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부총리 겸 외무장관 안토니오 타야니가 여성의 옷차림을 신뢰와 모성의 잣대로 삼는 발언을 해 정치권이 들끓고 있다. 야당 여성 상원의원 11명은 짧은 치마를 입고 의사당에 들어서는 방식으로 항의했다. 전직 총리부터 지방의원까지 AI 합성 사진으로 풍자에 가담했다. 타야니 장관은 결국 사과했지만, '치마 길이 논쟁'은 2026년 유럽 정치가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되묻는 질문으로 번지고 있다.
옷차림을 표심으로 끌고 간 한마디
발단은 지난 18일 한 공개 행사다.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Forza Italia)를 이끄는 타야니는 이 자리에서 화려한 여성은 과거가 복잡하고 배우자를 배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치마가 길고 수수한 여성과 결혼하는 편이 낫고, 그런 여성이 더 좋은 어머니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논리를 선거로까지 끌고 갔다. 유권자에게 '긴 치마의 진지한 여성'이나 바람둥이가 아닌 남성을 고르라며, 중도우파가 바로 그런 믿을 만한 선택이라고 했다.
무릎 위로 올라간 항의
발언 영상이 퍼지자 반발이 곧바로 쏟아졌다. 여성폭력 대응 단체 '텔레포노 로사'는 여성의 외모와 복장에 기준을 강요하는 사고방식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22일에는 상원 의사당 팔라초 마다마에 민주당·이탈리아비바·녹색좌파연합·자치그룹 소속 여성 상원의원 11명이 짧은 치마 차림으로 모였다. 시위를 제안한 이탈리아비바 원내대표 라파엘라 파이타는 이를 여성이 원하는 대로 입을 자유를 선언하는 몸짓이라고 설명했다.
풍자와 막말 사이
녹색좌파연합 대변인 피오렐라 차바타는 살아 있는 여성의 치마 길이를 재기 전에 살해된 여성의 수부터 세라고 꼬집었다. 오성운동 하원의원인 키아라 아펜디노 전 토리노 시장은 짧은 치마 사진을 올리며 "나는 믿을 수 없는 여자, 나쁜 엄마인가"라고 되물었다. 마테오 렌치 전 총리는 치마를 입은 타야니의 AI 합성 이미지를 게시했다. 피렌체 시의원 안드레아 출리도 AI로 치마를 입힌 자기 사진을 올려 시위에 힘을 보탰다. 불길을 키운 쪽은 극우 신당 '국가미래(Futuro Nazionale)'의 로베르토 반나치 대표였다. 그는 22일 방송에서 긴 치마와 짧은 치마 가운데 '치마 없는 여성'을 고르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알레시아 모라니 의원은 이 "동굴인들"에게 신물이 난다고 맞받았다.
치마보다 긴 그림자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에 머물던 타야니는 21일 상처받은 이가 있다면 사과한다고 밝혔다. 다만 여성을 해칠 뜻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평생 없었다고 덧붙였다. 야권은 이를 단순한 말실수로 덮을 일이 아니라고 본다. 한 사람의 가치를 치마 길이로 가늠하는 시선이 유럽 정치의 한복판에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번 소동이 남긴 가장 불편한 대목이다. 치마 길이는 바뀔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치마를 재려는 잣대는 언제쯤 내려놓게 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