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받으며 떠난다는 것은 마지막 순간에 만들어지는 일이 아닐 것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쌓아온 수많은 하루가 모여 마지막의 박수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야구다. 직접 공을 던지고 배트를 휘두르는 것은 아니지만 TV 중계를 챙겨보고, 시간이 맞으면 야구장을 찾아 직접 경기를 관람하는 것을 좋아한다. 야구를 좋아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11년이 되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창단 후 1년만에 1부 리그에 올라오면서 자연스럽게 야구를 보기 시작했고, 어느새 야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가 되었다. 야구를 좋아하다 보면 참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극적인 역전승을 하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만큼 짜릿하다. 좋아하는 선수가 결정적인 순간에 안타를 치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반대로 어이없는 실책이 나오거나 다 잡았다고 생각했던 경기를 내주면 갑자기 짜증이 나기도 한다. 아마 야구팬이라면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일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야구를 보며 지난 일요일에는 조금 특별한 장면을 만났다. 황재균 선수의 은퇴식이었다.
한 선수의 마지막을 박수로 배웅한다는 것
구단에서는 황재균 선수가 걸어온 시간을 돌아볼 수 있도록 은퇴식을 준비했다. 가족과 동료, 선후배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그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한 명의 야구선수가 오랜 시간 머물렀던 그라운드를 떠나는 순간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이상하게 승리했을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이 들었다. 야구장에서 보내는 박수는 대부분 현재를 향한다. 좋은 수비를 했을 때, 안타를 쳤을 때, 홈런을 날렸을 때, 경기에서 승리했을 때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은퇴식의 박수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한 번의 플레이가 아니라 한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향한 박수였다. ‘그동안 수고했습니다.’ 말로 하지 않아도 그 안에는 그런 마음이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선수에게 은퇴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우리 팀에서 은퇴식을 치른 선수가 황재균 선수 한 명뿐인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여러 선수가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 선수들을 생각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떠오른다. 팀을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만큼의 발자국을 남겼다는 것이다. 내가 응원하는 팀은 다른 구단에 비해 역사가 길지 않다. 그럼에도 그 시간 동안 팀을 위해 뛰고 팬들에게 기억될 만한 순간을 만들어낸 선수들이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시선을 조금 더 넓혀보았다. 우리 팀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전체를 생각하면 매년 얼마나 많은 선수가 프로의 문을 두드릴까. 누군가는 큰 기대를 받으며 시작하고, 누군가는 오랫동안 자신의 기회를 기다릴 것이다. 어렵게 무대에 올라서더라도 그곳에서 계속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모든 선수에게 그라운드를 떠나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 마지막 순간에 모두가 많은 사람의 축하와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 선수의 은퇴식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박수는 마지막 날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박수를 받으며 떠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했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오랜 시간 버텨왔고,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었으며, 수많은 경기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냈고, 그 과정에서 팀과 팬들에게 기억될 무언가를 남겼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보면 마지막 날 갑자기 박수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던 날도 있었을 것이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준비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 하루하루가 모여 한 선수의 시간이 되었고, 마지막 날 사람들이 보내는 박수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은퇴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화려한 행사의 모습보다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쌓였을 시간이었다.
인정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
야구선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렵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만 끝까지 이어가는 사람은 줄어든다. 오래한다고 모두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시간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계속 배우고,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조금씩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질문 하나가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내가 걸어가는 분야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 야구선수의 은퇴식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 삶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내 자리에서 어떤 발자국을 남기고 있을까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매일의 일상을 기록하고, 칼럼을 쓰고, 책을 읽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조금씩 준비하고 있다. 아직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내가 쓰는 글이 앞으로 어디까지 이어질지도 알 수 없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일들이 언젠가 내가 꿈꾸는 모습으로 완성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봤을 때 적어도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꼭 유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선택한 분야에서 꾸준히 노력하고, 조금씩 실력을 쌓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 하나라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몇 사람에게라도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언젠가 나 역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것이 직장일 수도 있고, 글쓰기와 관련된 일일 수도 있고, 앞으로 새롭게 시작할 또 다른 일일 수도 있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듯 마지막도 있을 것이다. 그때 많은 사람에게 박수를 받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다만 몇 사람에게라도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참 감사할 것 같다. ‘그동안 정말 수고했습니다. 당신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 말을 듣기 위해서는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잘 살아야 할 것이다. 떠나는 순간의 모습은 그동안 어떤 모습으로 머물렀는지가 만들어낼 테니까.
박수칠 때 떠난다는 것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보통은 가장 좋은 순간에 미련 없이 떠나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황재균 선수의 은퇴식을 바라보며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보았다. 중요한 것은 언제 떠나느냐만이 아닐 수 있다. 떠날 때 누군가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줄 수 있도록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오늘 자신의 자리에서 어떤 자세로 일했는지, 잘되지 않는 순간에도 얼마나 다시 일어섰는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동료였는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얼마나 충실하게 해냈는지. 그 하루하루가 쌓여 마지막의 박수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마지막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쩌면 오늘을 잘 살아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도 나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기를
황재균 선수의 은퇴식을 보며 많은 사람의 박수도 인상 깊었지만 마지막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나에게도 한 장을 마무리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줄 수 있을까. ‘잘했다.’ ‘그래도 열심히 걸어왔다.’ ‘수고했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결과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꿈꾸었던 모든 것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다만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후회보다 해볼 만큼 해봤다는 마음은 남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멀리 있는 마지막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글 한 편을 쓰는 것.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것. 꿈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을 조금씩 준비하는 것.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오늘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 그 하루를 계속 쌓아가는 것이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나는 지금 내 자리에서 어떤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가.
언젠가 지금의 일을 떠날 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누군가에게 ‘당신이 있어서 좋았다’는 말을 듣기 위해 오늘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까.
마지막 순간 다른 사람의 박수보다 먼저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줄 수 있을까.
결국 마지막의 박수는 오늘 만들어진다
황재균 선수의 은퇴식을 바라보며 한 야구선수의 마지막을 넘어 한 사람의 삶을 생각해보았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것. 자신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살아남는다는 것. 그리고 떠나는 순간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다는 것.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일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경기와 수많은 계절을 지나며 쌓아온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박수받으며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잘 떠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잘 머물렀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다는 것. 누군가에게 기억될 순간을 남겼다는 것.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마지막의 박수가 되는 것이다. 황재균 선수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뛰고 있는 모든 선수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 역시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야겠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하고, 오늘 써야 할 글을 쓰고,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야겠다. 언젠가 나에게도 한 장을 마무리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다른 사람의 박수보다 먼저 내가 나 자신에게 말할 수 있도록. ‘그동안 정말 수고했다.’ 그 한마디를 부끄럽지 않게 건넬 수 있도록 오늘을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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