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미 나를 한 가지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을 수 있다.
회식을 하고 돌아온 저녁,
아들이 내게 묻는다.
“아빠, 오늘 글은 안 써?”
아이의 눈에는
내가 매일 글을 쓰는 사람으로
보이나 보다.
누군가의 눈에
그런 사람으로 남았다는 것.
참 감사한 일이다.
<일상의 짧은 단상>
며칠 전 회사 회식을 마치고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보다 늦은 귀가였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회식까지 마친 뒤라 그날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집에 도착해 잠시 몸을 쉬고 있는데 아들이 불쑥 물었다. “아빠, 오늘 글은 안 써?” 순간 웃음이 났다.
아이는 내가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는 아들에게 매일 글을 써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 ‘아빠는 글을 쓰는 사람이야.’그렇게 일부러 알려준 적도 없다.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왜 글을 쓰는지 자세히 설명한 것도 아니다. 그저 시간이 날 때마다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 퇴근 후에도 썼고, 주말에도 썼다. 생각나는 일이 있으면 기록했고, 하루를 보내며 마음에 남은 장면이 있으면 다시 문장으로 옮겼다. 그 모습을 아이가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아이의 눈에 아빠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기도 하고, 함께 놀아주는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어느새 그 안에 한 가지 모습이 더 들어가 있었다. ‘글을 쓰는 아빠.’ 그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사람은 말보다 반복으로 기억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로 설명한다.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운동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꿈이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른 사람이 우리를 기억할 때 떠올리는 것은 말보다 반복해서 보여준 모습일지도 모른다. 늘 책을 읽던 사람. 약속을 잘 지키던 사람. 힘들어도 다시 운동하러 나가던 사람.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던 사람. 그리고 매일 글을 쓰던 사람. 그날 아들의 말을 듣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어떤 하루를 반복하며 살아가느냐일지도 모른다고.
나조차 흔들릴 때가 있었다
나 역시 글을 쓰면서 여러 번 흔들렸다. 계속 글을 쓴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오늘 한 편을 더 쓴다고 해서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글을 한 편 썼다고 삶이 갑자기 바뀌는 것도 아니고, 몇 달을 꾸준히 썼다고 미래가 선명하게 정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때로는 내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묻게 되었다. 계속 이렇게 쓰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내가 정말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언제쯤 스스로 확신할 수 있을지 고민한 날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멈추지는 않았다. 쓰지 못한 날이 있으면 다시 썼고, 바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나 자신에게는 그저 계속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의 눈에는 이미 하나의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글은 안 써?”라는 작은 확인
“아빠, 오늘 글은 안 써?”
아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질문이었을 것이다. 평소 아빠가 하던 일을 그날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물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아빠는 원래 글 쓰는 사람이잖아.’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 계속 가도 되는지. 글을 쓰는 일이 언젠가 내가 원하는 삶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런데 정작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바라본 아이의 눈에는 이미 답 하나가 만들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아이에게 아빠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어떤 사람으로 남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아들은 앞으로 나를 어떤 아빠로 기억하게 될까. 회사에 다니던 아빠. 함께 놀아주던 아빠.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고 했던 아빠. 그리고 늘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글을 쓰던 아빠. 나는 아이에게 거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언제나 완벽하게 살아가는 아빠로 기억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해보는 사람으로는 남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말로만 꿈꾸지 않고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 잘되지 않아도 다시 시작하는 모습. 아주 작은 일이라도 오래 이어가보는 모습. 내가 아이에게 직접 가르치지 않더라도 그런 모습을 보고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어쩌면 부모가 아이에게 전하는 것 가운데 많은 부분은 말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습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꾸준함은 어느 순간 정체성이 된다
처음 글을 쓸 때부터 ‘글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거창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쓰고 싶어서 썼다. 기록하고 싶어서 남겼다. 하루에서 배운 것을 잊고 싶지 않아 글로 옮겼다. 그 행동이 하루씩 쌓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아들이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빠는 글을 쓴다.’
생각해보면 정체성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선언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의 행동을 오랫동안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일 수 있다.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쓰는 것이다. 읽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읽는 것이다. 도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작은 것이라도 계속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이 그렇게 기억해줄 수 있다. 그날 아들의 한마디가 그것을 알려준 것 같았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내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반복하고 있는 행동은 얼마나 닮아 있는가.
지금 꾸준히 하고 있는 일 가운데 언젠가 나를 설명하는 하나의 모습이 될 것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무엇인가.
결국 내가 반복해온 하루가 나를 말해준다
그날은 회식을 마치고 늦게 돌아온 평범한 저녁이었다. 나는 피곤했고, 하루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었다. 그때 아들이 물었다.
“아빠, 오늘 글은 안 써?”
아주 짧은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 질문 덕분에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잠시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인지 계속 고민하고 있었지만, 아이의 눈에는 이미 글을 쓰는 아빠였다. 그 사실이 참 감사했다. 내가 걸어가는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지금 쓰는 글들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까지 꾸준히 써온 시간은 이미 누군가의 기억 속에 하나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 어떤 행동을 반복할 것인지가 더 중요할 수 있다고. 결국 내가 살아온 하루들이 모여 나를 설명하게 될 테니까. 앞으로도 아이의 눈에 글을 쓰는 아빠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이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오래 이어가며, 누군가의 눈에 ‘그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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