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 재산관리 신청 석 달 만에 30배…국민연금공단 공공신탁 관심 증가
- 의심 거래 발견하면 기록부터 확보…본인 의사 존중하면서 보호장치 마련해야
치매나 경도인지장애로 판단 능력이 떨어진 노인의 통장과 카드를 이용해 재산을 가로챈 간병인들이 잇따라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피해자가 돌봄 제공자를 의지하고 가족이 금융거래를 자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범죄에 악용됐다.
추석을 맞아 가족들이 부모님의 건강 상태와 함께 돈 관리 방식에 변화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만 일부 사건을 이유로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 전체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통장·카드·비밀번호까지 모두 맡기지 않고, 생활 지원과 재산관리를 분리하는 예방책이 중요하다.

치매 노인 예금 해지시킨 뒤 2000여만원 사용
청주지법은 2026년 8월 자신이 돌보던 치매 노인의 돈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된 70대 가정 상주 간병인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간병인은 피해 노인이 요양원에 입소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2024년 3월 노인을 은행으로 데려갔다.
정기예금을 해지하게 한 뒤 피해자 명의의 체크카드를 발급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간병인은 이후 약 한 달 동안 이 체크카드로 80여 차례에 걸쳐 2000여만원을 사용하거나 이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치매 증세와 요양원 입소 사실을 알고 재산상 이익을 취한 점을 인정했다.
다만 이 판결은 청주지법 단독재판부가 내린 1심 판결이다. 상급심 진행이나 확정 여부는 해당 보도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는 요양원 입소 직전 이뤄진 예금 해지와 신규 카드 발급이 범행의 출발점이 됐다.
가족이 부모의 금융거래를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있었다면 평소와 다른 예금 해지나 카드 발급 사실을 좀 더 일찍 발견할 수 있었던 대목이다.
비밀번호와 체크카드로 6년간 13억7000만원 이체
장기간 피해 사실이 드러나지 않아 피해액이 10억원을 넘긴 사건도 있었다.
수원고법은 2022년 치매 노인의 계좌에서 13억7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60대 가사도우미 겸 간병인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범행에 가담한 간병인의 아들에게는 1심에서 징역 3년이 선고됐고, 항소가 기각됐다.
간병인은 피해자가 실버타운에 입주한 2010년부터 사망한 2020년까지 약 10년 동안 가사도우미 겸 간병인으로 일했다.
피해자의 계좌 비밀번호를 알고 있던 간병인은 체크카드를 몰래 가지고 나와 2014년 9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200여 차례에 걸쳐 돈을 자신의 계좌 등으로 이체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는 독신이었고 주변에 재산을 지속적으로 확인할 사람이 없었다.
치매 증세로 계좌를 직접 관리하기 어려워지자 피해 규모가 장기간 커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간병인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그 신뢰를 저버리고 장기간 범행한 점과 피해가 복구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1심의 징역 4년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했다.
두 사건은 피해 금액과 범행 기간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다.
돌봄 제공자가 피해자의 통장·카드·비밀번호에 접근할 수 있었고, 금융거래를 함께 확인할 가족이나 제3자가 사실상 없었다는 점이다.
추석에 확인할 ‘돈 관리 변화’ 5가지
가족들은 명절에 부모님을 만나자마자 통장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기보다 생활비와 공과금이 제대로 납부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
다음과 같은 변화가 반복된다면 금융거래 내역과 인지·건강 상태를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다.
▲ 공과금이나 월세가 자주 연체된다.
▲ 같은 물건을 반복해 사거나 결제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계좌로 송금한 내역이 생겼다.
▲ 간병인이나 지인 한 사람이 통장·카드·도장·비밀번호를 모두 보관한다.
▲ 정기예금 해지, 신규 카드 발급 또는 큰돈 인출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한 변화가 있다고 곧바로 치매나 범죄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시력 저하나 우울증, 수면 부족, 복용 중인 약의 영향, 스마트폰과 디지털 금융 이용의 어려움도 돈 관리 실수로 이어질 수 있다.
먼저 부모에게 거래 목적을 확인하고, 평소와 다른 행동이 반복된다면 의료기관이나 치매안심센터에서 인지 상태를 점검하는 순서로 접근해야 한다.
간병인이 생활비를 대신 써야 한다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에게 장보기와 병원비 결제 등을 부탁해야 할 수 있다.
이때는 돌봄 제공자의 선의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출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 생활비 전용 계좌를 따로 만들고 잔액을 필요한 수준으로 제한한다.
▲ 카드 결제와 계좌이체 알림을 노인 본인과 가족이 함께 받는다.
