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칼럼 #3] 더 가득히—'채움'으로 증명하던 시절
완벽한 집에서 시작하려 하지 마세요.
결핍이 당신을 성장 시키는 동력이 됩니다
인생의 한가운데를 지날 때, 보편적으로 우리의 집은 거대한 '전시장'과 같습니다.
그때의 우리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집 안으로 들여오는 것으로 자신의 성장과 성취를 확인하곤 합니다
거실 한복판을 차지한 커다란 TV, 서재를 가득 채운 전집들, 화려한 그릇 세트까지.
우리에게 '채움'은 곧 '능력'의 상징으로 느껴집니다.
방에 최신형 가구나 가전을 들여 놓을 때의 뿌듯함은 단순한 소유욕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내가 이 사회에서 제 몫을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이고, 부족함 없는 환경을 꾸리고 있다는 충족감 입니다.
그 시절의 집은 활기로 가득 찹니다. 물건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꿈도 함께 부풀고,
빼곡한 만족감은 또 다른 구함을 위한 욕구의 동기가 되어 우리를 더 치열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동력이었습니다.
채움의 미학은 그렇게 우리 인생의 가장 뜨거웠던 '여름'을 지탱해주었습니다.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곧 '내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성적표처럼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지요.
처음 내 집 나만의 공간을 가졌을 때의 설렘은 곧 '채움'에 대한 욕구로 이어집니다.
여러분에게 ‘첫 집’은 어떤 기억인가요?
요즘은 '영끌'이나 '상급지 이동' 같은 차가운 단어들이 집의 의미를 대신하곤 합니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는 나의 첫 집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였습니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의 삐걱거리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던 날, 그 텅 빈 공간에 감돌던 서늘하면서도 포근한 공기를 기억합니다.
내 이름으로 된 계약서 한 장을 손에 쥐었을 때의 그 떨림은, 단순히 안전하게 잠잘 곳이 생겼다는 안도감이 아니라 '이제야 세상에 내 자리를 마련했다'는 독립 선언문과도 같았습니다.
좁은 화장실, 겨울이면 스며들던 외풍... 지금 생각하면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그곳에서 가장 뜨겁게 미래를 설계했습니다.
내 취향대로 고른 커튼 한 폭, 작은 스탠드 하나가 주는 위로, 타인의 시선이 아닌, 오롯이 나의 취향으로 채워지는 첫 공간
그 집에서 보낸 '시간'과 '기억'이 결국 인생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거실을 꽉 채운 커다란 소파, 벽면을 메운 책들, 필요가 아닌 전시를 위한 자잘한 물건들까지.
우리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안으로 들였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채움'은 확장하려는 자아의 본능과 닮아 있습니다.
세상에서 나의 영역을 확보하고, 내가 이만큼 해냈다는 것을 가시적인 물건들로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 시절 우리에게 물건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불안을 잠재우는 방어기제이기도 했습니다.
집안 가득 물건이 쌓일수록 삶이 견고해진다는 착각, 남들만큼 갖추고 산다는 안도감이 우리를 지탱해 주었습니다.
빈 구석이 보이면 마음 한구석도 허전해질까 두려워, 우리는 취향보다 '보여짐'을', 여백보다 '밀도'를 선택하며
치열하게 공간을 메워왔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가득한 물건들 사이에서 정작 '나'라는 존재가 숨 쉴 틈은 점점 좁아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채움으로써 증명하려 했던 것은 어쩌면 내면의 단단함이 아니라, 외부의 시선에 응답하려 했던 고단한 자아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가득히'의 시절을 지나 '비움'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앉은 자리에서 둘러 보았을때 '저건 버려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세월을 쌓고 있는 물건이 있으신가요?
그것은 무엇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