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상 늘어도 의료진·장비 없으면 가동 못 해…민간병원 참여체계도 과제
- 고령자·요양시설 보호부터 환자 이송까지 위기 전에 작동 여부 확인해야
다음 팬데믹의 발생 시점과 원인 병원체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언제 올지 모른다는 이유로 대비를 늦출 수는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바이러스의 특성상 미래의 인플루엔자 팬데믹은 불가피한 위험이라고 밝히고 있다.
코로나19와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병원체도 다음 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감염병 감시·진단·병상·방역물자 비축·백신 개발체계는 확대·정비되고 있다.
하지만 감염병전문병원의 지정과 병상 확충계획만으로 대비가 끝났다고 볼 수는 없다.
병상을 운영할 의료진과 장비, 민간병원의 참여, 환자 이송과 취약계층 보호체계가 함께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팬데믹 대비는 이제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내일 위기가 시작돼도 실제로 가동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발생 시점 몰라도 다음 팬데믹은 대비 대상
WHO는 새로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출현해 세계 인구 대부분이 면역을 갖고 있지 않을 경우 팬데믹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특성상 미래의 새로운 팬데믹은 불가피하며, 대비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이다.
이는 가까운 시일 안에 팬데믹이 발생한다는 예고가 아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바이러스로 시작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WHO는 인플루엔자뿐 아니라 코로나바이러스 등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가 일으킬 팬데믹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2차 팬데믹’보다는 원인 병원체를 특정하지 않은 ‘다음 팬데믹’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코로나19의 대규모 재유행뿐 아니라 새로운 인플루엔자나 코로나바이러스, 미지의 병원체가 일으킬 국제적인 확산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질병 X’는 미지의 병원체에 대비하기 위한 개념
WHO가 말하는 ‘질병 X’는 실제로 확인된 특정 질병의 명칭이 아니다.
현재 알려지지 않은 병원체가 앞으로 심각한 국제적 유행을 일으킬 가능성을 가리키는 대비 개념이다.
특정 질병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병원체가 나타나더라도 신속하게 진단법과 백신·치료제 개발에 착수할 수 있도록 공통 연구·대응 기반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WHO는 2024년 50여 개국 200명 이상의 연구자와 함께 28개 바이러스군과 하나의 세균군에 속한 1652개 병원체를 검토했다.
다음 팬데믹의 원인을 하나의 병원체로 좁히기보다 다양한 병원체군에 활용할 수 있는 연구·대응체계를 갖추려는 접근이다.
조류인플루엔자 현재 위험도는 ‘낮음’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A(H5N1)는 팬데믹 가능성과 관련해 자주 거론된다.
야생조류와 가금류뿐 아니라 일부 포유류와 사람에서도 감염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엔식량농업기구(FAO)·WHO·세계동물보건기구(WOAH)가 2026년 5월 발표한 공동평가에서는 현재 유행 중인 A(H5) 바이러스의 세계 공중보건 위험을 ‘낮음’으로 평가했다.
감염 동물에 직업적으로 또는 빈번하게 노출되는 사람의 감염 위험은 지역의 유행 상황과 보호조치에 따라 ‘낮음에서 중간’ 수준으로 봤다.
공동평가의 기준 시점인 2026년 3월 1일까지 지속적인 사람 간 전파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유행 바이러스가 호흡기 비말을 통해 사람 사이에서 효율적으로 퍼지려면 추가적인 유전적 변화가 필요한 것으로 평가됐다.
현재 위험도가 낮다는 평가가 앞으로도 계속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계속 변할 수 있어 감시와 위험평가를 이어가야 한다.
반대로 동물 감염이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팬데믹이 임박했다고 해석해서도 안 된다.
환자 수 넘어 병원체·하수까지 감시
정부는 2023년 ‘신종감염병 대유행 대비 중장기계획’을 마련하고 2027년까지 감시·예방, 대비·대응, 회복, 연구개발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감염병 감시는 의료기관에서 확인된 환자 수에만 의존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의료기관 표본감시와 병원체 분석에 더해 하수처리장 시료를 검사해 지역사회의 유행 변화를 살피는 체계가 운영되고 있다.
하수 감시는 증상이 없거나 병원을 찾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한 지역사회의 감염 추세를 간접적으로 파악하는 수단이다.
다만 하수에서 병원체가 검출됐다는 사실만으로 환자 수나 개인의 감염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의료기관 진료자료와 병원체 분석, 중증환자 발생 상황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감시망의 효과는 기관 수뿐 아니라 이상신호 발견 이후의 대응 속도로도 평가해야 한다.
위험평가와 현장조사, 의료기관 경보, 검사법 배포까지 신속하게 연결돼야 조기감시가 실제 방역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감염병전문병원 5곳 지정…전국 가동은 아직
질병관리청은 수도권·충청권·호남권·경남권·경북권 등 5개 권역에 감염병전문병원을 지정했다.
각 병원에는 일반 음압병상 30개와 중환자 음압병상 6개, 음압수술실 2개를 포함한 감염병동이 구축된다.
환자 치료와 검사뿐 아니라 권역 내 병상 배정과 전원 조정, 공공·민간 의료기관 종사자의 교육·훈련도 맡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5곳 지정이 전국 권역체계의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질병관리청이 2026년 9월 발표한 2027년도 예산안에는 국내 첫 권역 감염병전문병원인 호남권 병원을 2027년 상반기에 개원하기 위한 예산이 반영됐다.
나머지 권역 병원도 구축 단계에 있어 현재 전국 5곳이 모두 가동되고 있다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
국가 감염병 병상 1208개 확대 추진
질병관리청의 2027년도 예산안에는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과 긴급치료병상을 ‘국가 감염병 병상’으로 통합·정비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부는 병상 유지·관리 지원 대상을 706병상에서 1208병상으로 확대하고, 해마다 2곳의 노후 병상시설을 개선할 계획이다.
