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가 말하는 진실, 왜 외면하나 <그 2> 고리사의 영역 기록 검토

쌍성은 예나 이제나 같은 위치에 존재

반역의 기록에서 고리 영역이 밝혀지는 笑劇(소극)

심양왕이 고리의 만주 영역을 확정

홍복원의 반역-심양로, 조휘의 반역-쌍성총관부, 유익의 반역-금복개해. 반역의 흔적이 밝히는 고리의 영역

 

삼국사가 말하는 진실, 왜 외면하나 <그 2> 고리사의 영역 기록 검토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듯이 삼국을 잇는 나라는 왕건의 고리다. 

고리는 신라 경순왕에게 나라를 전쟁없이 넘겨받았다고 했으니 

신라 영토의 연장인 데다 고구리의 영역까지 더해진 셈이니, 

이 고리 영역을 다루어 보지 않을 수 없다. 

고리 영역을 알면 신라와 더불어 삼국의 영역이 드러날 것이고, 

그 逆(역)도 또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고리의 영역은 더욱 처참하게 축소되어 있다. 

즉 압록강 하구에서 원산만까지로 잘록하게 잘린 

그 남쪽이 고리의 영역이라고 가르쳐 왔다. 

그나마 신라의 영역에서 넓어진 것이라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교과서에 싣는 지도다.

 

거두절미하고, 고리말 공민왕이 

원나라가 설치하였었다는 쌍성총관부를 회복한 것으로 배웠다. 

그 쌍성이 만주의 哈爾濱(합이빈, 하얼빈)시 

바로 남쪽에 건재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요즈음은 중공에서 슬그머니 그 존재를 지우려는지 

구글지도에서는 어지간히 크게 확대하지 않으면 

쌍성이라는 지명을 보여주지 않는다.

 

합이빈 남쪽에 큰 도시로 엄존하던 쌍성을 두고, 

한국의 사학자들은 그 존재를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근래에는 중공이 합이빈의 관할로 강등시켜 

슬그머니 그 지명을 안 보이게 하려 든다. 

필자는 양쪽 모두 악의적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글을 쓰며 펼쳐 놓은 지도는 

1999년 2월 제 2판이라 밝힌 ‘中國地图集(중국지도집)’이다. 

1999년만 하더라도 장춘, 철령, 요양, 대련과 

같은 크기로 표시되었던 쌍성이 

구글지도에서는 매우 크게 확대하여야 간신히 雙城鎭(쌍성진)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쌍성은 예나 이제나 같은 위치에 존재

 

‘쌍성’이라 하면 쌍성총관부로, 동녕로 및 탐라총관부와 더불어 

원나라가 직접 지배한 곳으로만 기억하는 국민이 많다. 

그러나 이 쌍성이 고리사에 새겨진 

반역의 역사를 대표하는 지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이 또한 안타깝다. 

고리사 권24 고종 45년(1258) 12월

 

己丑 蒙古散吉大王·普只官人等領兵來, 屯古和州之地. 龍津縣人趙暉, 定州人卓靑, 以和州迆北, 附蒙古. 蒙古置雙城摠管府于和州, 以暉爲摠管, 靑爲千戶.

기축(14일) 몽골 산길(散吉, 산지)대왕과 보지관인 등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옛 화주 땅에 주둔하였다. 용진현 사람 조휘와 정주 사람 탁청이 화주 이북 지방을 몽골에 넘겨주었다. 몽골이 화주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하고 조휘를 총관으로, 탁청을 천호로 임명하였다.

 

여기 대왕은 몽골의 침략군 최고위 장수급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조휘와 탁청이라는 자가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않고 

지레 겁먹어 땅을 바쳤다. 

몽골군은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영토를 삼킨 것이다. 

몽골은 화주였던 이 땅에 쌍성총관부를 두고 ‘직접’ 다스렸다. 

그 땅을 공민왕이 5년(1356) 동북면병마사 유인우와 천호 이자춘(이성계 아버지)이 회복하였다.

 

 

고구리의 천리장성을 고리 때 다시 보수하였나

 

놀라운 사실은 그 쌍성 서남쪽으로 백 리 정도 되는 곳에 

扶余(부여; 扶餘의 약자)가 있다. 

그 부여가 뜻밖에도 삼국사 고구리본기 

영류왕 14년(631)에 등장하여 아래 인용한다. 

 

구당서와 신당서 동이전에도 유사한 내용이 기록되었고, 

장성 위치를 뒷받침하는 사료가 여럿이지만 

청나라 때 발행한 흠정만주원류고도 있다. 

