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산업가속화법: 성장이냐 걸림돌이냐
2050 탄소중립을 향한 글로벌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2026년 들어 한국 경제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유럽연합(EU)이 3월 4일 발표한 산업가속화법(Industrial Accelerator Act, IAA)과 미국이 3월 11일 착수한 무역법 301조 기반 관세 조사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이들 정책은 전 세계 무역 환경에 새로운 규칙을 제시하며, 한국 기업들로 하여금 근본적인 전략 재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를 고려할 때,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외부 변수가 아닌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우리는 이 변화 속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먼저 유럽연합의 산업가속화법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EU는 3월 4일 IAA 최종안을 통해 주요 전략산업, 특히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풍력 등 환경 친화적인 미래 기술에 대한 대규모 지원을 공식화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지원에는 엄격한 조건이 따릅니다. 공공조달 및 보조금 혜택을 받으려면 제품의 부품이 EU 역내에서 최소 70% 생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광고
전기차의 경우 이 비율이 특히 명확하게 적용되어, 역내산 부품 비중이 최소 70%에 달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조건은 유럽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불리며, 기존의 탄소중립산업법(NZIA)을 확장한 형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U는 이 법안을 통해 2035년까지 제조업의 GDP 비중을 현재 14%에서 20%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수치 목표가 아닌, EU가 제조업 경쟁력을 되찾고 특히 중국산 제품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전략적 의지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이는 한국 기업들에게는 상당한 도전 과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한국 기업이 EU 시장 확대를 위해 현지 공장을 설립하고 생산 거점을 구축해 온 상황에서, 이번 정책은 역내 경쟁을 한층 가열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전기차와 배터리 분야에서 유럽 자체 생산 비중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광고
그러나 IAA에는 주목할 만한 파격적인 조항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EU는 FTA 체결국 및 관세동맹국에 대해서는 현지 생산설비가 없더라도 역내 생산과 차별 없이 대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기존의 보호무역 정책과는 다른 접근으로, 한국처럼 EU와 FTA를 맺고 있는 국가들에게는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2011년 7월부터 한-EU FTA를 발효시켜 왔으며, 이를 통해 EU 시장에서의 관세 혜택과 시장 접근성을 확보해 왔습니다. 이번 IAA의 동등 대우 조항은 한국 기업들이 반드시 EU 내에 대규모 생산설비를 구축하지 않더라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조항의 구체적인 적용 방식과 세부 기준이 아직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어떤 수준의 협력과 인증 절차가 필요한지, 어떤 품목과 분야에 우선 적용될 것인지에 대한 추가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반면, 미국의 움직임은 EU와는 또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광고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3월 11일 한국, 일본을 포함한 16개국을 대상으로 무역법 301조에 기반한 조사를 개시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무역법 301조는 미국 대통령에게 불공정한 무역 관행에 대해 일방적으로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 법적 근거입니다. 이 법은 과거 1980년대 일본과의 무역 마찰, 2000년대 중국과의 지적재산권 분쟁 등에서 활용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트럼프 행정부 시기 대중국 관세 부과의 주요 근거로 사용되었습니다.
미국 관세 불확실성, 한국 수출업계 긴장 고조
이번 조사는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 정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월 20일 트럼프의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관세 부과가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서는 월권 행위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판결 직후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일률적으로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여 글로벌 무역계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방향성은 글로벌 무역 환경의 불확실성을 크게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광고
특히 한국처럼 GDP 대비 수출 비중이 40%를 상회하는 수출 의존형 경제구조를 가진 국가는 이러한 관세 조치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철강 등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이 미국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10% 일률 관세는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직접적으로 약화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미국 내 환경 규제를 둘러싼 논란입니다.
3월 19일 캘리포니아, 뉴욕을 포함한 23개 주 정부가 환경보호청(EPA)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들 주는 트럼프 행정부가 수은 배출 기준을 완화하고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 기준을 폐지하려는 조치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2년 오바마 행정부가 도입한 환경 기준을 폐지하려 했을 뿐 아니라, 바이든 행정부가 2024년 더욱 강화했던 기준마저 무효화하려는 시도를 진행 중입니다. 이러한 환경 정책의 급격한 변화와 주 정부와 연방 정부 간의 갈등은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광고
환경 규제가 완화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규제 준수 비용이 줄어들 수 있지만, 23개 주가 독자적으로 더 강화된 환경 기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 미국 시장이 사실상 이중 기준으로 분할될 위험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전체 자동차 시장의 약 12%를 차지하는 거대 시장이며, 뉴욕을 비롯한 동부 주요 주들도 상당한 시장 규모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은 연방 기준과 주별 기준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이중 전략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처럼 환경 정책이 미국 시장 진출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한국 기업들로서는 선제적이고 유연한 대응 체계를 구축할 필요성이 매우 큽니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과 산업 분석가들은 이러한 글로벌 ESG 규제 변화 속에서 한국 경제가 진정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고 진단합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제조업 강국으로 자리 잡아왔으며, 특히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조선, 철강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해 왔습니다. 그러나 무역 환경이 ESG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단순히 공급체인을 효율화하거나 생산 비용을 절감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전략 전환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탄소 배출 저감,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공급망 내 인권 보호,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 등 다차원적인 ESG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사실상, 관세 조치와 환경 규제가 결합되며 기업들의 생존과 성장을 가를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환경 규제와 무역정책, 우리가 해야 할 준비는?
물론 이러한 변화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도 존재합니다. 국제 사회가 협력하여 ESG 규제를 확산시키면, 초기에는 적응 비용이 발생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선제적으로 대응한 기업들이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한국이 이미 보유한 기술력, 특히 배터리, 수소, 반도체 분야의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ESG 기준을 선도하면 오히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은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그룹은 전기차 전환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우위를 ESG 경쟁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긍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불확실성을 완전히 해소하기는 어렵습니다.
EU의 IAA는 구체적인 적용 기준이 아직 명확하지 않고, 미국의 관세 정책은 정치적 변수에 따라 급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2026년 현재 미국 대선을 1년도 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행정부의 성향에 따라 무역 및 환경 정책이 180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 글로벌 경제의 복잡한 변화가 한국 기업과 경제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추가적으로, 한국 정부와 기업은 이번 글로벌 정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해야 합니다. 첫째, EU의 IAA 동등 대우 조항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한-EU FTA의 세부 조항과 연계 방안을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둘째, 미국 무역법 301조 조사에 대비하여 한국 정부는 외교적 채널을 통해 한미 FTA의 정당성과 공정 무역 관행을 적극 설명하고 방어해야 합니다. 셋째, 기업 차원에서는 ESG 경영 체계를 강화하고 탄소 배출 저감, 재생에너지 전환, 공급망 투명성 확보 등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체질 개선을 서둘러야 합니다.
넷째, R&D 투자를 확대하여 친환경 기술과 차세대 배터리, 수소, 탄소 포집 등 미래 핵심 기술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합니다. 결국 한국 경제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EU와 미국이 각각 제시하는 새로운 무역 규칙과 ESG 기준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를 기회로 삼아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한층 높이는 전략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글로벌 규제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한국은 선제적 학습과 적극적인 국제 협력을 통해 새로운 경제 질서에서 주도적 위치를 확보해야 합니다. 앞으로 한국 정부와 기업이 어떤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얼마나 신속하게 실천하느냐가 향후 10년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입니다.
최민수 기자
광고
[참고자료]
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