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쩌면 삶의 안개 속에서는 멀리 보려 하기보다 지금 보이는 만큼만 걸어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안개가 짙다.
기다려야 할까.
보이지 않아도
걸어야 할까.
길을 잃은 건지,
잠시 보이지 않는 건지.
<일상의 짧은 단상>
며칠 전 늦은 밤, 창밖을 바라보다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온 세상이 안개에 잠겨 있었다. 평소라면 멀리까지 보이던 풍경도 그날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익숙한 건물도 흐릿했고, 늘 눈에 들어오던 나무와 길도 안개 뒤에 숨어 있었다. 바로 앞의 풍경조차 선명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문득 삶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보이던 길도 어느 날 흐려진다
살다 보면 마음속에 길이 또렷하게 보일 때가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도 분명하다.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다는 확신이 있고, 다음에 해야 할 일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럴 때는 걸음을 내딛는 일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분명 잘 걸어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앞이 흐려질 때가 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지금까지 걸어온 방향이 맞았는지도 의심스러워진다. 그럴 때면 생각이 많아진다.
'계속 가도 되는 걸까.'
'여기서 멈춰야 하는 건 아닐까.'
'혹시 내가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닐까.'
조금 전까지 분명했던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지나온 시간까지 의심하게 된다.
보이지 않으면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안개 속에서는 멀리 볼 수 없다. 그래서 불안하다. 다음 모퉁이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고, 지금 걷는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한눈에 확인할 수 없다. 삶도 비슷하다. 결과를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쉽게 불안해진다. 내가 준비하는 일이 원하는 곳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고, 지금의 선택이 훗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알 수 없다. 열심히 걷고 있는데도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는 더 그렇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제자리에 서 있는 것 같고, 때로는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정말 길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단지 지금 내 시야가 짧아져 있는 것일까. 그날 창밖을 바라보다 그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안개가 짙어도 길은 사라지지 않았다
창밖에는 짙은 안개가 있었다. 평소 보이던 건물도 보이지 않았고, 나무도 길도 흐릿했다. 그렇다고 그것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건물은 그 자리에 있었다. 나무도 그대로 서 있었다. 늘 사람들이 걷던 길 역시 변함없이 이어져 있었다. 단지 그 순간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겠다고. 지금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가는 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닐 수 있다. 아직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의미 없어진 것도 아니다. 내가 꿈꾸던 모습이 당장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때로는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보이지 않을 뿐일 수도 있다.
기다려야 할까, 걸어야 할까
처음 단상을 적으며 가장 오래 머물렀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기다려야 할까.'
'보이지 않아도 걸어야 할까.'
삶에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된다. 조금 더 상황이 분명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확신이 없어도 일단 움직여야 하는지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아마 모든 상황에 같은 답을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때는 멈춰야 한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무작정 속도를 높이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잠시 쉬며 방향을 확인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어떤 때는 완벽하게 보일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멀리까지 보이지 않더라도 지금 내 앞의 한 걸음은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한 걸음을 옮기고 나면 그다음이 보인다. 다시 한 걸음을 내딛으면 조금 더 앞이 보인다. 삶도 그렇게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모든 답을 알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 확인할 수 있는 만큼만 움직이는 것이다.
멀리 보이지 않아도 오늘 할 일은 있다
나는 종종 멀리 있는 결과를 먼저 생각한다. 지금 하는 일이 몇 년 뒤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지, 준비하고 있는 꿈이 실제로 이루어질지,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미래는 좀처럼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고, 내가 생각한 속도로 일이 흘러가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모든 길이 보일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오늘의 일을 하는 것이다. 오늘 써야 할 글을 쓰는 것. 오늘 읽을 것을 읽는 것.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하나씩 정리하는 것. 가족과 함께할 수 있을 때 그 시간을 보내는 것. 내가 맡은 일을 오늘의 자리에서 해내는 것. 멀리 있는 길은 보이지 않아도 지금 발밑에 놓인 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잠시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법
사람은 답을 알고 싶어 한다. 잘하고 있는지 확인받고 싶고, 언제쯤 결과가 나올지 알고 싶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답을 바로 보여주지 않는다. 오랫동안 흐릿한 상태로 남겨두기도 한다. 그 시간이 힘든 이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보이지 않는 동안 끊임없이 의심하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계속해도 될까.'
'이만큼 했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만둬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질문 속에서 마음은 쉽게 지친다. 그래서 때로는 답을 찾는 것만큼 '아직 모른다'는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패로 해석하지 않는 것. 아직 모른다는 것을 잘못된 방향이라고 단정하지 않는 것. 안개가 걷힐 때까지 나 자신을 너무 쉽게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지금 내 삶에서 안개처럼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의심하고 있지는 않은가.
모든 것이 분명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한 걸음은 무엇인가.
멈춰야 할 때와 계속 걸어야 할 때를 나는 무엇으로 판단하고 있는가.
결국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잠시 보이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그날 나는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평소 보이던 풍경이 모두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그곳에 그대로 있다는 것을. 안개가 걷히면 다시 보일 것이라는 것을. 문득 삶의 어떤 시간들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분명 어제까지는 방향이 보였는데 오늘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확신을 가지고 시작했던 일인데 어느 순간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쉽게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길을 잃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잠시 보이지 않을 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너무 멀리까지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잠시 멈춰 방향을 살펴야 한다면 멈추고, 지금 보이는 만큼 걸을 수 있다면 한 걸음만 내딛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다시 익숙한 풍경이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아직은 나도 모른다. 지금 내가 길을 잃은 것인지, 잠시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다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길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려 한다. 오늘 내가 볼 수 있는 만큼 바라보고, 걸을 수 있는 만큼 걸어가면서.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