관련 기록 검토는 지면 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룬다.

 

(삼국사) 春二月, 王動衆, 築長城, 東北自扶餘城, 東南至海, 千有餘里. 凡一十六年畢㓛.

봄 2월에 왕이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장성을 쌓았는데, 동북쪽으로 부여성부터 동남쪽으로 海(해)에 이르기까지 천 리 남짓이었다. 무릇 16년 만에 공사를 마쳤다.

 

동북쪽에 있는 부여성부터 동남쪽 海(해)까지라면, 

海(해)는 바다일 수 없다. 

물론 明(명) 때 쌓은 산해관이라는 특이한 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요녕성에는 海(해) 자가 들어간 지명이 유난스레 많다. 

해주가 둘, 해성, 능해. 

그들 중 한 해주는 현재 阜新(부신) 안에 海州區(해주구)로 지위가 강등되었는데, 

인용문의 해는 부여라는 동북에서 동남이라는 해라고 하였으니, 

필자들은 현재 해주구의 그 해주로 비정하고 있다.

 

이 기록은 엄청 흥미진진한 내용을 품고 있다. 

만주에 있는 長城(장성)을 설명하며 

‘동북에서 동남’이라고 기술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 살고 있는 사람인가. 

 

그 사람은 장성 서쪽에 있어야 그곳이 동쪽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현재 우리 땅이나 만주에 사는 사람이라면 

‘서북에서 서남’이라고 표현해야 정상이다.

 

그렇다면 그 저자인 김부식이 만주나 이 땅에 사는 사람이 아니거나, 

고구리의 도읍이 만주가 아니라 대륙에 있어야 

그 장성의 위치를 ‘동북에서 동남’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다만 김부식이 단순히 옛 기록을 옮겨놓는 역할만 하였다면, 

김부식은 그 장성의 어느 쪽에 있어도 방향과 관계가 없다. 

 

그러나 고구리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다르다. 

필자를 포함한 비전공 역사연구가가 주장하듯 

하북성에 도읍이 있었다면, ‘동북에서 동남’이 될 수밖에 없다. 

고구리가 그 장성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는 뜻이다.

 

고리 때도 장성을 쌓는 기록이 있다. 

고리가 창업되고 대략 백년 쯤 되는 시절인 

靖宗(정종) 원년(1035)의 일이다. 

고리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을 남겼다.

 

是月, 築長城於西北路松嶺迆東, 以扼邊寇之衝.

이달에 서북로의 송령 동쪽으로 장성을 쌓으므로, 변방 적들이 밀려오는 요충지를 지키려고 하였다.

 

여기의 송령은 여러 곳에 있을 수 있으나, 

바로 앞서 언급한 해주 서남쪽 100㎞ 정도 거리에 송령으로 비정한다. 

이 송령은, 요하문명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해진, 

적봉에서 조양을 거쳐 錦州(금주)로 가는 길목에 현존한다.

 

그 뒤 예종 14년(1119) 12월 금나라가 방해함에도 

장성을 3척 증축한다는 기록이 있고, 

공민왕 20년(1371) 명나라 중서성에서 

 

戊戌 中書省咨告, “前元遼陽行省平章劉益, 以金·復·盖·海等地, 歸順, 帝以爲本衛指揮.”

전의 원나라 요양행성 평장 유익이 금주, 복주, 개주, 해주 등의 땅을 들고 귀순하니, 황제(주원장)가 本衛(본위)의 지휘로 임명하였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본위란 요동위를 말하며, 

요동이 원래 고리의 영역이었음을 생생하게 일러준다.

 

 

반역의 기록에서 고리 영역이 밝혀지는 笑劇(소극)

 

고리시대는 금속활자의 발명, 대장경 판각, 청자와 같은 문화유산이 자랑거리다. 

반면에 거란, 금, 몽골과 같은 형제 종족의 침략, 무신정권의 폐해, 

극성한 불교와 천박한 성리학의 도입에 따른 

전통사상의 붕괴로 암울한 사회이기도 하였다. 

더욱이 몽골 침략기는 반역의 전성시대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반역의 시대는 홍복원이 열었다. 

고종 20년(1233) 12월, 무신정권의 정점을 차지하는 최우가 

가병 삼천으로 서경의 반란군을 치게 하자 

홍복원은 몽골로 도망한다. 고리사의 기록은 이뿐이다. 

그런데 원사(권59)와 신원사(권47)의 지리지는 

홍복원이 훔쳐간 지역을 명시했다.

