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 자신 있게 앞장서면 사람들은 그 뒤를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앞에 서 있다는 것이 반드시 올바른 길을 알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날의 나처럼 말이다.
지난주 가족과 함께 에버랜드를 찾았다. 방문하기 전부터 내가 눈여겨보고 있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좀비 테마축제였다. SNS를 통해 ‘블러드시티 제로 : 지옥의 문’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행사를 보면서 에버랜드에 가면 꼭 한번 직접 체험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들이 좀비를 무서워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아내와 아들은 사파리월드를 구경하러 향했고, 나는 홀로 좀비를 만나러 갔다. 내가 선택한 것은 ‘핏빛교정’이라는 미션 프로그램이었다. 좀비가 된 학교를 배경으로 학생주임 좀비를 피해 어둠 속에서 문을 찾아 탈출하는 미션이었다. 8명에서 10명 정도가 한 팀이 되어 함께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혼자 참여한 나에게도 그 자리에서 새로운 팀원들이 생겼다. 커플도 있었고, 친구끼리 온 사람들도 있었으며 군부대 동료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우리는 함께 좀비를 피해 탈출해야 하는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드디어 입장이 시작되었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생각보다 훨씬 어두웠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느 쪽에 문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좀비까지 피해야 했다. 사람들의 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누군가는 앞을 더듬었고, 누군가는 앞사람을 따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나 역시 처음에는 사람들과 함께 움직였다. 그런데 잠시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언제 나가겠어. 내가 앞장서보자.’
혼자 참여하기도 했고 그 순간만큼은 이상하게 용기가 생겼다.
‘좋아. 내가 리더가 되는 거야.’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누가 나에게 앞장서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니었다. 혼자 그렇게 결정했다.
“좋아, 나를 따르라”
사람들이 출구를 찾는 동안 나 역시 주변을 살피며 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 하나를 발견했다. 문을 열었다. 길이 보였다.
‘됐다. 찾았다. 이쪽이 탈출구다.’
나는 별다른 의심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그 순간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나를 따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먼저 문을 열고 앞으로 걸어가니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라왔다. 속으로 조금 신기했다.
‘오, 내가 먼저 가니까 진짜 다들 따라오네.’
잠깐이지만 정말 리더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어둠 속에서 내가 먼저 길을 발견했고, 사람들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거의 ‘나를 따르라’였다. 그런데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뒤쪽에서 한마디가 들려왔다.
“그쪽 아니에요!”
진행요원이었다.
그런데 이 길이 아니었다
순간 당황했다. 내가 자신 있게 열었던 문은 탈출구가 아니었다. 결국 나를 따라왔던 사람들과 함께 다시 뒤로 돌아가야 했다. ‘나를 따르라!’ 하고 앞장섰는데 정작 내가 찾은 길이 아니었던 셈이다. 조금 전까지 자신 있게 걸어가던 나는 방향을 바꾸어 다시 사람들과 길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우리는 다시 길을 찾았고 좀비를 피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재미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길을 찾고, 좀비를 피해 움직였던 순간들이 생각보다 스릴 있었다. 나름의 희열도 느꼈다. 그런데 체험을 마치고 가족에게 돌아가는 길에 조금 전의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내가 문을 열고 먼저 나아가자 사람들이 따라왔던 모습이었다.
왜 사람들은 나를 따라왔을까
그들은 내가 찾은 길이 맞는지 확인하고 따라온 것이 아니었다. 나도 그 길이 맞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 않았다. 그저 내가 먼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그 길이 맞는 것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저 사람이 먼저 가니까 저쪽인가 보다.’
그 순간 한 달 전 블로그에 게시했던 글이 떠올랐다. ‘[문득] 매미들도 대장이 있을까?’ 한 마리의 매미가 먼저 울기 시작하자 주변의 매미들이 함께 울기 시작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리더와 영향력에 대해 생각했던 글이었다. 그때는 바라보는 입장이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내가 직접 앞장서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실제로 나를 따라왔다. 문제는 내가 틀린 길로 갔다는 것이다. 진행요원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나는 얼마나 더 자신 있게 잘못된 방향으로 걸어갔을까. 생각하니 조금 우습기도 했지만, 동시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확신에 찬 사람이 항상 정답을 아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살아가면서도 비슷한 일이 있다. 누군가 아주 자신 있게 이야기하면 그것이 맞는 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많은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 나 역시 그 길이 맞다고 생각하고 따라갈 때도 있다. 먼저 시작한 사람, 경험이 많아 보이는 사람,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사람. 그들의 말을 참고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올바른 방향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날의 나처럼 말이다. 나는 문을 발견했다. 먼저 열었다. 망설이지 않고 걸었다. 그러나 틀렸다. 그래서 누군가를 따라갈 때에도 나의 판단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이 가니까 나도 가야지.’
