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설은 소설의 첫 문장으로 시작됐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2026년 9월 16일 스트라스부르에서 나온 폰데어라이엔 연합의 현황 연설은 그 역설 위에 73분을 세웠다. 캐나다 EU 준회원이라는 낯선 제안이 나왔고, 13세 미만 소셜미디어 금지와 유럽 폭염 계획이 뒤따랐다. 대서양 동맹의 전제가 흔들리는 시기에, 유럽이 내놓은 답은 새 파트너와 새 규칙이었다.
유럽은 지금 사방이 불편하다. 대륙 안에서 영토를 겨냥한 전쟁이 이어지고, 인근에서도 포성이 멎지 않는다. 산업 역량을 둘러싼 경쟁은 격해졌고, 유럽의 신뢰를 흔들려는 서사 싸움도 진행 중이다. 여름에는 폭염과 산불이 대륙을 훑고 지나갔다. 대서양 건너에서는 그린란드와 캐나다를 겨눈 미국 지도부의 발언이 동맹의 전제를 흔들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올해 연설의 배경으로 삼은 풍경이 이것이다.
9월 16일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73분에 걸쳐 연례 '연합의 현황' 연설을 했다. 서두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서 빌려 왔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라는 문장이다. 가장 큰 관심을 끈 대목은 캐나다였다. 그는 캐나다가 27개 회원국 체제의 첫 '준회원'이 되는 길을 열고 싶다고 밝혔다. 다만 준회원이라는 지위는 현행 조약에 존재하지 않으며, 수용 여부는 회원국들이 결정해야 한다. 협력 구상에는 경제 안보와 첨단 제조, 방위 산업, 북극, 에너지, 핵심 광물, 배터리, 양자 기술, 사이버 보안이 담겼다. 객석에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앉아 있었다.
목록은 길었다. 중국과의 상품 교역에서 하루 약 10억 유로 적자가 난다며 그는 이 구조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했고, 베이징과의 대화도 이제 결과를 내야 한다고 압박했다. 기후 분야에서는 극한 기상 피해의 보험 보장을 넓히는 동맹, 조기 경보와 보건 대비를 담은 유럽 폭염 계획, 물 손실을 줄이는 구상, 공동 소방 항공대 창설이 제시됐다.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개발 속도를 늦추자는 미국 선도 기업들의 제안에 동의하며, 영국·캐나다 같은 협력국과 안전 기준을 세우겠다고 했다. 아동 보호 대목도 나왔다. 13세 미만의 소셜미디어 이용을 금지하고, 이후에는 보호자 감독 아래 기능과 이용 시간이 제한된 계정만 허용하자는 제안이다. 연설은 9년 전 차량 폭탄으로 숨진 몰타 탐사 기자를 기리며 끝났다.
연설은 법이 아니다. 준회원 지위도, 소셜미디어 규제도 회원국과 의회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날 목록이 말해 주는 바는 분명하다. 유럽이 더 이상 기존 우방의 선의에만 기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문제는 속도다. 유럽의 제도는 느리고, 유럽을 흔드는 힘은 빠르다.


















