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는 이상징후 찾는 보조수단…현장 신고와 전문가 검증 필수
- 한국형 PPX와 7-1-7 아직 구축·협력 단계…가동 일정과 성과 공개 필요
새로운 감염병이 발생하면 시민에게 중요한 것은 복잡한 기술의 이름이 아니다. 이상징후를 얼마나 빨리 찾아내고, 보건당국이 언제 국민에게 알리며, 검사와 역학조사·환자관리를 언제 시작하느냐가 핵심이다.
질병관리청은 차기 팬데믹에 대비해 감염병혁신연합(CEPI)과 ‘한국형 팬데믹 대비 엔진(PPX)’ 구축 및 글로벌 연계 방안을 논의했다. 글로벌 공중보건 비영리기관인 리졸브 투 세이브 라이브스(RTSL)와는 감염병의 탐지·보고·초기 대응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7-1-7 접근법’과 감시·데이터 활용 경험을 공유했다.
PPX는 인공지능(AI)과 데이터를 활용해 감염병 감시부터 백신 개발까지 연결하려는 플랫폼이다. 7-1-7은 감염병 발생 이후 각 단계의 대응시간을 측정하는 기준이다.
두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면 새 감염병의 이상징후를 더 일찍 발견하고, 검사와 역학조사를 신속하게 시작하며, 확인된 병원체 정보를 백신 개발로 연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한국형 PPX와 7-1-7이 국내에서 완성돼 전국적으로 가동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현재는 구축과 국제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단계다.

‘7-1-7’, 감염병 대응시간을 숫자로 확인한다
7-1-7은 감염병 유행을 발견하고 대응하는 시간을 세 단계로 나눈 목표다.
▲ 감염병 발생 후 7일 이내 탐지
지역사회에서 평소와 다른 환자 증가나 집단발생이 시작되면 7일 안에 감염병 유행 가능성을 알아차리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 탐지 후 하루 이내 보고
의료기관이나 검사기관, 지방정부가 이상징후를 확인하면 하루 안에 담당 보건당국에 알리는 것이 두 번째 목표다.
▲ 보고 후 7일 이내 초기 대응
보건당국에 보고된 뒤 7일 안에 역학조사와 검사, 위험평가, 환자관리, 접촉자 확인 등 필요한 초기 조치를 완료하는 것이 세 번째 목표다.
모든 감염병 유행을 발생 후 15일 안에 종식한다는 뜻은 아니다. 병원체를 완전히 규명하거나 백신 개발을 끝내는 기간도 아니다.
발생부터 탐지, 보고, 초기 대응까지 각각 얼마나 걸렸는지 측정하고 대응이 늦어진 지점을 찾는 기준이다. 의료기관의 신고가 늦었는지, 검체 운송과 검사에 시간이 걸렸는지, 현장 인력 투입이 지연됐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감염병 대응이 빨랐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감염병 대응 속도는 “신속하게 조치했다”는 발표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실제로 각 단계에 며칠이 걸렸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지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 환자가 증가했다고 가정해 보자. 첫 환자가 발생한 뒤 집단발생 가능성을 확인하는 데 10일이 걸렸다면 첫 번째 7일 목표를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이상징후를 확인하고도 담당 보건당국에 알리는 데 사흘이 걸렸다면 하루 이내 보고 목표를 넘긴 것이다. 보고 후 검사와 역학조사, 환자관리 등 초기 대응을 마치는 데 9일이 걸렸다면 마지막 7일 목표도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목표를 지키지 못한 기관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는 것이다. 어디에서 시간이 지연됐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찾아 다음 유행에 반영하는 것이 7-1-7의 목적이다.
해외 분석에서도 초기 대응이 가장 어려웠다
7-1-7을 다섯 국가의 공중보건 사건 41건에 적용한 연구에서는 22건인 54%가 7일 이내 탐지 목표를 충족했다. 탐지 후 하루 이내 보고한 사례는 29건인 71%, 보고 후 7일 이내 초기 대응을 완료한 사례는 20건인 49%였다.
세 가지 목표를 모두 충족한 사례는 11건으로 전체의 27%였다. 이상징후를 찾아 보고하는 것보다 검사와 인력, 방역조치를 현장에 실제로 투입하는 초기 대응 단계가 더 어려웠다는 의미다.