그렇게 무작정 따라가기보다 내가 향하는 곳이 맞는지 한 번쯤 스스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의 선택은 참고할 수 있지만 결국 내 발로 걷는 길에 대한 판단까지 모두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앞에 서는 사람의 책임은 조금 더 무겁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이끄는 사람이 된다면 책임은 더 커진다. 그날 나는 누구에게도 따라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먼저 걸었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따라왔다. 그 장면이 오래 남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생각보다 많은 순간에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 직장에서도 그럴 수 있다. 가정에서도 그렇다.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누군가와 함께 방향을 정해야 하는 순간도 찾아올 수 있다. 특히 내가 먼저 경험했거나 조금 더 알고 있다는 이유로 앞에 서게 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때는 단순히 자신 있게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내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 어디인지 살펴야 한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확인이 필요한 것은 다시 확인할 수도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내딛는 한 걸음을 보고 누군가 함께 움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틀린 문을 열었다면 다시 돌아오면 된다
그렇다고 살아가면서 언제나 올바른 길만 선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신중하게 생각해도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 맞는 길이라고 확신했는데 지나고 보니 틀린 길일 수도 있다. 그날의 나처럼 엉뚱한 문을 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계속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돌아갈 것인가. ‘내가 먼저 왔으니 이 길이 맞을 거야.’ 그렇게 우기며 계속 걸어간다면 더 멀리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틀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멈추고 다시 돌아가면 된다. 때로는 앞장서는 용기보다 돌아서는 용기가 더 필요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앞장설 때는 책임 있게 방향을 살피고,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괜한 자존심을 세우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사람.
따라갈 때도, 앞장설 때도 방향을 생각하기
나는 누군가를 따라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먼저 경험한 사람에게 배우고, 잘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며 같은 길을 걸어갈 수도 있다. 그때는 무작정 따라가기보다 한 번쯤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이 방향이 나에게도 맞는가.’
반대로 내가 앞에 서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는 아빠로서 아이가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게 된다면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때는 또 다른 질문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누구를 따라가는지도 중요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그날 어둠 속에서 문 하나를 열었던 짧은 경험이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하게 만들었다. 따르는 사람의 판단. 그리고 앞장서는 사람의 책임.
함께 생각해볼 질문
나는 누군가가 자신 있게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선택을 따라간 적은 없는가.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라는 이유로 내 판단 없이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먼저 움직였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지나친 확신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은가.
잘못된 방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멈추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가.
결국 중요한 것은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방향이다
에버랜드에서 좀비를 피해 탈출하려다 엉뚱한 문을 열었던 짧은 경험이 또 하나의 질문을 남겼다. 그날 나는 앞장섰다. 문을 발견했고, 자신 있게 열었고, 망설임 없이 걸어갔다. 그러자 사람들이 따라왔다. 잠깐이지만 기분도 좋았다. ‘오, 다들 나를 따라오네.’ 그런데 틀린 길이었다. 생각해보면 조금 우스운 장면이다. 하지만 그 짧은 경험 속에는 내가 살아가면서 기억하고 싶은 모습도 담겨 있었다. 앞에 선 사람이 항상 정답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따라간다고 해서 그 방향이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따라가는 사람에게도 판단이 필요하고, 앞장서는 사람에게는 조금 더 큰 책임이 필요하다. 그리고 누구든 틀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잘못된 방향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누구를 따라가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앞서 걷고 있다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앞으로도 살아가며 가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싶다. 다음에 또 이런 미션에 참여한다면 아마 나는 다시 앞장설 것 같다. 다만 이번에는 문을 열기 전에 한 번쯤 더 확인해봐야겠다.
“여기 맞는 거죠?”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