신종감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병상을 긴급하게 확보하기보다 평상시부터 관리해 신속하게 가동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1208병상은 현재 가동 중인 병상 수가 아니다.
국회에 제출된 2027년도 예산안에 담긴 지원 대상 확대 계획이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예산과 사업 내용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병상 확대 효과, 의료인력과 장비 확보가 좌우
병상 지원 대상이 늘어난다고 실제 진료역량이 같은 비율로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
감염병과 중환자를 진료할 의사·간호인력, 인공호흡기와 보호구 등 필수 장비가 함께 확보돼야 병상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상 확대정책의 실효성을 판단하려면 전체 병상 수뿐 아니라 위기 발생 후 가동에 필요한 시간과 의료인력 배치, 중증환자 수용능력, 권역 간 환자 이송체계를 함께 살펴야 한다.
감염병 병상을 늘리는 과정에서 응급·수술·암·심뇌혈관질환·만성질환 등 일반진료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결국 1208병상이라는 확대 계획이 실제 대응력으로 이어지는지는 시설보다 이를 운영할 인력과 장비, 병상 배정·이송체계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민간병원 참여방식도 사전에 정해야
전국적인 대유행에서는 감염병전문병원과 공공병원만으로 모든 환자를 치료하기 어렵다.
코로나19 당시처럼 민간병원의 병상과 의료인력이 다시 필요할 가능성이 크다.
유행이 시작된 뒤 민간병원에 병상 제공을 요청하고 보상기준을 협의하면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
위기 단계에 따라 민간 의료기관이 맡을 역할과 손실보상 원칙, 의료진 보호, 환자 전원 절차를 평상시에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의료인력 운용계획도 병상계획과 함께 마련돼야 한다. 감염병 진료 경험이 있는 의료진을 어느 지역에서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 권역 간 지원과 장기간 교대근무는 어떻게 운영할지를 모의훈련에서 확인해야 한다.
요양병원 감시 확대…현장 지원까지 연결해야
코로나19 유행에서는 고령자와 기저질환자, 요양병원·요양시설 입소자에게 중증과 사망 피해가 집중됐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시설은 감염이 빠르게 확산할 수 있지만 의료인력과 격리공간은 부족할 수 있다.
질병관리청은 2027년도 예산안에서 급성호흡기감염증 병원체 감시 대상에 요양병원을 포함하고, 대상기관을 100곳에서 130곳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제시했다. 취약계층의 감염 동향을 더 일찍 확인하려는 조치다.
그러나 조기감시만으로 시설 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행이 확인됐을 때 투입할 검사·진료 지원팀과 치료제 공급, 중증환자 이송, 대체 돌봄인력 확보체계까지 이어져야 한다.
공동격리는 병원체의 전파력과 중증도, 시설의 의료대응 능력을 고려해 적용해야 한다.
입소자에게 필요한 진료와 돌봄이 중단되거나 이동과 면회가 필요 이상으로 제한되지 않도록 구체적인 기준도 필요하다.
WHO, 대응역량 인정하면서도 추가 개선 권고
WHO는 2025년 8월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국제보건규칙 핵심역량 합동외부평가를 진행하고 2026년 3월 보고서를 공개했다.
WHO는 감염병 예방·탐지·대응 등 19개 기술영역을 평가한 결과 대부분 영역에서 지속 가능한 역량을 보였다고 밝혔다.
동시에 현재 역량을 유지하고 이행 과정의 병목을 줄이기 위한 6개 범분야 권고를 제시했다.
대응역량이 국제적으로 일정 수준 인정받았지만, 다음 팬데믹에 대한 준비가 완료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확보한 시설과 인력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투자와 부처 간 협력, 현장 훈련이 뒤따라야 한다.
감사원 지적 이후 제도개선 추진…이행 결과가 관건
감사원은 2026년 2월 코로나19 대응실태 성과감사를 통해 기관 간 협업과 위기소통, 검역·역학조사 정보 연계, 감염병전문병원 구축, 거리두기와 공동격리 기준, 백신 안전관리 등의 보완 필요성을 지적했다.
정부는 대응체계·방역·의료·사회대응·백신 등 5개 부문의 지적사항을 수용해 ‘감염병위기관리체계 고도화 계획’ 등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방역통합정보시스템 개선과 역학조사관 확보, 감염병전문병원 구축, 공중보건·사회대응 기준 정비 등도 개선과제로 제시했다.
향후 평가의 초점은 개선과제가 계획대로 이행됐는지, 실제 훈련에서 작동했는지에 맞춰질 필요가 있다.
권역별 훈련에서 감염병 확인과 검사법 배포, 병상 배정, 환자 이송까지 걸린 시간을 확인하면 대응체계의 병목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백신·치료제·보호구도 비축 수량만으로 충분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유효기간과 교체주기, 유행 규모에 따른 사용 가능 기간, 국내외 공급망이 중단됐을 때의 대체조달 방안까지 함께 관리해야 한다.
다음 팬데믹 가능성을 과장해 공포를 키워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코로나19의 비상상황이 끝났다는 이유로 대비까지 늦춰서는 안 된다.
팬데믹은 발생 시점과 규모를 미리 알려주고 찾아오는 재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염병 대응체계는 코로나19 이후 분명 확대됐다.
이제 시설과 계획의 숫자를 넘어 첫 이상신호가 포착된 순간부터 검사, 병상 배정, 치료, 환자 이송, 취약계층 돌봄까지 얼마나 빠르게 연결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다음 팬데믹이 시작된 뒤 병상과 인력의 빈틈을 발견한다면 이미 늦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