이 수치는 우리나라의 대응 성과가 아니다. 여러 국가의 사례를 분석한 국제 연구 결과다. 국내 대응 수준을 평가하려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감염병 사례를 같은 기준으로 측정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7-1-7을 감염병 발생 초기 대응을 점검하는 ‘조기대응검토’ 지침에 활용하고 있다. WHO의 2025∼2028년 업무계획과 국가 보건비상 경보·대응체계에도 이 목표가 반영돼 있다.
PPX는 감시부터 백신 개발까지 잇는 플랫폼
PPX는 ‘질병 X를 위한 팬데믹 대비 엔진(Pandemic Preparedness Engine for Disease X)’을 뜻한다.
질병 X는 현재 유행하는 특정 감염병의 이름이 아니다. 앞으로 심각한 국제적 유행을 일으킬 수 있지만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원체와 질병을 가정한 WHO의 대비 개념이다.
새로운 병원체가 나타나면 이름과 전파 경로, 위험도부터 파악해야 한다. 진단법과 백신, 치료제도 준비돼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PPX는 이때 필요한 감염병 모니터링과 병원체 발견, 백신 후보 설계, 비임상·임상시험, 규제기관 제출자료 준비까지 하나의 데이터 흐름으로 연결하려는 AI 기반 플랫폼이다.
쉽게 말하면 감염병 감시기관과 연구소, 병원, 백신 개발기업, 규제기관이 따로 관리하던 정보를 연결하는 ‘디지털 연구개발 지원체계’라고 볼 수 있다.
AI는 이상징후를 찾고 연구시간 줄이는 보조수단
감염병 대응 과정에서는 환자 발생과 검사 결과, 병원체 유전체, 하수 감시, 해외 유행정보 등 방대한 자료가 쌓인다. AI는 이런 자료에서 평소와 다른 변화를 찾아 사람이 우선 확인해야 할 신호를 골라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새로운 병원체가 확인되면 기존 바이러스의 유전정보와 비교해 위험도를 평가하고, 백신 표적으로 삼을 후보를 좁히는 작업도 지원할 수 있다. 축적된 연구자료를 분석해 비임상·임상시험 설계에 필요한 정보를 정리하는 데도 활용 가능하다.
CEPI는 감염병 감시정보와 유전체, 역학모형, 백신 설계, 비임상·임상·안전성 자료 등을 연결하는 PPX를 개발하고 있다. CEPI는 PPX가 완전히 가동되면 새로운 병원체의 위험성을 평가하고 백신 후보 설계와 임상시험 준비 속도를 높이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질병관리청은 CEPI와 한국형 PPX 구축 및 글로벌 플랫폼과의 연계 가능성을 논의했다. 다만 이번 발표에는 한국형 PPX의 구체적인 구축 일정과 예산, 운영기관, 참여기관별 역할은 포함되지 않았다.
AI가 다음 팬데믹을 미리 맞히는 것은 아냐
PPX를 AI가 다음 팬데믹의 발생 시점과 장소를 정확히 예측하는 시스템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AI는 입력된 자료를 분석하는 도구다. 의료기관의 신고가 늦거나 검사 표본이 부족하면 분석할 정보 자체가 부실해진다. 국가와 기관마다 데이터 형식이 다르고 필요한 정보를 제때 공유하지 않으면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하기도 어렵다.
AI가 제시한 병원체 위험도와 백신 후보는 연구진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를 확인하는 비임상·임상시험이나 규제기관의 전문적인 판단을 AI가 대신하는 것도 아니다.
개인의 건강정보와 병원체 유전정보를 다루는 만큼 데이터 보안과 접근 권한, 오류 검증, 생물보안 기준도 필요하다. CEPI 역시 PPX 개발 초기부터 AI 기반 생물학적 설계 기술이 오용되지 않도록 생물보안 대책을 함께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PPX의 성과는 AI 기술 자체보다 현장정보를 얼마나 정확하고 신속하게 모으고, 검증된 결과를 방역과 연구개발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국내에서는 하수·표본·AI 모기 감시 가동
우리나라에는 법정감염병 신고와 표본감시, 병원체 검사, 해외 발생정보 수집 등 여러 감시체계가 운영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의료기관에서 확인된 환자 수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퍼지는 병원체 변화를 살피는 하수 기반 감시도 확대됐다. 질병관리청과 전국 17개 시·도 보건환경연구원이 지역별 하수처리장 시료에서 감염성 병원체를 감시하고 있다.
2026년에는 AI를 활용해 모기의 종류와 개체 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감시장비가 6개 시·도 보건환경연구원과 철새도래지 등 7개 지점에 도입됐다.
