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권한의 분산인가, 사법부 독립의 침해인가…법원행정처를 둔 치열한 논쟁

법원 인사·예산·회계 등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 대법원장 권한 집중 문제 놓고 개편 논의

대법관 제청 과정에서 대통령과 대법원장 충돌…헌법 제104조 제2항 해석과 대법관 공석 문제도 쟁점

폐지안은 사법행정위원회로 권한 이전 제시…독일·일본도 사법행정과 법관 인사에 서로 다른 구조 운영

[화담일보=남소명기자]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 권한을 별도의 합의제 기구로 분산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돼 있다. 다만 이 법안은 아직 국회를 통과한 법률이 아니며, 현행 법원행정처가 폐지된 것도 아니다. 현행 법원조직법 제19조는 여전히 대법원에 법원행정처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어떤 역할을 하나

 

법원행정처는 대법원 산하에서 전국 법원의 사법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다. 현행 법원조직법 제19조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법원의 인사·예산·회계·시설·통계·송무·등기·가족관계등록·공탁·집행관·법무사·법령조사 및 사법제도 연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즉 법원의 재판 자체를 담당하는 기관은 아니지만, 재판이 이뤄지는 데 필요한 인력과 예산, 시설 등 전국 법원의 운영과 관련된 광범위한 업무를 맡고 있다. 

 

법원행정처를 둘러싼 개편 논의의 핵심은 이 같은 사법행정 권한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중심으로 계속 운영할 것인지, 아니면 별도의 합의제 기구 등에 분산할 것인지에 있다.

 

 

대법관 재제청 논란이 보여준 권한 배분 문제

 

최근 이재명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 사이에서 발생한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논란도 사법부의 권한 배분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 임명 절차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②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번 논란은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인선 과정에서 발생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김민기·박순영 서울고법 고법판사,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등 4명을 후보로 추천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최종적으로 손봉기 부장판사를 대법관 후보자로 제청했지만, 이재명 대통령 측은 실질적인 협의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조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구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9월 22일 재제청 요구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제청 요청 문서에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았고, 재제청 요구를 정당화할 별도의 헌법적 근거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조 대법원장의 설명이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 측은 대통령에게 대법관 임명권이 있는 만큼 대법원장의 제청권 역시 대통령의 임명권과 함께 해석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원행정처를 둘러싼 논쟁 / 출처=AI 생성 이미지

 

이에 따라 이번 사태는 헌법 제104조 제2항에 규정된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조정돼야 하는지를 둘러싼 헌법 해석 문제로 이어졌다. 어느 한쪽의 해석이 법적으로 확정된 상태는 아니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에게 대법관 후보자의 재제청을 요구하고 대법원장이 이를 거부한 사례는 1987년 현행 헌법 체제 이후 사실상 처음인 것으로 보도됐다. 과거에도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대법관 인선을 놓고 의견 차이를 보인 사례는 있었지만, 이번처럼 재제청 요구와 거부까지 이어진 경우와는 차이가 있다.

 

대법관 공석 문제도 이어지고 있다. 노태악 전 대법관은 2026년 3월 퇴임했으며 후임 인선이 마무리되지 않으면서 한 자리가 장기간 공석으로 남아 있다. 10월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국정감사에서도 대법관 공석 장기화와 재제청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다만 대법관 제청 문제와 법원행정처 폐지안은 동일한 제도적 쟁점은 아니다. 전자가 대법관 임명 과정에서의 헌법상 권한 문제라면, 법원행정처 폐지 논의는 법원의 인사·예산 등 사법행정을 어떤 기관이 어떤 방식으로 담당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다. 두 논쟁은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권한의 범위와 사법부 독립을 둘러싼 논의라는 점에서 연결돼 있지만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법원행정처 폐지안, 무엇을 바꾸려 하나

 

현재 국회에 발의된 대표적인 법안은 전현희 의원 등 11인이 2025년 12월 3일 발의한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의안번호는 2214807이다.)
이 법안은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법안에 따르면 사법행정위원회는 법원의 인사·징계·예산·회계 등 사법행정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로 설계됐다. 위원회는 위원장 1명과 상임위원 3명을 포함해 13명의 위원으로 구성하도록 되어있으며 위원장은 현직 또는 전직 법관이 아닌 위원 가운데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추천을 받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하도록 했다. 위원의 임기는 3년이며, 위원회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별도의 사무처도 두고 있다.

 

폐지안에 찬성하는 측은 사법행정 권한을 하나의 조직과 대법원장에게 집중시키는 대신 합의제 기구로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법관 외부 인사의 참여를 통해 사법행정의 의사결정 과정에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 인사·예산 등의 결정이 특정 기관이나 인물에게 집중되는 것을 줄일 수 있다는 취지다.

 

반대 측에서는 사법행정의 상당 부분이 법관의 인사와 재판 환경에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에 외부 인사가 인사·징계 등의 권한을 행사할 경우 사법부의 독립성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법원 내부에서는 헌법 제101조 제1항의 ‘사법권’에 사법행정권이 포함된다는 해석을 근거로, 비법관 중심의 사법행정기구가 핵심적인 사법행정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다만 이러한 위헌 주장은 현재 확정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아니라 법안에 대한 법원 측의 헌법적 해석과 우려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현재 논쟁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현재 논쟁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제도적 불확실성이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의 동의, 대통령의 임명이라는 절차를 규정하고 있지만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자의 재제청을 요구할 수 있는지, 대법원장이 그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까지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이 때문에 대법관 인선이 장기간 마무리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고, 제청권과 임명권의 관계를 둘러싼 헌법 해석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대법관 공석이 장기화되면 대법원 심리와 전원합의체 구성 등에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또 다른 문제는 법원행정처 폐지 논의가 구체적인 대체 조직과 권한 배분에 대한 합의보다 ‘폐지해야 하는가’라는 찬반 논쟁에 집중될 가능성이다.

