야기
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이빨은 까치가 물어가면 새 이빨을 가져다준다고.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까치의 존재를 확인하지 않았지만, 그 이야기는 충분했다. 두려움은 줄어들었고, 빈자리는 기다림으로 바뀌었다.
이어지는 시간
시간이 지나 이는 다시 자랐다. 까치를 본 적은 없지만, 그 이야기는 오래 남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버지가 되었고 내 앞에는 앞니가 빠진 아이가 서 있다. 상황은 달라졌지만, 감정은 같았다.
아이의 질문
아들은 나에게 물었다.
“아빠, 나 이상해 보여?”
그 질문은 단순하지 않았다. 낯선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오는 가장 솔직한 표현이었다.
다시 건네는 말
나는 잠시 생각한 뒤 웃으며 답했다. 지금이 가장 자연스럽고 괜찮은 모습이라고.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이 이빨은 까치가 물어가면 새 이빨을 가져다준다고. 아이는 눈을 크게 뜨며 다시 물었다. 그 말은 믿음으로 받아들여졌다.
변하지 않는 역할
현실과 맞지 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설명이 아니다. 그 시간을 건너갈 수 있도록 돕는 작은 이야기다. 아버지의 한마디가 나에게 그랬듯, 이제는 내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행동보다 중요한 것
아파트 창가에 서서 이를 바라보았다. 지붕도 없고, 까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던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었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이었다. 믿음은 행동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이어진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나는 아이에게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설명하고 있는가.
두려움을 어떻게 건너게 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이야기로 아이의 시간을 지켜주고 있는가.
결국 남는 것
까치가 이빨을 물어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두려움을 덜어주고, 기다림을 견디게 하며, 성장을 따뜻하게 감싸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분명해진다.
까치는 실재가 아니라 의미다. 서로에게 건네는 믿음의 또 다른 이름이다.
*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일상생활소통연구소에 게시할 문학수필을 보통의가치 뉴스 칼럼 형식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