이는 모기가 옮기는 감염병의 위험을 더 빠르게 파악하기 위한 감시체계다. 사람에게 발생하는 모든 신종감염병을 AI가 자동으로 찾아내는 시스템과는 구분해야 한다.
감염병 빅데이터 플랫폼과 방역통합정보시스템을 통해 여러 감염병 자료를 연계·분석하는 기반도 마련되고 있다. 정부는 AI 모형을 활용해 감염병 유행 규모 예측을 정교화하는 방안도 추진해 왔다.
병원체 발견 뒤 백신까지 연결하는 단계가 과제
정부는 2023년 수립한 ‘신종감염병 대유행 대비 중장기계획’을 통해 새로운 감염병이 유행하면 100일 또는 200일 안에 백신과 치료제 등 주요 대응수단을 확보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국가첨단백신개발센터는 우선 대응이 필요한 감염병의 백신 후보물질과 핵심 기술을 준비하고, 위기 때 민간기업의 비임상시험과 임상개발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정부가 정한 백신 개발 우선순위 감염병을 대상으로 후보물질과 플랫폼 기술을 확보하는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감염병이 발생한 뒤 처음부터 연구하는 대신, 가능성이 큰 바이러스 계열을 미리 연구해 개발기간을 줄이려는 접근이다.
그러나 100일·200일 목표가 해당 기간 안에 국민 접종까지 완료한다는 뜻은 아니다. 병원체 특성과 기술 준비 수준, 임상시험 대상자 확보, 생산시설과 원부자재, 안전성·효과 검증, 허가 절차에 따라 실제 공급 시점은 달라질 수 있다.
PPX가 구축되면 감시단계에서 확인한 병원체 정보를 백신 후보 설계와 비임상·임상시험, 생산·허가 준비로 빠르게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과정의 단절을 실제로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가 핵심 평가 대상이다.
시스템 구축보다 실제 대응시간 확인해야
PPX와 7-1-7의 성과는 시스템을 만들거나 국제협력을 논의했다는 사실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실제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이상징후를 얼마나 빨리 발견하고, 언제 보건당국에 보고해 초기 대응을 시작했는지가 중요하다.
7-1-7을 국내 대응체계에 적용한다면 감염병 발생부터 탐지까지 걸린 시간, 탐지 후 보고까지 걸린 시간, 보고 후 검사와 역학조사·환자관리 등 초기 대응을 완료하기까지 걸린 시간을 각각 측정해야 한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에는 의료기관의 신고가 늦었는지, 검사에 시간이 걸렸는지, 대응인력이 부족했는지 지연 원인을 확인할 수 있다. 지역별 결과를 비교하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검사·인력·의료대응 격차도 파악할 수 있다.
PPX 역시 AI 플랫폼 구축 자체가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AI가 찾아낸 이상징후를 전문가가 검증하고, 확인된 병원체 정보가 백신 후보 설계와 임상시험, 생산·허가 준비로 실제 연결되는지 살펴야 한다.
이번 질병관리청 발표에는 한국형 PPX의 구체적인 가동 일정과 국내 7-1-7 적용 결과가 포함되지 않았다. 7-1-7이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전국 성과지표로 도입됐다는 내용도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단계는 ‘AI 기반 팬데믹 대응체계가 완성됐다’가 아니라, 기존의 감시·데이터·백신 개발 기반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방안을 구체화하는 단계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시민이 체감할 변화는 더 빠른 경보와 의료대응
PPX와 7-1-7이 제대로 작동하면 시민이 AI 플랫폼을 직접 이용하지 않더라도 감염병 경보와 검사, 접촉자 안내, 의료기관 대응을 더 빨리 받을 가능성이 있다.
특정 지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호흡기 환자가 갑자기 증가했을 때 이상징후를 조기에 발견하면 의료기관에 필요한 검사와 환자관리 지침을 더 빨리 전달할 수 있다.
병원체 정보가 연구기관과 백신 개발기관에 즉시 공유되면 대응수단 개발을 앞당기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신종감염병 초기에는 정보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빠른 대응만큼 정부가 무엇을 확인했고 무엇을 아직 모르는지, AI 분석 결과가 어느 정도 검증됐는지를 투명하게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새로운 감염병 대응체계를 평가할 때 중요한 것은 시스템의 명칭이 아니라 실제 대응 속도다.
감염병 발생 후 며칠 만에 위험을 찾아냈는지, 언제 검사와 역학조사를 시작했는지, 지역에 따라 대응시간에 차이가 있었는지가 실질적인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