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책 문서에는 감정이 적히지 않는다. 그러나 문장을 고르는 손에는 적힌다. 2026년 9월, 영국이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과의 교역을 막은 뒤 에드 밀리밴드 외무장관이 그 결정의 안쪽을 열어 보였다. 영국 이스라엘 제재와 정착촌 수입 금지라는 건조한 용어 뒤에는, 넉 달 전 세상을 떠난 홀로코스트 생존자 어머니가 있었다. 가자지구에서 돌아온 의사의 증언도 있었다. 외교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9월 8일 런던은 방향을 틀었다. 영국 정부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불법 정착촌 생산품의 수입을 막으며 정착촌을 돕거나 그로 이익을 얻는 개인과 기업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7월 출범한 앤디 버넘 총리 체제가 전임 정부와의 차이를 드러낸 첫 번째 큰 결정이었다. 발표문을 읽은 사람은 에드 밀리밴드 외무장관이다. 그는 정착민 폭력을 테러로 규정했고, 이스라엘은 영사관 폐쇄와 영국 의원 입국 금지로 맞받았다.
그로부터 아흐레 뒤, 밀리밴드가 결정의 안쪽을 열어 보였다. 9월 16일 한 팟캐스트에 나온 그는 발표문의 표현을 두고 오래 씨름했다고 털어놓았다.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무엇을 말하지 말아야 하는지 몇 주를 고민했다는 것이다. 그때 떠올린 사람이 지난 5월 27일 세상을 떠난 어머니 매리언 코자크였다. 폴란드 쳉스토호바에서 태어난 유대인 난민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며, 91세로 눈을 감기 전 생애의 마지막 20년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쏟은 활동가였다. 그는 어머니라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일을 보라고, 그것은 잘못이며 잘못을 말해야 한다고 했으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발표 전 그가 만난 사람들도 있다. 가자지구에서 일한 구호 활동가들과 의사 한 명이다. 그들이 전한 이야기는 말로 옮기기 어려웠다고 그는 말했다. 의약품이 지연되거나 막히고, 아이들이 기본적인 치료를 기다리다 숨지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휴전이라 불리는 국면 이후에도 1,2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발언의 파장은 컸다. 영국의 한 유대계 매체 칼럼니스트는 그의 표현이 선동적이라고 비판했다. 밀리밴드는 다른 각도에서 답했다. 어떤 사안에는 목소리를 내면서 이 사안에는 침묵한다고 여겨지는 순간, 영국은 영향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정책은 서류로 남지만, 그 서류를 쓰게 만든 것은 대개 사람이다. 수용소에서 아버지와 예순 명의 친척을 잃은 어머니의 딸이 한평생 붙든 질문을, 그 아들이 외교 문서로 옮겼다. 논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 다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이 결정은 계산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