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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의 기본>은 화려함의 반대편에서 출발한다.

단단함의 정의를 다시 묻다

반복의 표면, 시간의 두께

기억의 노랑, 회귀의 미학으로 남다

 

<옥수수의 기본> 20호, 아크릴, 옻,, 황토

 

작가는 화면 가득 옥수수를 배치하지만, 그것은 ‘사물’이라기보다 ‘시간의 단면’으로 읽힌다. 표면은 거칠고 두텁다. 마치 매일 쌓이는 하루의 층위를 시각적으로 눌러 담은 듯하다. 이 작품은 단순한 정물화가 아니라, ‘반복’이라는 시간적 행위를 시각화한 일종의 존재 기록이다. 그렇기에 관람자는 옥수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시간의 표면’을 목도한다.

 

작가는 이 평범한 대상을 통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예술을 단단하게 만드는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기본’의 자리로부터 멀어졌는가. 반복은 미술사에서 종종 ‘기계적 행위’로 간주된다. 그러나 <옥수수의 기본>에서의 반복은 그 자체로 시간의 물질화다. 알갱이 하나하나가 미묘하게 다르지만, 작가는 그 차이를 감추고 평준화된 리듬 속에 묻는다. 그 결과 화면은 ‘개별성의 소거’를 통해 오히려 밀도의 존재감을 획득한다. 이것은 단순한 패턴이 아니라, ‘지속’과 ‘누적’의 회화다.

 

작가의 붓질은 계산된 균일성을 가장하면서도, 그 안에 불완전한 생명감을 숨겨둔다. 그 미묘한 차이가 작품의 호흡을 만든다. 즉, 이 작품은 ‘같음의 차이’를 통해 시간의 본질적 성질 - 끊임없는 반복 속 변화 - 를 보여준다. <옥수수의 기본>을 지탱하는 것은 노란색이 아니라, 그 사이의 어둠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알갱이의 틈을 강조해, 빛보다 그림자가 구조를 떠받치게 만든다. 이 ‘틈’은 단순한 음영이 아니라, 시간의 간극과 존재의 여백을 상징한다. 어둠은 회화적 공간의 균형추이자 심리적 심도다. 그림자 없이 색은 뜨고, 밝음만 있는 세계는 텅 빈다. 따라서 <옥수수의 기본>은 ‘빛’이 아니라 ‘틈’으로 구성된 회화이며, 그 틈이야말로 작품이 지닌 철학적 견고함의 근원이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의 결핍과 마주하게 한다. 보이지 않는 틈 속에서 비로소, ‘보는 행위’의 의미가 완성된다.

 

‘기본’은 미술사적으로도 흥미로운 단어다. 미니멀리즘 이후의 예술에서 ‘기본’은 형태적 단순함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로 돌아가는 회귀의 선언으로 읽혔다. 작가가 이 단어를 제목으로 택한 것은 단순한 미학적 태도가 아니라, 철학적 선언에 가깝다. 그는 시각적 화려함보다 물질의 진실함을, 표현의 기교보다 반복의 진중함을 선택한다. 그 선택은 곧 예술의 윤리이자, 존재의 태도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일’은 과거로의 퇴행이 아니라, 본질로의 귀환이다. 그것은 예술이 세속적 장식에서 벗어나 다시 ‘사유의 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을 상징한다.

 

<옥수수의 기본>의 색채는 단순히 ‘노랑’이라 부를 수 없다. 그것은 햇빛의 노랑이 아니라, 기억의 노랑이다. 빛나기보다는 스며들고, 가볍기보다는 눅진하다. 시간이 침전된 색, 반복이 남긴 온도의 색이다. 작가는 재료를 겹겹이 쌓아올리며 ‘시간의 무게’를 시각화한다. 이 질감은 단순히 촉각적인 감흥을 넘어, 기억의 퇴적물로 작동한다. 그 노랑은 떠오르는 색이 아니라, 오래 머무는 색이다. 이것이 바로 <옥수수의 기본>이 전하는 ‘단단함의 미학’이다. 쉽게 지워지지 않고, 조용히 남는 것.

 

전문 큐레이터의 시선에서 <옥수수의 기본>은 ‘보이지 않음의 회화’다. 그 안에는 거대한 서사도, 극적인 감정도 없다. 그러나 그 ‘없음’이야말로 작품의 강도(强度)를 만든다. 이 작품은 관람자에게 조용한 명상처럼 다가온다. 우리는 화면을 ‘본다’기보다 ‘머문다’. 그 머묾의 시간 속에서, 일상의 반복은 예술의 리듬으로 변환되고, 평범함은 단단함으로 환원된다. 결국 <옥수수의 기본>은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 위에 서 있는가.” 그 질문은 예술을 넘어, 삶의 자세에 대한 회귀의 요청이다. 단단함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기본으로 돌아간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다. 

 

 

 

 

작성 2026.01.24 15:41 수정 2026.01.2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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