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 동화 - 10편 네가 보고 싶으냐?
겨울이 막 시작되던 날이었다.
수아는 며칠째 가방 속에 안경을 넣고 다니고 있었다.
안과에서 시력이 약하다는 말을 들은 이후였다.
칠판 글씨는 흐릿했고,
멀리 있는 표지판은 읽히지 않았다.
안경이 필요했다.
하지만 꺼내지 못했다.
아이들이 뭐라고 할지 몰라서였다.
특히 짝꿍 하준이.
한 번 말하면 반 전체가 알게 되는 아이였다.
오늘도 수업 시간.
수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글씨를 따라 적었다.
한 글자를 잘못 읽었다.
지우고, 다시 썼다.
옆에서 하준이가 슬쩍 물었다.
“왜 눈 그렇게 찡그려?”
“그냥.”
짧게 대답했지만
수아의 손끝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점심시간.
수아는 도서관으로 갔다.
조용한 곳이 필요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안경을 꺼냈다.
작은 검은 테 안경.
손 위에 올려놓고 한참 바라봤다.
쓰면 보인다.
안 쓰면 흐릿하다.
그 사이에서
수아는 며칠째 멈춰 있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스쳤다.
“혹시, 쓰면 이상해 보이면 어떡하지.”
그 생각이
손을 다시 멈추게 했다.
도서관 선생님이 다가왔다.
“수아야, 무슨 고민 중이니?”
수아는 조용히 안경을 내밀었다.
“이거, 써야 한대요. 근데 애들이 뭐라고 할 것 같아서요.”
선생님은 옆 의자를 끌어 앉았다.
창밖을 잠시 바라봤다.
겨울 햇빛이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나도 처음엔 그랬어.”
“네?”
“중학교 때 안경을 맞췄는데, 한 달 동안 가방에만 넣고 다녔지.”
수아가 물었다.
“그럼, 언제 쓰셨어요?”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수학여행 날이었어. 경복궁 현판 글씨가 하나도 안 보이더라.”
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
“친구들은 다 읽는데 나만 못 읽으니까…, 그게 더 창피했어.”
수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 안의 안경을 내려다봤다.
그때 선생님이 물었다.
“수아야.”
“너는 정말 보고 싶으냐?”
수아가 고개를 들었다.
“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길가에 앉아 있었어. 예수가 그에게 물었지.”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수아가 물었다.
“그 사람은 뭐라고 했어요?”
선생님은 조용히 말했다.
“보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덧붙였다.
“당연한 말 같지만, 그건 스스로 말해야 하는 거야.”
“원한다고 말하는 것도, 용기니까.”
수아는 창밖을 바라봤다.
겨울 나뭇가지가
하늘 속에서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흐릿하게.
수아는 잠시 숨을 고르고,
안경을 썼다.
순간,
세상이 또렷해졌다.
가지 하나하나가 보였다.
잎이 떨어진 자리까지 선명했다.
멀리 건물 벽에 붙은 글씨도 읽혔다.
수아는 창문 쪽으로 몸을 조금 더 기울였다.
“와…”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웃었다.
오후 수업.
수아는 안경을 쓴 채 교실 문을 열었다.
하준이가 먼저 발견했다.
“수아야! 안경 썼네?”
조금 큰 목소리였다.
몇 명이 고개를 돌렸다.
수아의 발이 잠깐 멈췄다.
‘벗을까.’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벗지 않았다.
“응.”
짧게 대답했다.
그때 민지가 말했다.
“잘 어울린다.”
그 한마디가
수아의 어깨를 조금 풀어주었다.
하준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관심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수업이 시작됐다.
선생님이 칠판에 글씨를 썼다.
수아는 그것을 바라봤다.
선명했다.
한 글자도 놓치지 않았다.
또박또박 공책에 옮겨 적었다.
그때,
문득 마음속에서 질문이 떠올랐다.
네가 보고 싶으냐.
그 질문은
눈에 관한 것만은 아니었다.
보려면
용기가 필요한 것들이 있었다.
안경을 쓰는 것처럼.
말해야 하는 것.
선택해야 하는 것.
그리고,
흐릿함을 포기하는 것.
창밖으로 겨울 하늘이 보였다.
맑고, 깊고, 또렷한 파랑.
수아는 그것을 오래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생각했다.
세상은 원래 선명한 것이 아니라,
보겠다고 결정할 때 선명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