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예술은 미술관 벽에 걸리거나 공연장 무대 위에 선다. 예술과 종교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이 둘이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백 년 전의 일이다. 그 이전 수만 년 동안 예술과 종교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목적으로, 같은 공동체의 손에서 함께 태어났다. 신전이 곧 미술관이었고, 제사 의식이 곧 공연이었다. 예술과 종교가 왜 오랫동안 함께했는지를 이해하면, 예술의 가장 깊은 뿌리가 보인다.
그 뿌리는 인간의 근원적 한계 의식에서 자란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을 안다. 죽음이 있고, 설명할 수 없는 재난이 있고, 손에 잡히지 않는 거대한 힘이 우주를 운행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 힘에 가닿고 싶은 욕망이 종교를 낳았고, 그 힘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예술을 낳았다. 신을 부르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 아름다운 형태를 만드는 것이라고 고대인들은 믿었다.
이집트인들은 신전 벽에 신의 형상을 새겨 신이 그 형상 안에 깃든다고 믿었다. 힌두교 사원의 수천 개 조각상은 신들이 지상에 머무는 처소로 여겨졌다. 불상은 깨달음의 상태를 물질로 구현한 것이었다. 예술 작품은 신이 거주하는 집이었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이 패턴은 반복된다. 기독교 유럽의 고딕 대성당은 당시 모든 예술 형식의 총합이었다. 건축·조각·회화·음악·스테인드글라스가 하나의 공간에서 통합되어 신을 예배하는 총체 예술로 기능했다.
고딕 시대(12~15세기)에는 아미앵 대성당의 로베르 드 뤼자르슈, 생트샤펠의 피에르 드 몽트뢰유 등 건축가들의 이름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한 것은 개인의 명성이 아니라 신을 향한 봉헌이었다. 그 정신이 건축의 방향을 결정했다. 이슬람 사원의 기하학 문양과 아랍 캘리그래피는 신의 형상을 그릴 수 없다는 금기 속에서 수학적 패턴으로 신의 무한함을 표현하려는 시도였다. 인도의 만다라는 우주의 구조를 시각화하여 명상 수행의 도구로 사용됐다. 한국의 단청은 오행의 우주 에너지를 건축물에 불어넣는 영적 채색 행위였다. 예술 기법은 달랐지만 방향은 하나였다. 모두 신성(神聖)을 향했다.
예술과 종교의 분리는 어느 한 시점에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친 점진적 전환이었다. 그 전환의 시작점을 학자들은 대체로 15세기 르네상스에서 찾는다. 예술가들이 신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에 서명하기 시작했고, 창조적 능력이 신의 영역만이 아니라 인간 개인의 것이기도 하다는 인식이 싹텄다. 다만 르네상스 예술의 주류는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에서 보듯 여전히 종교화였다.
완전한 분리라기보다는 예술가의 자의식이 종교적 봉헌 안에서 함께 자라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18세기 계몽주의는 이성을 신앙의 대안적 준거로 부상시켰고, 19세기 낭만주의는 예술가의 개인적 감정을 예술의 핵심 가치로 올려놓았다. 20세기에 이르면 예술은 주제와 형식의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났지만, 동시에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는 목소리도 커졌다.
그 물음의 극단에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1917)이 있다. 뒤샹은 공장에서 만든 소변기를 예술 작품으로 독립예술가협회(Society of Independent Artists) 전시에 출품했다. 그러나 작품은 심사 과정에서 거부됐다. 〈샘〉은 이후 사진으로 기록되어 알려졌고, 오늘날 현대 미술사의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이 사건은 예술의 자율성이 극한까지 확장된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예술이 신성과의 연결을 어느 지점에서 놓았는지를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사라지고 의미가 해체된 시대에, 예술이 본래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것은 단순한 역사 공부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왜 무언가를 만들려 하며, 왜 위대한 예술 앞에서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을 흘리는지를 묻는 일이다. 그 물음의 끝에는 하나의 답이 기다리고 있다. 예술은 인간이 자신보다 큰 존재를 향해 손을 뻗는 행위였다. 그 손짓이 멈추지 않는 한, 예술은 계속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