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서의 마음이 내게도
나에게 아픔과 상처를 준 이들을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모함과 비난을 퍼붓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용서하라’는 부담(?)이 되는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용서하라’는 말씀 속에는 진정한 사랑의 파장을 일으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계산을 앞세우지 않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할 수 없는 자까지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 진심으로 용서하고 품는 것입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용서하지 못할까요? 상대방의 연약성과 부족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 생각에만 메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게 아픔과 상처를 준 자들의 외면만 바라보고 분개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의 내면에는 상처와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본인의 아픔을 분노로 표현하면서 상처를 주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게 아픔을 준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감한다면 용서의 마음이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2년 전 아내는 진심으로 사랑을 베풀었던 성도에게 반복되는 상처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결국은 응급실에 두 번이나 실려 가 기절까지 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절을 한 아내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내려앉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상담 사역을 하다 보면 그런 일들이 많이 있으나 당시에는 사랑을 상처로 돌려준 성도가 사실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처를 준 이를 품고 이해하고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강하게 처리할까요?” 부끄럽지만 분이 가득 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리고 늦은 저녁 “그래도 품어야지…. 그래도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지”라는 마음이 임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요한복음 13:1 “끝까지 사랑하시느라” 이 말씀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힘들게 한 성도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으나 “끝까지 사랑하라”라는 말씀 때문에 시험의 늪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용서의 마음이 임했습니다. 그때 마음에 표현할 수 없는 평안함이 임하기도 하였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나를 힘들게 한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분노의 감정을 품고 살아간다면 손해 보는 이는 본인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온전히 용서할 수 없을지라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달래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 사랑하고 용서 할수 있는 사람만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할수 없고 용서할 수도 없는 사람까지 품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을 용서하지도 못하고 분노의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면 이처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 늦기 전에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용서의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