 

(신원사) 瀋陽路. ~ 太宗四年,高麗人洪福源率西京都護龜州四十餘城來降. (성 이름 생략)

심양로. 태종(우구데이) 4년에 고리인 홍복원이 서경, 도호, 귀주의 40여 성을 거느리고 와서 항복하였다.

 

10년 지난 원종 10년(1269)에는 

서북면 총관 막하에 있던 최탄이 

서경분대의 어사, 감창사, 유수관 및 속현의 수령들을 살해하고, 

서북면의 여러 성을 들고 몽골에 붙었다. 

이를 끈기있게 돌려달라 요구하여 

충렬왕 16년(1290) 3월 몽골은 동녕로를 폐지하고 

여러 성(신원사는 ‘본로에 속한 모든 성’)을 고리에 되돌려 주었다고 하였다. 

다만 고리사에는 西京(서경) 54성, 서해 6성이라고만 하였는데, 

신원사에는 그 영역에 속한 성 60곳의 지명이 명시되어 있다.

 

(신원사) 東寧路。本高麗西京。至元六年,高麗人崔垣等以西京府州縣鎮六十餘城來降. ~ 二十七年,罷東寧路,悉歸本路所屬諸城於高麗. (뒤에 60성 목록이 있으나 생략)

동녕로. 본래 고리 서경이다. 지원 6년에 고리인 최원 등이 서경 府州縣鎭(부주현진) 60여 성을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다. ~ 27년에 동녕로를 폐지하고 본로에 속한 모든 성을 고리에 돌려주었다.

※崔坦(최탄)을 원사에서는 崔垣(최원)이라 했다.

 

이 두 사건 외에 조휘가 和州(화주) 이북 땅을 들고 

몽골로 갔던 사건(1258)은 위의 쌍성총관부에서, 

유익이 금복개해를 들고 명나라로 간 사건은 앞의 천리장성에서 언급하였다.

 

 

심양왕이 고리의 만주 영역을 확정

 

고리가 몽골의 부마국으로 지배받았다고 하면 자존심이 상하지만, 

뒤집어 보면 마냥 마음 상해할 일만은 아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역을 차지한 몽골에 맞서 

저항한 나라들은 모조리 철저하게 멸망당하였다. 

그에 비하여 고리는 유일하게 멸망의 화를 면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원나라 후계 경쟁에 직접 뛰어들었다. 

비유하자면 꼬리가 몸통을 좌우한 것이다. 

게다가 고리 한 여인이 황후가 되고 

그 아들이 황제가 되었다. 

말하자면 客(객)이 주인이 된 것이니, 

이만한 반전이 세계사에 또 있을까?

 

한편, 원나라는 무종(카이샨)은 

자신이 황제가 되도록(1307) 도운 충선왕을 

1308년 5월 심양왕에 봉하였다. 

충렬왕이 돌아갔어도 주로 대도에 머물러 있었지만, 

심양이 고리의 영토라고 대못을 박은 모습으로 보인다. 

원래 원의 영역을 고리에 떼어준 것은 아니다. 

당시 고리는 홍복원, 조휘, 최탄과 같은 반역자들이 

땅을 들고 원으로 가므로 고리 영역이 마구 축소되는 매우 난감한 형편이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빼앗겼던 서경을 돌려받았다(1290). 

그 뒤(1308)에 마치 

“원래 심양이 너희네 중심 지역의 하나이니. 

너를 심양왕이라고 부르겠다.”고 말하는 듯하다. 

뒤집어 해석하자면 

“다른 땅은 내가 가져가도 심양은 건드리지 않겠다.”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반역자들의 기록과 ‘심양왕’이라는 칭호는 자랑스러울 것은 없다. 

그러나 서쪽 경계는 알 수 없더라도, 

고리의 동북쪽 영역만은 심양과 쌍성 너머까지였음을 확실하게 증언한다.

 

심양과 쌍성은 예나 지금이나 위치가 분명한 곳이다. 

그런데도 지도는 실재하지도 않는 

‘압록강 하구에서 원산만’의 천리장성을 고리의 북쪽 경계라고 그려놓았다. 

 

이런 황당한 지도를 그린 백여 년 전의 일본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광복 8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일본인에게 배운 대로 교과서에 싣고 있다. 

고고학계를 포함하여 우리나라 사학계 전체의 학문적 자세가 의심스럽다.

 

 

작성 2026.09.19 04:08 수정 2026.09.19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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