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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돈의 신앙칼럼 - 어느 해 종려주일에 쓴 참회록

새벽 기도의 습관과 아내의 약 봉투, 그리고 찾아온 '붉은 경고'

"호산나"와 "십자가" 사이의 괴리, 내가 휘둘렀던 무기였나

살려달라는 비굴함 대신, 마무리할 시간을 구하는 마지막 고백

박상돈 교수 | 합동총회신학교 성경신학

 

 

이른 아침 눈을 뜹니다.
버릇이란 게 이리도 무섭습니다.
반쯤 몸을 일으켜 세우고 다시 눈을 감습니다.
기도하려고 합니다.
하루의 일정이 마치 계산처럼 눈앞에 놓입니다.
이제는 습관처럼 동행을 청구합니다.
짧은 묵상기도가 끝나고 아내를 챙기려고 시계를 봅니다.
이참 식사에 앞서 두 시간 전에 꼭 먹어야 할 약이 있어서입니다.
꼬박꼬박 정성스레 약을 챙겨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따금 시간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아내가 알아서 약을 먹습니다.
그 빈도수가 점점 더 늘어갑니다. 
꾀가 는 것인지, 아니면 게으름의 결과인지,
아무튼 그럴 때면 자책을 하곤 합니다.
오늘은 아내를 챙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뿔싸,
고통은 한순간에 찾아옵니다.
이 나이가 되면 소변 보는 일도 조심스러워집니다.
하필이면 큰 기침과 더불어 볼일을 봅니다. 
변기를 내리려고 하다 화들짝 놀랐습니다.
온통 붉은 핏물로 물들었기 때문입니다.
따끔하더니 실핏줄을 건드렸나 봅니다.
그 아픔이 목숨 줄을 생각하게 합니다.
오래 전의 뼈저린 경험이 있는 터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조심스레 사태를 수습합니다.
그리고 기어 오다시피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눕습니다.
아내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딸들의 얼굴도 떠오릅니다.
성도들의 얼굴도 떠오릅니다.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못 했는데,
사랑한다는 말도 못 했는데,
울먹이듯 가슴으로 말합니다.
그렇게 생명의 끈은 조금씩 풀리나 봅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이 좋은 날에 참회록을 씁니다.
지나온 날의 게으름을 고백합니다.
조금만 부지런했었다면,
이것도, 저것도 충분히 했을 것인데 
괜스레 후회되는 일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시간은 그렇게 저만치 떠나고 말았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그 추억을, 그 부끄러운 기억을,
오늘은 죄라고 쓰고 참회의 기록을 남깁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무리는 어떤 생각으로 환호성을 질렀을까요?
권력의 칼이 호령을 하는데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냅다 소리를 지릅니다.
그 유명한 "호산나"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 없는 외침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어느새 그들은 십자가를 외칩니다.
예수님을 산 자의 땅에서 몰아냅니다.
그렇게 죽음의 땅으로 예수님을 밀쳐냅니다.
예수님께 걸었던 모든 회망을 절망으로 바꾸는 순간입니다.
돌아보면 사람들은 참 미련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을 내동댕이쳐버립니다.
십자가는 배반의 아이콘인가 봅니다.
필요할 때면 언제든 달려와 아양을 떨던 씹다 버린 껌딱지입니다.
지워질 수 없는 예수님의 핏자국,
그렇게 한 켜씩 불신앙이 쌓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수틀리면 십자가를 마구 휘둘렀습니다.
십자가 한 마디에 꼼짝 못하는 성도들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무안할 정도로 십자가라 냅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한 발짝도 다가서지 않았으면서,
그 예수님의 고통을 매표소에 무수히 내놓았습니다.

 

느슨해지는 목숨 줄을 의식하며
이제야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천근의 무게로,
검붉은 핏방울의 정신을 봅니다.
도마의 고백은 뒤늦은 고백이 아니었음을,
그래서 조용히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부끄러움을 참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불러봅니다.
살려달라는 비굴한 기도보다,
마무리할 시간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도록,
십자가 그늘에 쉼을 얻도록,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불러봅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 저자 주 : 이번 주간은 고난주간입니다. 하여 신학칼럼보다 신앙칼럼 한 쪽을 올려봅니다. 본 글은 2015년 3월 29일에 쓴 낡은 내용입니다. 그해 고난주간, 저는 경희의료원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넘나들었습니다. 종려주일 예배를 모두 마무리한 후 목양실에서 쓰러졌습니다. 급성 패혈증이라 했습니다. 아내가 발견하고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 은혜로 살아나 일반병실로 옮겨진 후 써둔 글입니다. ]

 

 

 

작성 2026.03.31 21:24 수정 2026.03.31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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