▲ 현금을 전달할 때는 날짜와 금액, 사용 목적을 기록하고 영수증을 보관한다.
▲ 통장·카드·비밀번호·신분증·도장·공동인증서를 한 사람에게 모두 맡기지 않는다.
▲ 예금 해지, 신규 카드 발급, 대출, 부동산 처분, 고액 송금은 가족이나 적법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별도로 확인한다.
가족이라고 해서 부모의 금융재산을 임의로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자녀에게 계좌 사용이나 재산 처분 권한이 자동으로 생기지 않는다.
부모에게 의사결정 능력이 남아 있다면 본인의 의사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재산관리 지원이 필요하다면 본인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관리 범위와 방법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치매 재산관리 신청 석 달 만에 30배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은 2026년 4월 22일부터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치매나 경도인지장애로 재산관리가 어렵거나 경제적 학대 위험에 놓인 노인의 현금성 재산을 국민연금공단이 공공신탁 방식으로 관리하는 제도다.
국민연금공단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한 업무보고에 따르면 신청자는 4월 6명에서 5월 34명, 6월 109명, 7월 184명으로 늘었다.
4월과 비교하면 7월 신청자가 약 30배로 증가한 것이다.
7월 초 기준 누적 문의는 1,271건이었으며, 첫 정식 계약은 4건 체결됐다.
계약 대상에는 주변인의 금전 착취가 우려된 무연고 독거 치매 노인과 가족과 연락이 끊겨 사후 재산 처리가 어려운 시설 입소 노인 등이 포함됐다.
법정후견인이 필요한 신청자 37명은 법원의 후견인 선임 절차가 끝나는 대로 본계약을 진행할 예정이다.
생활비·요양비는 지급하고 고액 지출은 별도 심의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를 이용하면 국민연금공단이 대상자의 건강 상태와 생활환경, 본인의 선호를 반영한 재정지원계획을 수립한다.
이후 월세와 공과금, 요양비, 생활비, 용돈 등을 계획에 따라 지급한다.
계획에 없던 고액의 수술비 등 특별지출이나 계약 해지 요청은 외부 전문가가 과반수로 참여하는 치매안심재산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한다.
국민연금공단은 월별 집행 내용을 점검하고 반기마다 한 차례 이상 대상자를 방문한다.
이상 징후가 확인되면 불시 점검도 할 수 있다.
주요 지원 대상은 치매나 경도인지장애로 재산관리에 어려움이 있거나 경제적 학대 위험이 있는 기초연금 수급자다.
맡길 수 있는 재산은 현금,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 주택연금 등 현금성 자산이며 상한액은 10억원이다.
부동산 자체를 맡아 관리하거나 매각하는 제도는 아니다.
기초연금을 받지 않는 65세 이상 노인은 위탁재산의 연 0.5%를 이용료로 부담해야 한다.
65세 미만 조기발병 치매 환자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층은 재산관리 위험도를 고려해 예외적으로 무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2년간 시범사업을 점검한 뒤 2028년 본사업을 도입할 계획이다.
2026년 하반기에는 사업 평가와 함께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치매관리법 개정을 추진하고, 대상자와 지원 재산의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의심 거래 발견하면 계좌부터 막기보다 기록 확보
부모의 계좌에서 설명되지 않는 출금이나 송금을 발견했다면 먼저 거래 내역과 카드 사용 기록, 문자메시지, 영수증, 통화 기록 등을 보존해야 한다.
추가 피해 우려가 있다면 해당 금융회사에 카드 분실이나 도난, 부정사용 가능성을 알리고 필요한 조치를 문의할 수 있다.
경제적 학대가 의심될 때는 노인학대 신고상담전화 1577-1389에서 상담받을 수 있다.
협박이나 신분증·카드 강탈, 추가 인출처럼 긴급한 상황이라면 경찰 112에 신고해야 한다.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 신청과 상담은 국민연금공단 1355나 치매상담콜센터 1899-9988을 통해 안내받을 수 있다.
부모가 뜻을 밝힐 수 있을 때 준비해야
추석 가족 모임에서 재산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부모의 판단력이 떨어진 뒤 가족이 대신 결정하겠다며 준비를 미루는 것도 해답은 아니다.
부모가 자신의 뜻을 충분히 밝힐 수 있을 때 원하는 노후생활과 의료·돌봄비 사용 방향, 재산관리 방법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가족은 모든 재산을 대신 통제하기보다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나누고, 부모가 동의한 범위 안에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돌봄과 재산관리를 분리하고 두 사람 이상이 금융거래를 확인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가까운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학대를 예방하면서 부모의 재산과 자기결정권을 함께 지키는 방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