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칼럼] 243화 분명 나는 영어를 전공했는데?

여전히 과거의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과거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중요하다

 잘했던 과거를 자랑하는 것보다 다시 해보는 오늘을 하나씩 만들어가면서

▲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ChatGPT]

 

한때 잘했던 일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조금씩 멀어진다.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보다 지금도 그것을 이어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지난주 휴대폰을 바꿨다. 매장에서 개통과 서류 업무를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기존 휴대폰에 있던 데이터를 새 휴대폰으로 옮기기 시작했는데 예상 시간이 무려 두 시간 반이나 걸린다고 했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천천히 옮기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한 가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데이터를 옮기는 동안 휴대폰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평소라면 차 안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집으로 돌아갔을 텐데 그날은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결국 라디오를 켰다.

 

음악 대신 우연히 만난 영어 방송

저녁 시간이었고 평소 즐겨 듣는 방송이 나오는 시간도 아니었다. 라디오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귀에 꽂히는 팝송 한 곡이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손을 멈췄다. AFN(American Forces Network) 방송이었다. 팝송을 듣다 문득 생각했다. ‘오랜만에 영어 방송이나 한번 들어볼까?’ 영어 공부에서 손을 놓은 지 꽤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영어를 전공했다. 대학 시절에는 영어를 듣고, 읽고, 말하고, 쓰는 것이 일상이었다. 수업에서도 영어를 접했고,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영어를 공부했다. 당시에는 영어를 사용하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그래서인지 마음 한편에는 아주 작은 자신감이 남아 있었나 보다. ‘그래도 전공했는데.’ 어쩌면 그런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잠시 후 팝송이 끝났다. 영어로 진행되는 방송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당황했다.

 

분명 나는 영어를 전공했는데?

영어가 잘 들리지 않았다. 분명 영어라는 것은 알겠는데 문장이 귀에 들어오는 것 같다가도 금세 흘러가 버렸다. 단어 몇 개는 들렸지만 전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순간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생각했다. ‘와, 분명 나는 영어를 전공했는데…. 왜 못 알아듣지?’ 처음에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오랜 시간 공부했고 전공까지 했던 언어인데 이렇게까지 들리지 않을 수 있나 싶었다. 한때는 영어를 배우는 것이 일상이었고, 영어를 전공했다는 사실도 나를 설명하는 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영어 방송조차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나는 영어와 꽤 오랫동안 멀어져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나는 영어와 조금씩 멀어졌다.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내가 맡은 업무와 관련된 것들을 배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했다. 퇴근 후의 관심도 달라졌다. 글을 쓰기 시작했고,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났다. 일상에서 느낀 생각을 기록하고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이 점점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영어를 듣거나 말할 기회는 줄어들었다. 영어로 된 글을 읽을 일도 많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아주 오랫동안 영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히 과거의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전공했으니까 어느 정도는 하겠지.’ 하지만 사용하지 않았던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한때 매일같이 사용했던 언어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으면서 예전과 같은 모습을 기대했던 것이다.

 

언어는 사용해야 남는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한국어도 언어다. 매일 듣는다. 매일 말한다. 글을 읽고, 메시지를 보내고, 생각을 문장으로 표현한다. 그렇게 하루에도 수없이 한국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익숙함을 유지한다. 영어도 다르지 않다. 대학에서 영어를 공부할 때에도 끊임없이 배웠던 것이 있다. 언어는 계속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듣고, 말하고, 읽고, 쓰면서 계속 익혀야 한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나는 오랫동안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전공했다는 과거의 사실만 남겨두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현재는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날 영어 방송을 알아듣지 못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사용하지 않으면 익숙함은 조금씩 사라진다

영어 방송을 들으며 떠오른 생각은 영어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사용하지 않으면 익숙함은 조금씩 사라지는구나.’ 운동도 마찬가지다. 한때 아무렇지 않게 달렸던 거리도 오랫동안 달리지 않으면 다시 힘들어진다. 글쓰기도 그렇다. 꾸준히 글을 쓸 때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던 문장도 오랫동안 쓰지 않으면 다시 한 문장을 꺼내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어떤 기술도 비슷할 것이다. 예전에 잘했다는 사실이 지금의 실력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도 계속 사용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조금씩이라도 반복하고 있는가. 계속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가. 과거의 경험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것을 현재의 능력으로 이어주는 것은 결국 반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망했지만 다시 조금씩 시작해보기로 했다

처음 영어 방송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을 때는 실망했다. 하지만 그 모습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랫동안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부족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영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다. 매일 몇 시간씩 영어를 공부하겠다는 목표를 세울 생각도 없다. 지금 내게는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써야 할 글, 읽고 싶은 책들이 있다. 다만 한 가지는 해보려고 한다. 차를 이용할 때 가끔 AFN 방송을 들어보는 것이다. 잘 알아듣지 못해도 그냥 들어보는 것. 단어 하나가 들리면 그것으로 괜찮고, 짧은 문장 하나를 알아들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멀어졌던 영어와 다시 조금씩 가까워져 보는 것이다. 어쩌면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일상 속에 작은 행동 하나를 다시 넣어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중요하다

나는 분명 영어를 전공했다.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대학에서 영어를 공부했던 시간도 내 삶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 사실만으로 지금도 영어를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다른 문제다. 과거에 무엇을 전공했는지, 예전에 무엇을 잘했는지, 한때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현재의 나를 설명할 수는 없다. 결국 지금의 나는 지금 반복하고 있는 것들로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요즘의 나는 영어보다 글을 더 많이 쓴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일상에서 발견한 것을 문장으로 남긴다. 그 시간이 쌓이면서 어느새 나에게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또 다른 모습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때 가까웠던 것은 멀어질 수 있고, 새롭게 반복하는 것은 어느 순간 가까워질 수 있다. 그것이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라는 생각도 든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예전에는 익숙했지만 오랫동안 하지 않아 멀어진 것은 무엇인가.

‘예전에 잘했으니까’라는 생각만으로 지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가까워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상에서 시작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은 무엇인가.

요즘 내가 반복하는 행동들은 앞으로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는가.

 

결국 잘했던 과거보다 다시 해보는 오늘이다

그날은 휴대폰 때문에 음악을 들을 수 없어 우연히 라디오를 켰을 뿐이었다. 주파수를 돌리다 팝송 한 곡에 멈췄고, 우연히 영어 방송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모습을 다시 만났다. 영어를 전공했던 나. 한때 영어를 듣고, 읽고, 말하고, 쓰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나. 하지만 지금은 영어 방송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나. 처음에는 조금 실망했지만 이제는 그것 역시 현재의 내 모습이라고 받아들이려 한다. 사용하지 않았으니 멀어졌고, 다시 필요하다면 조금씩 가까워지면 된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얼마나 잘했느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가. 그리고 멀어졌다면 다시 해볼 마음이 있는가. 나는 분명 영어를 전공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실에만 기대지 않으려고 한다. 차를 타는 날 가끔 영어 방송을 켜고, 들리지 않아도 조금 더 들어보려고 한다. 단어 하나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언젠가 문장 하나가 들리고, 또 조금씩 익숙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잘했던 과거를 자랑하는 것보다 다시 해보는 오늘을 하나씩 만들어가면서.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성 2026.09.20 16:50 수정 2026.09.2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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