법원행정처가 담당하던 업무는 폐지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직을 없앤 뒤 누가 인사·예산·시설·회계 업무를 담당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독일과 일본은 어떻게 운영하나

 

독일은 연방제 국가이기 때문에 연방법원과 각 주 법원의 제도가 구분되고, 주마다 법관 임명과 사법행정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연방 최고법원의 경우 기본법 제95조에 따라 해당 분야 연방 장관과 법관선출위원회가 공동으로 법관 선출에 관여한다. 법관선출위원회는 각 주의 관련 장관과 연방의회가 선출한 동일 수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일본은 최고재판소가 사법행정권을 가지고 있으며, 최고재판소 재판관회의의 의결에 따라 사법행정을 수행한다.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은 재판관회의를 보좌하면서 인력과 시설 등 법원 운영을 지원한다. 하급재판소 법관 지명과 관련해서는 별도의 자문위원회도 운영된다.

 

따라서 독일은 연방과 주 차원의 구조가 나뉘고 법관 선출에 여러 주체가 참여하는 반면, 일본은 최고재판소 중심의 사법행정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어느 나라도 한국의 법원행정처 폐지안과 동일한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반복된 법원행정처 개편 논의

 

법원행정처의 권한을 분산하자는 논의는 최근에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과거 이용훈 대법원장 시기에도 법원행정처의 비대화와 사법행정의 분산을 둘러싼 개편 논의가 있었고, 사법행정의 논의·의사결정·집행 기능을 서로 나누는 방안이 검토됐다.

 

2017년 이후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을 계기로 폐지론은 더욱 본격화됐다.

이후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기에는 사법행정자문회의와 같은 자문기구를 통해 사법행정에 법관 외부의 의견을 반영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국회에서도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위원회를 설치하는 법안이 반복적으로 발의됐다. 2020년 1월 박주민 의원은 법원행정처와 법관인사위원회를 폐지하고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사법행정위원회를 설치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같은 해 7월에는 이탄희 의원도 법원행정처 폐지와 사법행정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해당 논의는 입법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법원행정처가 사라진다면 운영은 어떻게

 

법원행정처가 폐지된다고 해서 인사·예산·회계·시설 등 기존 업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발의된 전현희 의원안처럼 사법행정위원회가 주요 사법행정 사항을 심의·의결하고 별도의 사무처가 실무를 담당하는 구조라면, 기존 법원행정처의 기능을 의사결정 기능과 집행 기능으로 나누는 방식이 가능하다. 이는 어디까지나 현재 발의된 법안이 제시한 구조이며 아직 확정된 제도는 아니다.

 

제도 설계에서는 몇 가지 사항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첫째, 법관 인사·징계와 같은 사항에서 법관의 재판 독립을 보호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외부위원의 참여가 정치적 영향력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추천·임명 절차와 임기, 제척·기피 등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

셋째, 위원회가 모든 행정 업무를 직접 처리하기보다 정책적 의사결정과 전문적인 행정 집행의 역할을 적절히 분리해야 한다.

넷째, 기존 법원행정처가 보유한 전문성과 업무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인력과 예산의 이관 절차를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조직을 폐지하는 것만으로는 사법행정의 효율성이 확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폐지될 경우 예상되는 문제도 있다

 

법원행정처 폐지에는 반대 논리도 분명히 존재한다.

 

가장 큰 쟁점은 외부 영향력 확대 가능성이다. 비법관이 법관 인사와 징계 등 핵심 사법행정에 참여할 경우 정치적 이해관계가 사법행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어떻게 차단할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법원 내부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사법부의 외부적 독립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위원회가 설치되더라도 권한 집중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장에게 집중됐던 권한이 새로운 위원회나 특정 위원에게 집중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러 기관과 위원에게 권한을 지나치게 나누면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가능성도 있다.

 

결국 법원행정처 폐지는 ‘조직을 없애는 것’보다 폐지 이후 어떤 구조가 사법행정을 담당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문제다. 법관의 재판 독립과 사법부의 외부적 독립을 동시에 보호하면서도 사법행정에 대한 견제와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찬반보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제도 설계

 

법원행정처 폐지안은 현재 발의돼 심사되고 있는 법안일 뿐 시행이 확정된 제도가 아니다. 따라서 국민은 ‘폐지 찬성’과 ‘폐지 반대’라는 정치적 구도만으로 판단하기보다 법원행정처가 현재 담당하는 각각의 권한이 폐지 이후 누구에게, 어떤 절차로 넘어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번 대법관 재제청 논란 역시 특정 인물이나 정파의 문제로만 접근하기보다 헌법이 대법원장·국회·대통령에게 각각 어떤 권한을 부여하고 있으며, 그 권한들이 충돌할 때 해결할 절차가 충분히 마련돼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논의의 당사자들도 마찬가지다. 법원행정처 폐지를 주장하는 측은 권한 분산의 필요성뿐 아니라 사법부의 독립성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구체적인 장치를 제시해야 한다. 반대 측 역시 현행 구조의 장점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권한 집중 문제를 어떻게 견제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출처=AI 생성 이미지

 

결국 핵심은 법원행정처라는 조직의 존폐 자체가 아니다. 사법행정의 민주적 통제와 사법부의 독립, 행정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어떤 구조 안에서 함께 확보할 것인지가 이번 논쟁에서 검토해야 할 본질적인 문제다.

작성 2026.10.07 18:00 수정 2026.10.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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